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후 연재 '알피니스트' - 3
이름 모를 사람, 그가 걸어 들어간 이름 모를 그 길이 탐험의 시작이었다. 19세기 ‘정상 정복’이라는 인간의 욕망은 비약적인 등산 발전을 촉발했다. ‘등산’이라는 개념이 인류에게 각인되기 시작한 시기다. 인류 역사 대부분은 수렵을 통한 원시적 삶이 지배적이었는데, 당시 아무런 대가 없이 죽음을 담보하고 높은 산의 꼭대기를 오르는 행위의 출현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수렵의 시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중세, 신이 인간을 지배하던 시대에도 인간에게 자연은 극복해야 할 무엇은 아니었다. 인간은 자연을 두려워했고 더러는 신봉하며 대지보다 높은 산들을 신격화했다.
신이 내려와 노는 곳으로 믿었던 산들을 인간이 올라가기 시작한 순간부터 신이 지배하던 세계는 균열을 예고한다. 이후 인간은 신에게서 벗어나기를 갈망했고 자연은 극복과 정복의 대상이 됐으며 때마침 발전하던 자연과학은 근대의 오만을 부추겼다. 도전, 탐험, 정복은 신에게서 벗어난 근대 인간의 표상이 됐다. 불행하게도 그 시점은 근대 제국주의 팽창과 맥을 같이한다. 프랑스 태생의 스위스 산악인 에밀 자벨은 이 시대의 사람이다. 그에게는 특별함이 있다.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봤던 당시 대부분의 산악인과는 조금 달랐다. 소규모든 대규모든 소속을 통해 물자와 자원을 투입하며 정복 활동을 구가하던 당시 등산 트렌드와 달리 그는 늘 혼자 산을 올랐다. 그리고 사색했다. 사색한 생각과 홀로 바라본 풍광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겼다. 기록은 당시 이름 모를 길들에 디딘 첫 발자국의 주인공이 그였음을 증명했는데, 그의 이 기록으로 인해 훗날 자신이 알프스 봉우리의 초등이라 주장한 많은 사람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색이 없는 행동은 행동이 없는 사색만큼 무의미하다. 실천과 사색,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자신의 생애에 조화시켜 낸 사람이 에밀 자벨이다. 그는 등산가이자 문학인이요 탐험가이자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첫 산악인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그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등산가’, ‘그다지 쓸모도 없는 산악회 회원의 한 사람’이라 말하지만, 산을 매개하여 자신을 낮추고 존재를 고양하는 철학적 명민함에 그의 진면목이 있다. 가령, 그는 산에서 “거대한 고대 짐승의 각질 비늘 위를밟”는 미물에 지나지 않지만, 세르뱅Cervin 정상에 오르면,
“내 마음은 무한한 기쁨으로 가득했다. 나는 자기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손으로 몸을 만져보고 싶기까지 했다. 세르뱅의 정상에서 자신의 생명이 충만해 있는 것, 나는 이 순간을 자신의 전全 존재로 향유하고 있었다. 내 느낌의 모든 것이 일시에 파악되어 충일한 혼란 상태에 빠져 잠시 동안 아무것도 식별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하며 스스로 가장 높은 차원의 생명 경험을 획득한다. 또 “산악지괴가 융기하고 두께 1,000미터의 지각의 외피와 땅을 들어 올리거나 찢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한줄기 햇빛 속에는 철학의 모든 체계 속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웅변이있”음을 알아차린 알피니즘 실존주의의 시작이었다. 그 인식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절벽에 두 다리를 흔들거리면서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것”과 같은 문장에 암시된 존재성이다. 산과 자연은 그에게 존재성의 재발견을 안겨주었다. 그는 “나는 왜, 생의 대부분을 어리석은 새장 속에서 살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일까” 자문하며, 인간이라는 존재는 언젠가는 소멸할 “골짜기의 푸른 주름살 밑 조그만 한 구석이나 작게 희뿌옇게 긁힌 상처”에 불과하다는 일종의 불교적 인식에 닿는다.
