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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여름방학


오늘이 가을의 문턱인 입추인데도 정말 무덥다!


이럴 때는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거나, 그늘에 앉아 수박이나 참외를 먹으며 쉬는 것이 상책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여름방학 때마다 시골 큰댁에 가서 놀았다.


지금은 상전벽해가 되었지만, 우리 큰댁은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산운동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서울 동대문 버스터미널에서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너더리(넓은 다리, 지금의 분당구 판교)에 도착한 후에, 30분 정도 신작로를 따라 하산운리 큰댁에 가면 점심때가 되었다.


큰댁에는 사촌들이 많이 있는데, 가장 나이 어린 형이 나보다 5살이나 많았고, 목 하나는 차이가 날 정도로 키가 컸다.


그래서 나는 3살 아래인 만만한 사촌동생, 남동생과 셋이서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놀았고, 날마다 어린이날이었다.


아침부터 냇가에 가서 멱을 감았고, 근처 밭에서 수박과 참외를 따서 공처럼 갖고 놀다가 깨지면 그것으로 배를 채우곤 했다.


또한 자갈로 성을 쌓다가 비가 오면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큰 나무 아래에서 기다렸고, 비가 그치면 무너진 성을 수리하였다.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놀다가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리면, 꾸중을 들을까 봐 대문을 통하지 않고 뒷간 옆 개구멍으로 몰래 들어갔다.


우물가에서 숨이 막힐 정도로 찬물에 등목을 한 후에 부엌에 들어가거나, '밥 먹어야지' 하는 소리라도 들으면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용히 밥상 가까이 다가앉았다.


그렇지만 우리가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잡는 날은 개선장군처럼 일찍 들어갔고, 그날 저녁은 통추어탕으로 온 가족이 몸보신하는 날이었다.


또한 방아깨비와 여치를 잡아 놀다가 한쪽 다리를 부러트린 적이 있는데 그러면 질뚝거리며 도망가는 모습을 즐겼고, 해질 무렵에 잡은 수십 마리의 메뚜기는 기름에 튀겨 간식으로 먹었다.


더구나 개구리 넓적다리 구이는 그 당시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었는데, 처음에는 혐오했으나 한번 맛을 본 후에 즐겨먹었다.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를 겨우 할 정도로 좁은 서울 청계천과는 달리 시골은 어디든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우리는 시골친구들과도 어울려 넓은 마당에서 태극기 가이상, 오징어 가이상 놀이를 하였고, 힘이 부치면 자치기와 비석 치기를 하였다.


그때 같이 놀던 동네형은 서울 마포에 있는 경서중학교를 다녔는데 나중에 수학여행을 가다가 버스사고로 죽었다고 하여 놀랐다.


너무 어려서 그런지 그때는 지금처럼 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그 흔한 선풍기나 냉장고가 없었고, 부채가 유일했지만 그나마도 몇 개 없었다.


가끔 대청마루에서 낮잠을 자면 뒤뜰에서 맞바람이 불어 시원했고, 정겨운 매미소리는 자장가였다.


그렇다고 마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소죽을 쑤었고, 도라지를 깠으며, 닭 모이를 주는 등 잡일도 하였다.


또한 꺽다리 사촌 형을 따라 20여분 거리에 있는 선산에 가서 나무를 베었고, 그것을 칡으로 묶어 좁은 어깨에 메고 내려왔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얘들이  밥값을 다하는구나' 하면서 칭찬하셨다.


그러다 보니, 그 길었던 방학도 어느새 다 지나가 개학이 다가오면서 초조해지고, 밀린 방학숙제를 하느라 분주해진다.


숙제도 큰 일이었지만, 일상생활이 비슷한데 매일 그림일기를 쓰는 것이 더욱 곤욕이었다.


하루 이틀에 숙제를 몰아치다 보니 과거 날씨를 몰라 비, 흐림 그리고 맑음이라고 대충 적었으며, 그림일기 일부는 중학생 형이 그려주었다.


방학이 끝나면서 내 얼굴이 희다고 부러워했던 사촌 여동생과 사촌형제들 그리고 어르신들께 작별인사를 드리고, 깜둥이 형제는 큰어머니께서 바리바리 싸주신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서울 집에 도착했다.


그러면 모친은 우리를 보고 얼마나 개구쟁이처럼 놀았으면 얼굴이 그 모양이냐고 웃었고, 어르신 말씀은 잘 들었느냐고 물었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며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에

눈사람처럼 커지고 싶던 그 마음 내 마음


아름다운 시절은 꽃잎처럼 흩어져  다시 올 수 없지만

잊을 수는 없어라  꿈이었다고 가버렸다고

안갯속이라 해도


~~~

~~~


옛날이 그리워지는 것을 보니 나도 제법 나이가 들었나 보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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