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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애프터눈 티를 아시나요?


수년 전에 아내와 딸이 홍콩에서 먹은 애프터눈 티가 좋았다고 얘기해서 나는 그 당시 그것이 도대체 뭔가 궁금했다.


그것을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딸이 얼마 전부터 가족과 애프터눈 티를 함께 하고 싶은데 언제가 좋은지 얘기해달라고 해서 결정한 날이 어제 토요일 저녁이었다.


나는 어제 오전부터 오후 내내 K고교 총동문회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나는 타고난 운동신경 부족으로 족구 등 구기종목은 박수 부대원으로 참여하였고, 대신에 기수별 두 명이 출전하는 윷놀이 대표 선수로 참석했다.


모처럼 넓은 마당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는 윷놀이는 재미있었고, 나는 구경하던 친구들의 코를 장난 삼아 문지르며 기를 받아 연거푸 '모'를 몇 번 나오게 하는 등 신들린 듯 파죽지세로 상대팀을 격파했다.


결승전은 아쉽게도 내 파트너가 다잡은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준우승이 되어 우리는 유리로 만든 고급 트로피를 받았다.


연이어 줄넘기 게임은 기수별 총 8명이 참가했는데 나는 감독 인양 작전을 지시하고는 실제 경기에서는 어설픈 운동실력을 여실히 드러내어 땅바닥에 나자빠졌다.


대회를 마치고 집에 오는데 함께 간 친구는 피곤한지 눈을 깜박거렸고, 나 또한 하루 종일 먹고, 떠들고, 던지고, 뒹굴어서 그런지 어디 가서 푹 쉬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간단히 씻고 가족모임에 나갈 준비를 하였다.


애프터눈 티가 유명하다는 청담동 트리아농은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였고, 미리 예약한 6시는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신호등이 많은 일반도로를 피해, 잠실대교 옆을 빠져나오니 평소와는 달리 88 고속도로는 차사고로 인해 주차장이 되었고, 내비를 보니 도착시간이 6시 30분이었다.


약정시간 2시간에서 30분이 줄어들지만, 뭐 그런 것 먹는데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며 애써 초조해하는 가족들을 진정시켰다.


결국 우리는 6시 40분에 도착하였고, 청담동의 한적한 동네에 한자리를 겨우 발견해 주차하였다.


예약제를 한다는 트리아농은 유명세 그대로 빈 좌석이 없었다.


앤티크 한 실내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고, 생각보다 그다지 비싸지 않아 나도 언제 한번 이런데 오겠냐는 생각에 분위기를 즐겼다.


하이디 복장을 한 예쁜 종업원이 무슨 차를 주문할 것인지 물었고, 조금 있으니 삼단 트레이에 아기자기한 예쁜 빵과 케이크 등이 나왔다.


드디어 아들과 나는 딸 덕분에 호강하며 난생처음 경험하는 애프터눈 티 시간이 되었지만, 시간상으로는 디너 티가 되어버렸다.


종업원은 아래 1단부터 먹고, 달콤한 3단은 나중에 천천히 드시라고 설명하였다.


우리는 하나하나 맛을 평가하며 먹었는데, 그중 치즈가 가득 들어간 샌드위치가 특히 맛있었다.


조금 있으니 여주인이 구석에 앉아있는 우리에게 인사하며, 조금 후에 가수 헤이니가 공연한다니 가운데 자리는 갑자기 공연장이 되어버렸다.


키가 작고, 예쁜 헤이니는 헬륨가스를 흡입한 듯 특이한 목소리를 노래하여 박수를 받았고, 중간중간 포토타임도 있어 우리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어제 모임은 우리 부부 결혼기념일에 맞추어 딸이 계획한 이벤트였고, 우연히 유명가수 공연도 직접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일찍 자려고 하는데 아내가 꺼낸 말이 압권이었다.


입이 달짝지근한데 얼큰한 김치찌개나 해서 먹을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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