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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y 04. 2024

어린 숨들

아파트 방음벽 격자무늬를 따라 푸른 잎이 자라고 있습니다. 어느 틈으로 파고들었는지 # 모양으로 창 부위를 앞뒤로 잡고 있어요. 저 방음벽은 겨울에는 얼음이, 봄여름가을에는 생명들이 충만하여 무너질 일 없겠어요. 저도 모르게 파고드는 것들, 우리의 삶을 잡아주는 것들. 미약하지만 끈질기고 강대해지는 것들. 어지러운 마음을 기대어 한 시절을 통과할 수 있게 해주는 일들.


L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한 가지 업의 최고자리까지 당도하신 후 모함으로 모든 것을 잃었던 때, 중한 병을 앓고 오래 입원을 하고 나오셨는데요. 세상에는 그의 진실을 믿는 쪽이 반, 모함을 더해가는 쪽이 반. 뒤로 밀려난 것을 고소하게 여기는 자들도 많았다고요. 그대로 세상을 끝내버릴까 싶던 때에 그의 딸이 첫 딸을 낳았다고요. 매일 아이와 함께 그를 찾아뵙고 놀다 갔다네요. 그만 죽어도 좋을 아득한 그늘 속에서 고물고물 자라는 어린 숨을 바라보니 살아지더라고요. 차마 잡기도 겁나는 그 작은 손이 그를 끌어올려주었다고요. 생명은 그렇게나 힘이 세고 아름답습니다. 어린이날이 내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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