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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Oct 06. 2021

어느 초등학교 행사

어제 아들이 다니는 잠동초등학교에서 개교 25주년 “바자회 및 별빛축제”를 했다.

하늘도 이번 행사를 축하하려는 듯 아침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며 맑은 가을을 뽐내었고, 아내는 아침부터 부엌에서 부침개 재료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4학년 학부모회에서 준비한 부침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100만 원어치가 팔렸다고 아내는 자랑이 대단하다. 말하자면 한 접시에 2,000원(2 접시에 3,000원)에 팔았는데, 총재료비는 25만 원 정도이어서 약 75만 원을 벌은 셈이었다. 이 수익금은 학교발전기금으로 쓰인다고 한다.

나는 퇴근 후 7시 반경에 학교에 도착하니 멀리서도 크게 꿍짝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이미 운동장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놀이기구 옆에는 어머니회에서 어묵, 부침개, 컵라면 등 각종 간식거리를 팔고 있었고,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운동장 한쪽에 마련한 대형 무대를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일개 초등학교 행사인데, 족히 5미터가 넘는 대형 스크린, 그리고 그보다 3배 길이가 넘는 무대, 그리고 3곳에서 카메라맨들이 분주히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프로 가수들의 화려한 무대장치를 연상시켰다. (추후 송파 케이블 TV에 방송 예정)

나중에 아내로부터 들은 얘기로는, 교장선생님이 “더 이상 학생은 공부만, 그리고 선생님은 가르치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한다. “공붓벌레가 아닌, 각자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표할 장소를 제공하며, 평생 남을 좋은 추억거리를 만드는 것이 이번 행사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번 행사는 그저 그런 학예회 수준은 전혀 아니었다. 최소 1~2천만 원의 비용 대부분은 협찬으로 충당하였고, 수개월에 걸쳐 짜임새 있게 준비한 흔적이 역력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1부의 끝 순서인 “난타”공연을 막 준비하고 있던 참이었다. 잠실6동 난타팀은 프로 못지않은 실력을 과시하며 열심히 북을 두드렸다. 그런데 그때 마침 비가 한 두 방울씩 내리고 있어 애써 공들여 준비한 공연이 중단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 나는 서둘러 집에 가서 우산을 들고 다시 학교로 갔다.

다행히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고, 대형 스크린을 통해 나는 사회자(유명 연극인)가 송파구청장 등 많은 초청인사들을 소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참고로 1부(여는 마당)는 리듬체조(송파구 리듬체조단), 합창, 악기 연주, 태권에어로빅, 한국무용 등 각 학년들이 오랫동안 준비한 공연을 선보였다.

이윽고 2부(어울림 마당)는 연극, 재즈댄스, 기압 합주, 파워댄스, 발레, 중창(어머니회), 한국무용(선화여중, 졸업생), 그리고 합창(교장 포함한 본교 교직원) 순으로 다양하게 펼쳐졌다. 특히 파워댄스는 6학년 남녀 어린이들로 구성되었는데 모두 동일한 복장으로 세련되게 춤을 춰, 성숙한 그 얘들을 멀리서 보면 마치 성인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 얘들이 얼마나 많이 연습을 했길래 저렇게 잘할까?” 생각하며 공연을 보았다.

또한 재즈댄스를 춘 1학년 여자 어린이들은 한결같이 화장하여 예쁘게 꾸몄고,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로봇춤을 귀엽게 추었다. 사회자는 그 꼬마 어린이들에 대해 “배가 나온 아이, 이가 빠진 아이, 그리고 무릎이 까친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얘기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윽고, 3부 순서(특별출연)로 초청가수인 김우주가 소개되었는데, 그를 보려고 온 인근의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까지 갑자기 무대로 일제히 모여들어 그들을 정리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자그마한 키에, 귀공자 같은 예쁜 얼굴을 한, 김우주가 무대에 올라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손뼉 치며 그를 환호했고, 대형 스크린에 비친 반듯한 그의 얼굴과 호소력 있는 그의 목소리를 많은 사람들이 디카, 비디오, 그리고 휴대폰에까지 담아두려고 안달하였다.

요즈음 그가 한창 방송에 뜬다고 하는데, 그는 흥에 겨운지 감기로 목소리가 잠겨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속해서 3곡을 불렀다. 그가 다음 가수를 소개한 후 무대를 내려가니 무대 앞에 있던 아이들이 줄줄이 그를 따라 나갔다. 그 후 여성그룹밴드가 나왔고, 비가 조금씩 내려 나는 서둘러 집으로 갔다.

그토록 오랜 기간 준비한 공연이 비로 인해 헛수고가 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한편 개교 25주년을 맞아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거리를 남겨주기 위해 교장선생님 이하 모든 교직원이 수고한 것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과거 내가 어렸을 때 상상도 못 한 공연을 잠동초등학교에서 한 것이다. 격세지감이다. 학교의 최고책임자인 교장선생님의 추진력과 그 많은 비용을 거의 전부 협찬에 의해서 치른 CEO근성이 돋보였다.

공연 도중 아들 녀석은 보이스카웃 대원이라고 의자를 나르는 등 수고를 하더니 피곤한지,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어느새 쌕쌕거리며 잠을 잤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려 다시 한번 감사할 따름이다! 아들 녀석은 오늘은 개교기념일이라고 침대에서 빈둥거리고 있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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