여성 전용 수영장에서 살아남기
여성 전용 타임 수영장에서의 하루,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날이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날 무렵, 익숙한 얼굴이 탈의실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성미님이다. 분명 나랑 같은 타임인데, 수영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사람. 어? 타임을 바꾸셨나? 하는 찰나, 성미님은 오늘 수영을 함께한 명숙님과 마주쳤고,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때 명숙님 왈 "언니 오늘 왜 수영 안 왔어~~, 근데 왜 지금 온 거야?" 하니 성미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 씻으러 왔어."
순간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한가득이다. 수영은 안 하고 씻으러만 오는 거야? 생각해 보니 샤워장에는 사우나가 두 개 있고, 냉탕과 온탕도 있다. 굳이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그 시설들을 즐기러 오는 것도 가능하겠구나 싶긴 했다.
씻으러'만'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말해 '이럴 거면 그냥 일찍 와서 수영도 하고 씻고 가지...' 저 정도 부지런함이면 수영도 하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곧 머릿속이 바빠졌다. 아침에 바쁘셨나?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일까? 아이 등교시키고 시간이 꼬이셨나? 날이 흐려서 오기 귀찮았는데 그냥 씻으러라도 오신 걸까? 수영장비용이 아까워서? 혹시 집에 씻을 데가 없으신 건 아니겠지...? 수영장에만 있는 비누나 수건 때문에? 아니면 사우나에 들어가고 싶으셨던 걸까?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만큼, 각자의 사정이라는 건 누구도 쉽게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수영은 못할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고, 씻으러만 오는 것도 자기 관리의 일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은 패스해도 나를 돌보는 시간을 챙기는 것, 그게 어쩌면 더 부지런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수영이 너무 귀찮은 날엔 나도 그냥 씻으러만 와볼까? 싶었다. 물론 나는 사우나는 안 하는 사람이라 아마 안 하게 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그런 여유를 한 번쯤 누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은 안 해도 씻으러는 오는 삶',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까? 꼭 정해진 대로만 살지 않아도 된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조절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게 주도적으로 사는 삶일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