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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 양관식이다.

여성 전용 수영장에서 살아남기

by 다씽

요즘 나는 수영에 빠져 있다.
평일 오전, 조용한 수영장에 몸을 담근다.
몸을 맡기고, 숨을 가르고, 물살을 품는다.
그 순간, 나는 ‘양관식’이 된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의 젊은 관식이 말이다.

나는 자유형, 그러니까 크롤영법을 할 때마다
극 중 관식이에게 빙의한다.
멀리 떠나간 대형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리고,
부두에서 “양관식~!! 으허허허허 양!관!식!!”
외치는 애순이의 목소리를 향해 폭풍처럼 수영해 오는 장면이
내 머릿속에 재생된다.



풍덩!
무언가 바다에 떨어지고, 부두의 사람들이 웅성댄다.
조금 후, “뭐야 뭐야? 돌고래인가?”
사람들이 말한다.
그렇게 헤엄쳐 오는 관식을, 그저 신기하고 걱정 섞인 눈빛으로 바라본다.
사랑의 힘이구나—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렇게 느꼈겠지.

그런데 나는 수영을 배우는 사람.
자연스레 관식의 수영 폼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게 멋지게 돌진하는 건 안 되지만,


결의에 찬 눈빛, 정렬된 스트로크, 호흡할 때 얼굴의 각도.
폼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이후, 나도 수영장 안에서는

여자 양관식이 되고 싶어졌다.



부두에서 “양! 관! 식!!”을 외치는 애순이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나는 수영장 한쪽 벽을 박차고 귀엽게 돌진한다.
부두도, 애순이도, 돌고래 같은 속도도 없지만,
마음만은 관식이다.
수영에 대한 사랑과, ‘잘하고 싶다’는 열정을 안고
물을 휘젓는다.

박보검의 수영폼이 너무 멋져서 검색까지 해봤다.
역시나, 중학교 때까지 수영선수였다고 한다.
폼 미쳤다.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선수 출신이니, 관식에게 빙의하는 게
수영에 나쁜 영향을 주진 않겠구나—안심도 했다.

숨을 들이쉴 때의 얼굴 각도,
다짐하듯 꾹 다문 입술,
정면을 향한 눈빛.
그 모든 관식을 통째로 내 몸에 이식하려 애쓴다.

몸은 여전히 어설프지만,
마음만은 이미 양관식이다.

수영은 나에게 매일의 훈련이자 도전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잘하고 있나?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시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관식에게로 돌아간다.
사랑 하나로 바다를 가르던 사람.
주저 없이 물로 뛰어들고,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해 나아가는 마음.

수영장에서 자유형을 할 때면, 나는 속으로 외친다.
“양! 관! 식!! 으허허허허허!”

그 순간, 나는 다시 나 자신이 된다.
돌고래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나를 향한 몰입.
그 빙의의 힘이 오늘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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