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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an 31. 2024

더 기다리는 사람이 더 사랑하는 사람


당신은 등굣길에 가방을 메고 정신없이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중얼거린다. 뛰지 마, 넘어진다, 늦어도 괜찮아, 조금 늦어도 별일 없다. 아이들은 그런 말을 믿지 않는 눈치지만.      


난 말이야, 약속에 늦는 법이 없어. 언제나 먼저 가서 기다리지. 당신이 바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늦는 사람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고 속으로 중얼거릴 수도. 하지만 언제나 지나치게 서두르는 사람이 더 많은 시간을 잃어버리는 셈이라는 산법도 있다.      


당신에게 언제나 늦는 단 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을 만날 때 당신은 필요 이상으로 일찍 출발해서 필요 이상으로 일찍 도착한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싫어서, 불안하고 초초해지는 게 싫어서 어느 날에는 일부러 천천히 걸어갈 수도 있다. 약속 장소를 중심으로 둥글게 돌 수도 있다. 쇼윈도를 들여다 보고, 책방에 들어가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글자들을 살펴보고, 탕후루 집의 빛나는 과일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 정도면 좀 늦는 게 되려나 시계를 다시 보고 지금이야, 결심을 하고 뛰기 시작한다. 뛰다 보니 정말로 지각한 기분이다. 더워서 코트를 벗었지만 콧잔등에 땀이 나는 것 같고 볼이 따끈해지는 것 같다. 늦어서 정말 미안해, 소리쳐 사과하며 문을 열지만 당신의 그 사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미안,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당신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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