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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스마트폰을 사던 날


어제 모친을 모시고 동네 휴대폰 매장에 갔다.


그동안 모친은 폴더폰을 쓰고 있어 친척 30명이 매일같이 채팅하는 단체 카톡방에도 못 들어와서, 수시로 내가 모친께 전화로 혹은 직접 만나 근황을 전하곤 했다.


올해 96세이신 백부도 단톡방에 글을 써서 올리는데, 모친은 메시지나 카톡은 지금까지 외계인 용어였고, 대충 편하게 소식을 전하는 수단으로 알고 계셨다.


언젠가 모친의 폴더폰을 보니 메시지가 수십 개 쌓여있는데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어 내가 그것을 일일이 보고 삭제하느라 고생했고, 몇 개 되지 않는 전화번호를 정리하는데 네모칸 안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단축키를 잘못 눌러 다른 화면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한때 폴더폰을 썼던 나도 헷갈릴 정도였다.


더구나 작은 화면은 노인이 보기에 매우 불편해 스마트폰으로 바꿔드릴까 하다가 그나마 간단한 폴더폰도 어려운데, 복잡한 스마트폰을 80대 후반인 노인이 쓰기에 무리라고 생각하여 포기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모친의 폴더폰 사용명세서를 보니, 무제한 통화가 가능한 내 스마트폰 비용보다 몇만 원 높게 나와 이 참에 바꾸려고 매장에 들렸다.


1시간 넘게 휴대폰(삼성 스마트폰)을 상담하고, 계약한 후 집에 도착하자, 모친은 크고, 예쁘며, 더 성능이 우수한 핸드폰 사용요금이 반값이고, 추가 비용도 전혀 없다니 말이 되느냐 하면서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나는 단순히 시장논리로 설명할 수 없어 그만큼 기술이 혁신되어 세상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씀드리니,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하면서 연실 웃음꽃을 피우셨다.


나는 휴대폰 켜기와 끄기, 전화 걸기와 끄기, 충전하기 등 기초 사용법부터 메시지, 카카오톡의 모양과 색깔 등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간단한 키 사용법까지 직접 눌러가며 가르쳐 드렸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30분~1시간가량 전화하는 고모와 첫 통화를 하였고, 이어서 동생들을 연결하며 스마트폰 신고식을 하였다.


또한 2시간 넘게 설명한 스마트폰의 기능과 사용법을 따로 종이에 크게 적어 잊히지 않게 조치했다.


거의 매일같이 카톡에 재미있고 유익한 메시지와 동영상 그리고 귀여운 이모티콘까지 보내는 적극적인 고모님 얘기를 꺼내면, 모친은 2살 아래인 고모가 정말 똑똑하다며 늘 부러워하셨다.


그것을 눈치 했는지 고모는 모친에게 손주 사진과 동영상을 연거푸 보냈고, 단체 카톡에도 가입 축하 메시지를 남겨놓으며 수년간 스마트폰을 익힌 달인임을 과시하셨다.


나는 오늘 배운 스마트폰 사용법을 잘 기억하고 연습하라고 말씀드린 후, 마포 모친 집을 나왔다.


~~~


오늘 아침 모친의 휴대폰으로 전화드리니 안 받아, 혹시나 하여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걸었다.


그래도 반응이 없어 집전화로 걸으니 그때 받으면서, 휴대폰에서 소리가 나는데 어떻게 받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아~뿔~싸!


어제 그렇게 쉽게(?) 알려 드렸는데, 그 단순한 전화받기도 안되니 걱정되어 즉시 아래층에 사는 아주머니에게 잠시 올라와서 스마트폰 사용법을 설명해주시라고 말씀드린 후에, 몇 분 지나서 다시 전화드렸다.


모친은 그제야 알겠다고 하시며, 기분이 좋은 듯 전화기 너머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모친은 손이 커서 한 곳이 아닌, 두 곳을 한꺼번에 터치하여 다른 화면이 나타나기 일쑤지만, 한동안 연습하면 조만간 스마트폰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백부처럼 눈이 피곤할 정도로 빽빽하게 글을 쓰거나, 고모처럼 스마트폰을 옆에 끼고 주무시지는 못해도, 또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 서칭은 천천히 하더라도 메시지를 읽거나, 각종 사진과 동영상만이라도 보면서 신세계를 빨리 즐기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코로나로 집콕하여 답답한 모친이 이역만리 캐나다 외삼촌과 카톡 하며 마치 이웃에 살고 있는 것처럼 재미있게 지내실 텐데 그때가 언제쯤일까!


아래층 아주머니가 또 올라오셔서 하는 말씀이 모친이 스마트폰에 익숙하려면 아마 한 달은 걸릴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 20번 넘게 통화하며 모친이 하신 말씀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손이 서툴러 배우기 힘들어도 재미는 있구나!"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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