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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Apr 22. 2024

듣는다는 것

listen은 자동사, hear은 타동사입니다. 둘 다 듣는다는 뜻이지만 소리는 듣고(hear) 마음은 듣습니다(listen). 프랑스 사람들은 나비도 나방도 빠삐용이라는 단어로 부른다지요. 그래서 그 둘을 구별하지 못한다고요. 실제로 구별을 못할 것 같진 않은데 말이죠.


단어가 없으면 그 존재가 애매해지고 희미해진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반대로 빈번하게 발생되는 감정이나 현상에는 이름을 붙이게 되지요. 비의 수많은 이름, 눈의 수많은 이름의 탄생처럼요. 어떤 감정의 상태를 우울증이라고 이름 붙이고 나니 그 주변의 모호한  감정들까지 우울증으로 뭉퉁그려지기도 합니다.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극단으로 치닫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23살 거북이가 올봄에는 아직 조용합니다. 원래 경칩 무렵부터 깨어나 신나게 먹고 노는데요. 좋아하는 걸 번갈아 줘도 먹질 않아요. 북어도 싫다 멸치도 실다 새우도 싫다네요. 하도 안 먹어서 경칩이 안 왔는가 했는데 곧 여름인데 그럴 리가 없잖아요. 허둥지둥 살피니 오른쪽 눈을 못 떠요. 눈병이 난 거죠. 일요일 문 여는 약국을 찾아서 안약을 사고 주사기를 사고 슈퍼 문 열자마자 바나나를 사 왔어요. 거북이는 눈이 아프면 안 먹고, 잘 안 보이니 못 먹거든요. 바나나를 묽게 만들어 주사기로 억지로 입에 넣어주고 눈에는 약 넣어주고 애가 타는 휴일이었습니다.

거북이가 말을 좀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하지 않는 그 말을 제가 들을 수 있었음(listen) 참 좋았을 텐데요. 저녁 무렵엔 두 눈을 떴습니다. 이대로 완치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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