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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4. 2021

모친과 휠체어


"여기는 처음 와보는 것 같구나!"


뇌경색으로 앞이 잘 안 보이고, 관절염이 있어 거동이 불편한 모친을 위해 남동생이 서둘러 구입한 휠체어를 타고, 30년 가까이 다녔던 망원시장을 둘러보며 하신 말씀이었다.


나는 단골 과일가게에 잠시 머물며 기억을 되살리려고 했는데, 알듯 모를 듯하시더니 생각이 잘 안 난다고 하여 인지기능 문제가 심각한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남동생은 모친이 집에서 답답하게 TV만 보며 소일하는 것보다는 바깥바람을 쐬는 것이 시간이 잘 가고, 기분도 한층 좋아져 빨리 정상 회복될 것이라며 이 참에 휠체어를 사겠다고 하였다.


나는 다음 주 건강보험공단의 등급 심사 결과를 본 후에 사거나, 싸게 빌리는 것이 좋겠다고 했는데, 하루만인 어제 토요일 오후 휠체어를 구입해 깜짝 놀랐다.


주말이라 택배로 2~3일 걸린다는 것을 동생이 인터넷을 뒤져가며 최고급 사양으로 주문했고, 경기도 동탄에 있는 제조회사 사장이 직접 배달하며 우리 앞에서 시범까지 보였다.


남달리 추진력이 뛰어난 동생 덕분에 토요일인 어제 우리는 모친을 휠체어에 태우고, 한강공원과 망원시장까지 2시간가량 돌아다녔다.


동생은 모친께 "엄마도 드디어 차가 있네" 하면서 농담하니,  모친은 "잘 걷지 못하는데 이렇게 멋진 차를 가져 기분이 좋구나!" 하며 웃으셨다.


오래전에 부모님과 마포 한강공원을 산책하려고 수 차례 시도했으나, 안타깝게도 눈비가 오거나 일이 있어 결국 이루지 못했는데 수년 전에 부친이 돌아가시고, 이제야 아픈 모친을 모시니 마음이 짠했다.


우리 형제는 교대로 휠체어를 끌었고, 또 눈이 부시다는 모친을 위해 골프우산으로 햇빛을 가리며 걸었다.


예전에 부모님께 보여주려던 한강변 구축함은 코로나 때문에 출입금지여서 아쉬웠지만,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넓은 한강을 바라보는 느낌이 좋았고, 모친이 좋아하는 흘러간 옛 노래를 들으며 강둑을 따라 걸으니 "이것이 효도고, 행복이구나!" 하는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그래!  아주 좋았어!  휠체어 잘 샀어!  

우리 형제가 얼마나 자주 만나 이렇게 모친을 모실 수 있을까!"


우리는 예쁜 꽃과 푸른 나무숲으로 잘 조성된 한강공원 흙길을 따라 양화대교까지 갔고, 그곳 체육시설 벤치에 앉아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사람들을 쳐다보았고, 또 모친이 바다같이 넓다는 한강을 망연히 바라보며 쉬었다.


강바람이 춥다며 옷깃을 여미는 모친을 보고, 우리는 왔던 길로 되돌아갔고, 망원동 한강공원 교차로에 있는, 작지만 분위기 있어 보이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통유리창 너머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딸기 라테를 드시는 80대 후반인 모친을 보니 오늘따라 젊은이 못지않게 세련되어 보였다.


그동안 나는 혼자서 혹은 아내와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경기도 지역을 버스와 지하철, 또 차로 돌아다니며 맛집을 찾아다녔고, 또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언젠가 해외토픽에서 중국에 사는 70대 아들이 99세 어머니를 위해 자전거 수레로 900일간 세상 나들이를 떠난 영상을 본 적이 있어,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부터는 차 트렁크에 휠체어를 싣고, 연로하신 모친이 가고 싶은 관광지를 여행하리라!


"첫 코스는 어디가 좋을까? "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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