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대한항공만 타?

국적기를 선호하는 유라

by 다씽

"우리 대한항공으로 타고 가도 되지?"

항공권 알아보는 데 유라가 보내온 톡이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응 상관없어."라고 말은 했다. 이전까지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타면 저가항공사를 이용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저렴하니까.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정신이 들었다. '제주도를 가는데 대한항공을 탄다고? 비싸지 않나?' 생각했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마찰이 생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한달살이를 가자고 먼저 해놓고 돈을 걱정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부모님 모시고 해외여행 갈 때만 한 번씩 탔었다. 처음 여행 가는 부모님에게 국적기를 태워드리고 싶었던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 덕에 국적기를 타보면서 '이래서 국적기를 타는구나'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 아이들도 데리고 가는 한달살이인데 대한항공 타고 기분 제대로 내보자' 하는 마음으로 바뀌면서 공권을 결제했다.


예매도 잘했고 좌석도 잘 지정했고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했다. 도착 당일은 기쁨, 걱정, 혼란, 힘듦 등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여유있는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이튿날을 날이 좋지 않아서 3일차 부터는 연달아 유라 가족들이 오셔서 각자 차를 타고 이동했다. 대화를 할 시간이 많이 없었다.


제주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되는 날 우리끼리만 남게 되었다. 본격 우리끼리만의 살이가 되었다. 아이들과의 제주! 하면 동물을 만나는 것이 육아국룰 아닌가? 침미소목장으로 향했다. 제주는 생각보다 크다. 가까운 거리인 거처럼 느껴지는 거리도 기본 30~50분은 가야 만날 수 있다. 그만큼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얘기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나는 운전을 하니 유라가 조수석에 앉아 갈 곳에 대한 정보나 다음 일정 장소를 서치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유라는 대한항공을 타자고 한 걸까? 저가항공도 많고, 비수기 평일에 출발하는 거라 조금만 손품을 팔면 특가도 많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던 거다. 나는 물었다.

"우리 여기 올 때 대한항공 타자고 했잖아, 저번에 가족끼리 제주도 왔을 때도 대한항공 탔던데 왜 대한항공만 타?"

그러자 유라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마일리지 모아서 비즈니스 타고 뉴욕 가려고"

뉴욕? 무슨 일 있나? 남편이 미국과 연계된 일을 한다던데? 이민 가나? 물어보기도 전에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눈 내리는 뉴욕에 갈 거야. 코코아를 마실거거든 남편하고 약속한 거야" 하는 거다.

뭐지? 코코아를 먹으러 뉴욕에 간다고? 일본에 초밥먹으러 다녀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뉴욕에 코코아를 먹으러 간다는 소리는 처음이라 심히 당황했다. 거기에 보통 뉴욕 하면 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 브루클린 브리지 정도를 이야기하지 않나? 별의별 생각이 스치고 있는데 또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추 추운 겨울 이어야 해 눈이 내려야 하고 나와 남편은 털모자에 장갑을 끼고 뉴욕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카페에 들어가는 거야. 꼭 털모자, 장갑을 껴야해. 머리, 어깨에 떨어진 눈을 툭툭 털고 카페에 들어가는 거지. 장갑을 벗고 서로 언 손을 잡아 호호~ 불어주며 손을 녹일 거야. 그리고 코코아를 주문하는 거야 코코아에는 마시멜로우가 동동 떠있어야 해. 마시멜로우가 떠있는 코코아가 담긴 머그잔을 손으로 감싸고 입천장이 데지 않게 호 불어서 식히고 한 모금 마시는 거지. 눈 내리는 뉴욕을 바라보면서 말이야, 이게 남편이랑 이야기한 버킷리스트 중 하나야"

나는 웃었다. 그리고 감탄했다. 너무 귀여웠고 구체적이었으며 지극히 사소하지만 또 원대한 버킷리스트였다. 완벽한 목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구체적인 기획이라면 조만간 이룰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대한항공을 타자고 이야기 한 것에 내가 반대 없이 예약을 한 것이 그들의 꿈에 조금은 도움이 된 것 같아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아침미소목장에서 젖병먹이기 체험,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더위에 지쳐있었다. 카페로 들어가서 시원한 곳에 앉으니 아까 차에서 이야기했던 유라의 낭만 가득한 로망이 불쑥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우리 부부는 유라의 코코아 스토리 처럼 귀엽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나? 막연하게 잘 먹고 잘 살 자만 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나는 어떤 장면 하나를 위해서 실천을 한 적이 있었나? 보통은 '가고 싶은 나라', 'TV 여행프로그램에서 소개된 곳',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곳을 추천한 인플루언서의 소개지'를 따라다니며 낯선 곳에 발을 디뎠었다. 그런데 유라는 오직 손을 호호 불며 코코아를 마시는 장면을 위해서 마일리지를 모으고 있었다. 나도 머리에 너무 잘 그려지는 유라의 로망이 상상만으로도 나를 시원하면서도 따듯하게 했다. 그 하루가 너무 낭만적으로 다가왔고, 빠른 시일 내에 이루길 응원했다.


나도 내 코코아를 찾아야겠다 생각했다. 언제 떠날 진 몰라도 마음속에 늘 달콤한 마시멜로우와 따듯한 코코아를 품고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항공사에서 시작한 물음이 달콤한 상상을 넘어 현실로 다가올 것이 분명했다. 나도 즐겁고 달콤한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낭만치사량 넘치는 구체적인 꿈을 고 싶어졌다.


물론 지금의 제주 한달 살이도 버킷리스트를 이룬 상태지만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목적을 가진 해외여행의 꿈이라면 더 빨리 이룰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날 저녁 남편과 통화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남편! 가고 싶은 곳 있어? 우선 마일이지부터 열심히 모아야해" 라고 말이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