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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r 25. 2024

봄 시작

요즘 애완돌이 유행이라지요. 제 곁에도 돌이 하나 있습니다. 유행을 알고 품은 것은 아니지만 돌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마음이 가만해집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요. 이 돌의 과거와 미래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구보다 나이가 많겠지요. 그리고 누구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좋으냐고 물으면 더욱 차갑고 단단해질 것 같습니다. 스스로 냉담에 드는 사람처럼요.      


     너는 누군가 또 물을 부어줄 것을 기다렸다

     기다렸다기보다는 일어난 일이 또 일어날 것이라 여겼다      


     이번에는 헤엄을 쳐보아야 한다

     잠수를 하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자갈을 두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접시에 모로 누워 자갈을 꼭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누군가를 기다렸다 물이 콸콸 접시를 채울 것을 기다렸다

     나는 접시를 두 손에 들고 천천히 늙어갔다      

     -김소연 <접시에 누운 사람> 중 일부      


김소연의 시에도 자갈이 등장합니다. 자갈을 끌어안고 쓰다듬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누운 접시를 두 손에 들고 늙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작은 접시에 누워서 사는 것 같아요. 불가능한 무언가를 꿈꾸듯 기다리면서요. 불가능한 것을 기다리는 일은 불행일까요.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른다면 불행이 아닐까요. 기다림은 그것이 가능한가 아닌가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가능한 것을 기다리는 일이 진정한 기다림 같습니다.      


저로서는 오늘이 봄의 시작 같습니다. 지금 달은 또 얼마나 둥글고 환한지, 마침 보름이네요. 봄이고 밤이고 보름이라니 넘치도록 좋습니다. 저의 돌에도 봄날의 온기가 도는 것 같습니다. 기다렸던 봄, 모두들 잔뜩 즐기시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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