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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군대 노래자랑

어디선가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렸다. 학창 시절 즐겨 불렀던 노래 '찬비'였다.

그런데 여가수 이름이 입에 뱅뱅 돌기만 하고,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궁금해서 확인하니 가수 윤정하였다.


그녀가 부른 또 다른 히트곡이 있는데, 그 노래에 대한 추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


1982년 군대 시절의 얘기다.


훈련을 하거나, 사역을 마친 후에는 사병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풀기 위해 장기자랑을 하는데, 그때 경상도 진주 출신의 사병이 많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왔다.


키가 작고 피부는 까무잡잡하지만, 생김새는 프로권투선수인 핵주먹 타이슨과 비슷하고, 그에 못지않게 보디빌딩으로 다듬어진 육체를 가져 많은 사병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별명이 침팬지라고 불리는 김일병이었다.


그는 장기자랑에서 이미 수 차례 검증받아 실력을 발휘한 듯이, 노래 제목을 먼저 얘기하고는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엔 박 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심고. 들장미로 울타리 엮어 마당엔 하늘을 디려 놓고 밤이면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는 마을 녹 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행복하겠소 “


그가 부른 노래는 결코 짧지 않아 누구나 쉽게 부를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손뼉 치며 부르는 신나는 노래도 아니었지만, 그는 노래가 담긴 뜻을 음미하듯 흐느적거리고 특유의 동물적인 미소를 보이며 노래하였다.


우~ 와!!!   앙코르!! 앙코르!!


노래가 끝나자, 함성소리가 포대 연병장을 진동시켰다.


나는 그때 그 노래를 처음 들었고, 그 노래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외모를 가진 김일병이 다소곳이 노래를 불러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인사성이 밝은 그는 군입대 전에 주차장에서 일했다고 하여 또다시 나를 놀라게 했는데, 나는 그를  BOQ(장교숙소)로 불러 그 노래를 배웠다.


그 노래는 사슴 시인으로 유명한 여류시인 ‘노천명’이 쓴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이며, 그 당시 ‘윤정하’라는 인기가수가 불러 히트한 노래였다


나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특히 가곡과 동요를 많이 알고 있어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노천명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를 눈치 못 채게 마음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종이 위에 시를 써가면, 동석한 사람들이 그 긴 시를 어떻게 다 외우냐며 놀란다.


나는 한동안 노천명의 그 시로 인해 인기가 있었고, 결국에는 내 아내와 결혼한 동기가 되었다.


가끔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를 흥얼거릴 때마다 진주 출신 김일병이 생각난다.


그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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