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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운 Oct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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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다나, 수디


루카스, 독일


 자정이 넘은 시각, 소파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데 ‘네 옆에 앉아도 돼?’라고 차 한 잔을 들고 있는 여행객이 물었다. 양 옆머리는 모두 밀고 레게머리를 한, 나와 같은 위치에 같은 링의 코 피어싱을 한 남성이었다. ‘내 것도 아닌데, 당연하지.’하고는 이미 끝에 앉았지만,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자리를 정리해 주는 시늉을 했다. 그는 여자 친구와 여행 중인 독일인 남성이었고, 스페인에 사는 루카스라고 했다. ㅡ애인 분도 굉장히 쿨한 스타일의 사람이었지만, 루카스와는 달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려했다.ㅡ


 ㅡ나는 여행자들에게 나를 대충 ‘배낭여행하는 휴학생’으로 설명한다.ㅡ 그도 내 그림을 보게 되었고, ‘뭐야, 너 아티스트잖아?’라며 신기해했다. 그러다 내가 ‘실력도 실력이지만 내겐 예술가는 너무 귀중한 단어라서, 내가 품을 수 없고, 심지어는 평생 가닿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져, 좀 쑥스럽다.’고 족제비처럼 손이라도 모은 듯이 말했더니, 루카스가 이렇게 말했다. ‘길거리만 나가도 허접한 그림 펼쳐놓고 뻔뻔하게 본인을 예술가라고 칭하는 사람이 널렸어!’라고.     


 그러더니 슬리퍼를 질질 끌며 부스스한 모양새로 사랑스럽게 걸어오는 여자 친구에게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이 친구는 한국에서 온 다운이래. 아티스트야.’라고. 얄량하지만 그게 내심 우심실과 좌심실로 손뼉 칠 만큼 기뻤다.     


 그는 본인의 한국 친구가 ‘왜 그래?’라는 말을 알려줬다고 했고, 나는 내 독일 친구가 ‘Fass mich nicht an.(나 건들지 마.)’라는 말을 알려줬다고 서로의 발음에 감탄하며 낄낄댔다. 그 이후로 며칠간은 서로를 ‘Mr.Fass mich nicht an !’ ( Don’t touch me ! ) 혹은 ‘Ms.왜 그래?’ ( What’s up? )로 부르고, 불리며 장난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스페인으로 떠나는 날에도 그는 ‘왜 그래?’라고 외치며 계단을 나섰고.


다나, 요르단


 이 호스텔에 오전 업무를 맡게 될 새 리셉션 직원인 다나라는 히잡을 쓴 여성이 왔다.

 그전까지는 새벽에 내가 업무를 도와주었으므로 호스텔 주인은 다나에게도 ‘나와 친하게 지낼 것.’을 요청했다. 그는 3일인가 일하고 나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직장을 잃게 된 사람이 되었다. ㅡ올해에 바이러스가 영향을 미치지 않은 구석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ㅡ


 다나는 나와 처음 만났을 때 앞머리를 내린 셀카 한 장을 보여주며 ‘Korean Style’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어느 구석이 한국스타일인지는 이마에 얹힌 삼지창 외에는 모르겠으나, 이를 엉뚱하고 귀엽게 생각했었다.


수디, 네덜란드


 ‘오늘 체크인 다 끝났어?’라고 묻는 내 말에 ‘아니, 아직 한 명 덜 왔어.’라고 모하메드가 답했다. 부킹닷컴을 통해 게스트 목록을 살펴보는데 ‘네덜란드/여성/수디’의 정보를 가진 사람이 아직 체크인하지 않았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올블랙으로 차려입은 여성이 들어왔다.     


ㅡ“어서 오세요! Booking.com이나 Hostelworld로 예약하시고 오신 거예요?”

ㅡ“네, 안녕하세요!”

ㅡ“네덜란드! 수디! 맞으시죠? (원래 이러면 안 되지만 확신이 들어 물었다.)”

ㅡ“오, 어떻게 알았어요?”

ㅡ“이게 저희의 서비스예요.”


 내 능청에 서로 어처구니없어서 낄낄대다가, 마저 계산을 돕고, 용지를 작성하고, 수건 한 장 들려주고 호스텔을 소개해주었다. 생각보다 유쾌하고 쿨한 언니라 잘 맞아 만나자마자 같이 ㅡ무슬림 국가라 술값이 정말 비싸지만 (맥주 한 캔 한화 8천 원)ㅡ 같이 새벽 내내 술도 곁들였다. 쿨한 인상과는 달리, 아주 청량하고 체리 같은 목소리와 사랑스러운 제스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고는 ‘내일모레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친구들이 오는데, 그중 한 명이 생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함께 깜짝 파티를 도모했다. 당일 수디가 예약한 투어를 다녀오면 우리가 침대 하나를 풍선과 꽃 등으로 꾸며두고, 커튼을 쳐두기로 하고, 내가 자연스럽게 수디의 친구 둘의 체크인을 돕고 침대의 커튼을 활짝 열며 다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다.     


 당일 나와 모하메드는 한 침대를 생일 당사자인 자밀리아의 사진과 Happy Birthday 데코, 풍선, 장미꽃 등으로 꾸며두었고, 투어에서 돌아온 수디는 발코니에 숨어 있다가 은근히 뒤쫓으며 동영상을 찍으며 다가왔고, 깜짝 파티는 대성공이었다.     


 그러고 일주일 지났나, 세 친구도 급히 3월 16일 저녁에 요르단발 마지막 네덜란드행 비행기를 타고 조기 귀국하게 되었다. 국경이 아주 봉쇄된 3월 17일 눈을 떴을 때 내 맞은편 침대가 제일 먼저 보였다. 원래 그 자리엔 풍선들과 주인공들이 있었으니깐.




빛의 그늘과 눈동자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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