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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Feb 20. 2024

속아도 꿈결 vs 속여도 꿈결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에서 두루마리휴지와 갑 티슈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정말이지 갑 티슈는 끝을 알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텅 빈 속을 내보이니까요. 뭔가 있는 듯 버티고 서 있는데 손을 디밀어도 아무것도 없을 땐 배신당한 기분입니다. 그럴 땐 발로 콱 눌러서 버립니다. 없음을 표시하려고요. 통쾌해집니다. 여행용 티슈나 일회용 물티슈 같은 사랑도 있겠지요, 최악이지만 사람이 너무 쓸쓸하면 뭐라도 잡고 싶어 지니까요.


어떤 사랑을 좋아하세요. 갑자기 시작되었다가 갑자기 끝나기도 하고, 천천히 시작되었다가 천천히 끝나기도 하고. 갑자기 시작되었다가 천천히 끝나기도 하고, 천천히 시작되었다가 갑자기 끝나기도 하고. 이상한 사랑의 나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담 어떤 이별을 좋아하세요. 그게 좋을 것까지야 없지만(좋을 수도) 어쩔 수 없다면요. 천천히 헤어지는 것과 단번에 깔끔하게 헤어지는 것 중에서요. 슬픔과 고통을 줄이려면 천천히 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유치를 뽑을 때처럼 단번에 뽑는 게 덜 겁나고 덜 아플 것도 같네요. 두루마리 휴지 같은 이별이 예의 바른 자세인가요? 우유부단한 자세일까요?


이상의 <봉별기(逢別記)>가 생각나는군요. 만남과 이별의 기록이니까요. 2월 24일 대보름 지나면 곧 3월, 또 봄이 올 텐데 이 소설이 ‘스물세 살이오. -삼월이요. -각혈이다.’ 이렇게 시작되지요.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을 지나 마지막은 화자와 금홍의 영이별 순간입니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장에 불 질러 버려라 운운(云云)’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를 들으며 읽어도 좋고요. 가을방학의 “속아도 꿈결”을 들으면서 읽어도 좋고요. 사랑이거나 아니거나 사는 게 모두 꿈결 아니던가요. 그런데 말입니다. '속아도 꿈결'은 일정 부분 단 맛을 (잠시나마) 확보하지만, '속여도 꿈결'은 시종일관 쓴 맛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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