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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an 03. 2024

낼내뺄빼


김치는 나를 괴롭혔다. 전화로 설명을 들어도 그게 그거 같고, 책을 보고 해도 잘 모르겠다. 담그기 전부터 담그고 나서 까지 내내 힘들었다. 이박사오일 정도 몸살이 나곤 했다. 그러다가 결심했다, 사 먹겠다고. 처음엔 죄책감이 들었는데 나 자신을 세뇌시켰다.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고, 더 중요한 일을 하자고. (뭐가 중요한가 묻는다면 다시 길고 긴 얘기가 될 것 같다) 맛있는 김치를 먹게 되어 식구들도 다행이라고 생각할 거다. 이제 즐거이 새 김치를 고른다. (엄마가 아신다면 등짝을 때리시겠지)

      

배영을 배울 때 G는 말했다. 힘을 빼, 더 빼, 아주 쉬워. (쉬울 리가 없잖아) 두려움에 가라앉으며 몇 번이고 물을 마시다가 우연처럼 뜰 수 있었다. 거대한 물의 품에 가벼이 안겨 있었다. 내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소리는 멀어 고요해지고 우주 속에 둥둥 떠있었다. 팔과 다리를 조심히 저으며 앞으로(실은 머리 위로) 나아갔다. 수영을 하는 것보다 가만히 누워있는 게 훨씬 더 좋다. 아무것도 안 하는 기분!    


힘들어서 느려질 때, 종이인형 같은 표정을 지을 때, 주저앉아 쉬고 싶을 때 다정한 이웃들은 말한다. “힘내!” 그래 힘을 내자, 으라차차, 일어나지만 정말 힘들 땐 힘내라는 말이 버겁다. 이미 있는 힘 없는 힘 다 냈는데 어떻게 더 힘을 내라는 거지, 나는 틀려먹은 걸까. 나의 최선을 알아주지 않는 타인에게 서운하고, 최선을 다해도 잘 되지 않는 운명이 원망스럽다.      


다들 최선을 다한다, 너무 노력한다. 힘내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거 같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야 할 지경이라면 선택과 연습이 필요하다. 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지는 게 매너라면 힘을 낼 때 내고 뺄 때 빼는 걸 잘하고 싶다. 힘을 잘 빼면 힘을 잘 낼 수 있겠지. 최선을 아껴서 시간과 에너지를 비축해야지. 정말 중요한 일에만 힘을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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