명明과 암暗, 성聖과 속俗, 진眞과 환幻, 선善과 악惡의 이분법에 갇힌 인간에게 에밀 자벨의 폭포는 “사람의 얼굴에비말을 끼얹고 그 무력한 권위를 비웃는다.” 그래서 “신과 천국에 있는 사람들을 구별하는 일은 냉담한 박사들에게 맡겨놓”고 “이 심장, 가슴 속에 불타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이 사랑의 아궁이가 어딘가 암흑으로 사라지기” 전에 살아있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라 외치며 일갈한다. “가자, 그런 아름다움을 찾아가는데 이렇게 꾸물댈 수는 없지않은가!”
그가 풀어내는 산의 묘사는 탁월하다. 죽음을 비껴가는 등반가의 순간순간을 마치 카메라를 찍듯 정확하고 세밀하게 그려 보여준다. “바위에 오르는 자는 단 일순간이라도 그 목적과 수단에서 눈을 떼지 않”고 오르고 “화강암의 아주 작은 주름살 같은 표면에 손끝을 걸고 구두 끝을 바위에 걸어 몸을 지탱”하면서 “어쩌면 미켈란젤로를 즐겁게 했을지도 모를 그런 자세로 몸을 비틀기도” 하며 오른다. 그가 오르는 바위는 ‘엄청난 중량에도 불구하고 창공에 부각된 화강암’이고 이 화강암은 죽지 않고 살아있어서 에밀 자벨과 교감하는 바위다. 망치로 하켄과 피톤을 박으며 밟고 올라서야 할 바위가 아니라 자신과 삶의 호흡을 같이하는 거대한 생명이고, “그 발등 위를 기어 다니고 가련한 작은 손이 그 두렵고 험한 살결에 닿을 때는 흡사 잠들어 있는 어떤 거대한 괴물의 등딱지 위를 걷”는 동반자다.
산악문학이 있다면 그것은 에밀 자벨로부터 시작했을 테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프랑스어 교사이자 훗날 대학에서 수사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활동했다. 풍부한 언어를 가진 인간이 산에 들어서면 산이 선사하는 영감이 풍요롭게 넘친다. 더구나 그가 알프스에서 발견한 인간의 첫 길은 시적 도약과 비약 없이는 설명하기 힘들어서 그의 언어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다.
가령, 인간의 손길을 처음 허락하는 알프스 여신의 내밀한 아름다움을 “바위가 존재하고 창공에 그 자랑스러운 나체를 우뚝 솟구쳐 올린, 헤아릴 수 없는 먼 옛날부터 아무도 이곳을 찾아오지 않았을 뿐더러 누구의 눈도 지금 그대가 내다보고 있는 바를 보지 못했으며 이 세상이 비롯된 이후 여기에 계속되었던 침묵을 최초로 깨뜨린 것이 그대 음성이고 그리고 인류 최초의 대표자로서 이 황량한 처소에 나타나는 특권을 부여받은 자가 많은 군중 속에서 우연히도 선택된 인간, 즉 다름 아닌 그대”라고 포착하는 문장에서 나는 자세를 고쳐 앉고, “길도 없는 하나의 골짜기가 도끼 소리 한번 울리지 않은 수목림이 아무것도 들여다보지 못한 심연 속의 폭포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 알프스의 순결함을 표현할 때는 무릎을 친다. 물론, 이때의 ‘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에밀 자벨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다시 그가 “이 엄숙하고 산뜻한 적막 경을 앞에 하고 숲의 그늘에서 나뭇잎의 신비로운 속삭임에서 바위 사이로 흐르는 격류의 굉음에서 얼마나 황홀한 마음의 동요를 느꼈을 것인가”라고 말할 때면 나는 저절로 19세기 산악인 에밀 자벨과 21세기 시인 황인숙을 겹친다. 황인숙의 <신성한 숲>은 에밀 자벨의 ‘도끼 소리 한번 울리지 않은 수목림’과 포개지고, 둘은 원시의 숲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며 삶의 원형을 본 같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거대한 숲과 대기의 싸움, 이 절대적인 존재들이 싸우는 한 복판에 우리가 끼어드는 느낌을 그들은 글을 통해 파고든다. ‘이 숲, 저 꿈틀거리는 나무 사이로, 두려움 없이 내가 지나갈 수 있을까’라고 말하며.
