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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아름다울 텐데

by 김박은경

꿈속의 꿈


잠깐 잠든 사이

누군가 급히 꿈 바깥으로 달려가는

발자국 소리


센서 등이 화들짝 놀라 눈을 뜬다

아침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잠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병실을 나와 텅 빈 복도를 걷는다


살아온 날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같다 어디선가 박쥐 떼가 어둠을 깨고 날아오를 것 같다


일생이 꿈이 아닌 적이 없었으니 지금도 꿈일 거라고 꿈속의 어느 먼 강둑을 한정 없이 걷고 있는 거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어제 육신을 벗어놓고 떠난 그림자는 불에 타지 않아서

도처에서 어른거린다

여러 가지 색으로 덧칠된 삶은 갈수록 모호해지고 오늘과 내일의 경계도 흐릿해진다


"정맥주사라 좀 아플 거예요“


웃는 일에 열심인 간호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나를 번역해서 소리 죽은 글자를 흰 종이에 옮겨 적는다


삶을 복사한 꿈에서 한 덩어리 삶이 천천히 빠져나간다


-홍일표, 『웹진시인』 2024 가을호




그는 밤의 병동을 걷고 있다. 병동의 밤은 고요하고 쇼윈도처럼 밝다. 병원에서 어둠은 허락되지 않는다. 병원에서 어두운 곳은 단 하나, 환자의 몸속일지도 모르겠다. 병이 태어나는 곳, 병이 죽어버리는 곳. 병이 이기거나 몸이 이기거나 결국에는 다 지게 되겠지만, 진다 해도 정말로 지는 것은 아닐 거라고 믿고 있지만, 실은 잘 모르겠다.


그는 ‘텅 빈 복도’를 ‘동굴’로 그 동굴을 다시 ‘꿈속의 먼 강둑’으로 확장한다. 그 과정에서 과거가 현실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미지로 확대된다. 동굴 같은 삶에서의 ‘박쥐’는 동굴 속의 걸음을 놀라게 하고 무섭게 하겠지.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적 반복에 강 펀치를 날리겠지. 박쥐는 병이고 병증이고 증후다. 병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을 소중함들을 깨닫게 하겠지.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요, 소리쳐 말하고 싶다. 고약한 박쥐를 날려 보내시지 않아도 잘할게요, 잘 살게요, 힘들게 하지 마세요, 말하고 싶다.


그러나 신이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나의 습관이 타성이 무심함이 무책임함이 그러니까 나 자신이 병을 불러오는 것일 수도 있다. 병이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 그 순간 우리는 진지해진다. 그런 게 병의 효용일까.


그의 주위에도 ‘그림자’들이 어른거리는구나. 서둘러 죽은 사람이 있겠지. 오래 앓다가 죽은 사람이 있겠지. 우리는 살며 몇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게 될까. 어떤 죽음이 사라지지 않고 자꾸 ‘어른거리’는 걸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우리들이 어떤 ‘그림자’를 놓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못다 한 이야기, 못다 한 일, 못다 한 사과 같은 것. 일생의 어느 하루 함께 낯익은 복도를 거닐었을까. 환한 이마에 드는 햇살 조각, 다정한 안부 같은 일들.


병 속에서 시간은 생명처럼 숨을 쉰다. 내가 사는 시간이 아니라 시간이 사는 나라는 듯이. 우리들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가장 아름다울 텐데.


그는 밤의 병동에서 ‘소리 죽은 글자’를 적는다. ‘번역’해서 적어야 한다. 번역이란 귀 기울이는 것, 고요해지는 것, 밤의 병동보다 더 고요해지는 것. 그것은 ‘흰 종이’에 옮겨 적어야 한다. 마치 유서처럼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을 다해 적는다. 한 편의 이 시가 내 생의 마지막 시가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의 마지막 시간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앓아가는 나날은 알아가는 나날이라고 나는 이어서 적고 싶다. 흰 종이는 병동의 복도처럼 길게 이어지고, 복도는 또 병원 입구와 그 앞의 건널목과 그 앞의 주차장과 그 앞의 거리로 이어져 있다고 바로 거기 오월의 밤이 도착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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