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규선 Nov 03. 2021

실업자가 되신 백부

실업자가 되신 백부

올해 82세이신 백부께서 오랜 기간 천직으로 알고 일해오신 부동산중개업을 며칠 전에 그만두셨다.

소위 ‘복덕방’이라는 부동산중개업 자격증이 없던 시절부터 수십 년간 일해오신 중개업을 포기하고, 드디어 실업자가 된 것이다.

10평 남짓한 조그마한 사무실은 처음에는 적지 않은 돈을 벌어준 회사였고, 어느 때부터인가 궁색하지 않게 용돈을 벌고, 설날이면 손주들에게 세뱃돈 정도는 줄 수 있는 그런 돈벌이 장소였다.

또한 그 사무실은 집에서 100 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길모퉁이에 있었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출퇴근하는 엄연한 회사였고, 종종 친구들과 장기와 바둑을 두는 기원이었으며, 다방이었고, 가끔 술친구들과 소주잔을 마주하는 포장마차 이기도했다.

10여 년 전까지 동네에서 유일무이한 복덕방이었는데, 개발 붐을 타고 부동산중개업 자격증을 소지한 젊은이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해 그 동네는 어느새 중개업소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아직 팔순을 넘는 연세라고 보기에는 10여 년 젊어 보이지만, 눈과 귀가 어두워 같은 말을 2~3번 반복해야 알아들을 수 있으니, 어디 젊은이들의 순발력을 따를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땅의 많은 노인들이 제대로 직업도 없이, 어린 손주들을 돌보거나, 양로원에서 소일하거나, 아니면 파고다공원에서 하루 종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직장을 가지는 것보다 직업을 가지는 것이 정말로 어렵다고 하였거늘, 비록 적은 수입이었지만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노부부가 꿋꿋이 금슬 좋게 살아오신 것에 감사드리며,
힘찬 박수를 보낸다.

누가 그랬던가?

직업을 잃으면 하늘이 울고, 땅이 꺼질 듯이 무척 괴로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시대조류에  물 흐르듯 맞춰 사는 것도 인생을 사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드디어 실업자가 되신 우리 집안의 최고 어른!

그동안 흘러간 세월이 무척 아쉽지만 지금부터는 평소에 못하신 붓글씨를 쓰고, 마작도 하고, 가끔은 산에 오르며 건강을 지키며 오래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백부님! 그동안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2007.03. 19)

작가의 이전글 고집불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