산을 사랑하여 산에서 한평생 놀다 가고자 한 것이 자신의 유일한 철학이라 말했던 에밀 자벨. 그야말로 산이 사람을 사랑한 유일한 사례처럼 여겨진다. 36년 짧은 해를 산과 여한 없이 함께 보냈으며 등반기보다는 문학적 글쓰기를 하는 산악인답게 그의 글은 심오하고 깨끗하다. 인간의 뇌를 꺼내 풍욕시키는 매력이 있다. 더 이상 단조로울 수 없을 만큼 묵직한 단순함 속에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말없이 묵묵히 걸어가는 한 등산가의 강철 같은 신념이 산다. 나아가, 그는 자연을 동경하여 산에 올랐지만 바로 그 산을 두려워했다. 미물인 자신이 우주가 빚어낸 산 앞에서 시간 너머의 세계를 가늠하곤 감히 그곳으로 들어가서 비벼대는 일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에밀 자벨의 등반기가 더욱 값지다. 단순한 등반 보고서라기보다는 인간 심상의 정밀한 기록이어서이다. 그가 산에 오를 때마다 꼼꼼하게 그리고 심혈을 기울였던 기록은 그의 사후 16년이 지난 1899년에 한 후배가 정리해 《Souvenirs d’un Alpiniste알피니스트의 회상록》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한국어로는 1991년 고故 김장호 선생이 번역하여 《어느 등산가의 회상》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돼 우리 손에 이르렀다. 그의 생을 엿볼 수 있게 된 건 행운이다.
오래전 알프스 대자연을 누비며 살다 간 한 인간을 2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당겨 내 옆에 앉혀 놓는다. 그가 내게, “있잖아.” 하며 말문을 연다. “저 멀리 빛나는 지평선과 함께, 잔잔하게 이어지는 큰 산자락, 투명한 포도나무잎 창살 아래 숨겨진 그 행복을 상상해보라”고 조용히 말하면 나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히말라야의 고소 적막의 한복판에서 법열에 잠겨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천 년을 머물렀다는 저 고대 인도 바라몬 승처럼. 짓밟고 꺾으며 세상의 송사에 끌려 다닌 것을 부끄러워한다. 나는 에밀 자벨의 삶을 동경했다. 오르고, 배우고, 쓰는 삶의 아름다움을 그를 통해 알게 됐으니, 그에게서 오르는 자의 멋과 쓰는 자의 맛을 봐버렸고 나는 그가 되고 싶은 마음에 무던히도 그를 인용하고, 따라 하며 그의 흉터까지 닮으려 했다. 그래서, 에밀 자벨은 설악에서 금정에서 그리고 인수봉에서 이제 막 등반을 마치고 장비를 땅그랑 거리며 내려오는 젊은 산악인에게 어깨 다독이며 그들의 손에 꼭 쥐여 주고 싶은 사람이다.
‘친구여 나의 소망은 자네는 웃을 테지만 다정한 다른 것들 것 함께 높은 산의 골짜기 휴식을 주는 깊은 평화, 하얀 봉우리들의 자랑스런 싱그러움, 끝없는 산행, 항상 되풀이되는 이런 등산에 대한 희망 없이는 더 나은 인생을 꿈꾸지 못할 것 같네.’ - 에밀 자벨, 《어느 등산가의 회상》, 12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