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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술과 나 (대학 축제)


엊그제 대학 ROTC 모임이 있어 모처럼 술을 마셨다.


나는 술을 잘 못한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 어머니가 나의 얼굴을 보시더니 “어디서 술 한잔 했냐?”라고 물으셨다.


나는 술을 먹지도 않았는데 거울을 보니 내 눈 주위가 빨갛게 물들었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당시 “흔들어주세요” 광고로 유명했던 써니텐(주스)을 먹고 그런 해프닝이 일어났던 것을 기억한다.


40여 년 전 대학 3학년 때 일이다.


5월 공과대학 축제를 성공리에 마친 후 같은 과 출신 복학생인 공대 학생회장이 축제를 도와줘 고맙다는 표시로 나를 포함해 ROTC 동기 3명을 부르더니 술 한잔하자고 했다.


그 당시 변변치 못한 주머니 사정으로 우리는 사근동 학교 후문의 허름한 막걸리 집에서 김치찌개, 튀김 등 안주를 시켜놓고 며칠간 진행된 공대 축제를 자축하고 있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젊은 혈기에 막걸리를 몇 대접 마시니 이미 얼굴은 붉어졌고 취기가 확 돌았다.


밤 9시쯤 선배가 술값을 계산하는 사이, 나는 탁자의 한쪽 모서리를 잡고 일어서는데 그만 탁자 위에 김치찌개 국물이 내 몸을 덮쳤다.


아~~ 뿔사!


검은 베레모를 쓰고, 좁은 어깨를 넓히며 폼 잡고 다녔던, 그 하얀 ROTC단복 위에 분홍빛 얼룩무늬를 만들었으니 냄새는 그렇다고 치고…. 어쩌면 좋겠는가!


시뻘간 얼굴을 하고, 하얀 바탕 위에 마음대로 그려진 연분홍 상의를 걸치고, 역겨운 막걸리 입 냄새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더부룩한 배를 움켜쥐고 내가 542번 버스(중곡동- 한양대-굴레방다리-모래내)에 올라탔을 때, 늘 붐비던 그 버스는 마치 모세가 바닷물을 갈라놓은 것처럼 버스 안은 두 쪽으로 나눠졌고, 좌우로 비틀거리는 나를 피해 승객들은 멀찌감치 달아나 있었다.


나는 버스 끝에 있는 긴 좌석을 침대로 생각하고 누었고, 트림하려는 몸을 뒤 치적 거리며 잠을 잤다.


얼마쯤 지났을 까, 거슴츠레 눈을 떠보니 종로 2가를 지나고 있었고, “조금 있으면 굴레방다리에 도착하겠구나” 하고 잠깐 눈을 감으니 종점인 모래내였다.


정신을 차려, 다시 542번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도착했지만, 술은 여전히 깨지 않았다.


땅이 갑자기 일어서고, 전봇대가 넘어지는 등 희귀한 일들이 줄을 잇더니, 몇몇 사람들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보여 그제야 술이 확 깼다.


하얀색 단복은 연탄집 아저씨가 입고 다니는 작업복이 되었고, 나의 몰골을 보신 어머니가 어이없어하시는 표정이 지금도 역력하다.


그런데 술을 입에도 못 대었던 한 친구는, 자주 하다 보니 소주 1병 정도는 거뜬히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나는 정말 체질적으로 술이 안 맞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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