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랑 Sep 14. 2022

어느 40대 주부의 추석

남의 편 집안 차례를 지내는 다른 집안 딸들

5시 휴대폰 알림음을 듣고 일어난다. 오늘 기상을 위해 어제 9시에 취침에 들었건만 눈꺼풀이 자꾸 내려온다. 

'5분만 더 자면 안 되나?'

그러는 사이 5시 5분 알림음이 울린다. 혹시나 해서 5분 단위로 알람 설정을 해 놓았는데... 알람 소리가 야속(?)하게 들려온다. 방 밖 주방에서는 벌써 냄비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님과 형님이시겠지...

나는 몸을 겨우 일으키고 보이지 않는 방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정리한다. 그리고 문 손잡이를 잡는다. 내 예상대로 형님과 어머님이 주방에 계셨다. 

"일어나셨어요"

짧게 인사를 드리고 내게 주어진 추석이라는 시간에 발을 내딛는다.

차례상을 준비하고 나서 멍 때리다 보니 이건 뭔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집안의 차례상을 차린 건 이 집안의 사람들이 아닌 다른 집안사람들의 딸들이다. 결혼을 하면 남의 편 집안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5시 30분이 넘어가는 그 시간 이 집안의 남자들은 나올 생각들을 하지 않는다. 아버님으로 시작해서 큰 아주버님 그리고 나의 남의 편은 방 안에서 나올 생각들이 없는 듯싶다.

'남의 집안 딸이 차례상 차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5시부터 시작된 형식적인 노동에 대해서 그저 한숨만 나온다. 1시간이 흘렀을까 

"아비들 깨워서 밥 먹자"

어머님의 말씀으로 형님과 나는 다시 주방으로 가서 국을 데우고 차례상에 놓인 과일, 한과를 옮길 쟁반을 찾는다. 그리고 닫혀있는 방문들을 한 번씩 번갈아본다

'이보시오 이 집 안 남정네들 잔 일어나서 좀 거들 생각 좀 하시요'

그리고 다시 한숨을 내뱉고 과일과 한과를 올려놓은 쟁반을 들고 주방으로 향한다.


늘 어머님께서는 간소하게 차례상을 차린다고 하셨지만 과일, 한과, 생선, 나물 등 여전히 상 한가득이다. 

"전은 째깐만 해라"

하시면서 꺼내놓은 전을 부칠 재료들 가지는 4가지 양은?? 째깐이 아니다.

"어머님 양이 많은데 남길까요"

"그까짓 거 남겨야? 다 해 불어라"

그렇게 부쳐진 전은 소쿠리로 한 가득 되었다. 

이번 추석부터는 유교 기관인 성균관에서 차례상을 간소화해도 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남의 편 집안은 상관없는 듯싶다.


차례는 한자 茶禮처럼 말 그대로 조상에게 차를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고 전해온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사당에서 차를 올리다가 특정 절기에만 차례를 지내게 되면서 점점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어느 대감집에서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차례상을  규정했는지 몰라도 그 집 며느리들만 고생도 가득, 불만 가득이었을 텐데 어찌 당연하듯이 자리 잡혀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조선이 주자의 나라였다고 해도, 경제 규모나 신분제를 생각하면 누구나 상다리 부러지게 차릴 수 있던 것도 아닐 텐데...


명절마다 집안일 뒤집어쓰느라 한 맺힌 며느리들 중 한 명인 나는 그저 답답하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 40대 주부의 추석 연휴 첫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