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와 노동자

by 김박은경

퇴근길, 올해부터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부른다는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근로자의 날이 노동절이 되면, 뭐가 달라질까요. 근로자와 노동자는 무엇이 다를까요. 결국은 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 아닌가요. 이름 하나 바꾼다고 삶이 바뀔까요.


조금 찾아보았습니다. ‘근로’는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이고, ‘노동’은 몸을 움직여 일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근로라는 말에는 태도가 먼저 떠오릅니다. 성실함, 근면함, 묵묵히 맡은 몫을 해내는 사람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노동이라는 말에는 조건이 보입니다. 얼마나 일하는지, 무엇을 받는지, 어떤 대우를 받는지 같은 질문들이 따라옵니다. 그래서인지 ‘근로자’라는 말은 법과 제도 속에서 자주 쓰이고, ‘노동자’라는 말은 권리와 존엄을 이야기할 때 더 자주 등장합니다.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부르는 위치와 방향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묻지 않고, 버티고, 참고, 성실하면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는 맹목적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떠오르지요. 몸 사리지 않고 힘든 일 자처하시던 시절말이지요. 함께 일하는 사람이 다치고 영영 사라져도 다시 일하러 나서는 무거운 발걸음도 떠오릅니다. 오래전의 일도 아니네요. 뉴스에서 보게 되는 청년들의 죽음, 플랫폼 노동자들의 죽음 등은 비일비재하니까요.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꾼다는 이 변화는 일하는 사람을 다르게 불러보겠다는 작은 시작처럼 보입니다. 성실함만을 요구받는 존재가 아니라, 권리와 존엄을 가진 사람으로 말입니다. 이름을 바꾼다고 당장 월급이 오르지는 않을 겁니다. 퇴근 시간이 빨라지지도 않을 거고요. 그래도 말이 바뀌면,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생각이 달라지면, 태도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우리는 더 오래 일하며 살아갑니다. 정년은 늦춰지고, 일할 수 있다면 계속 일하고 싶다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보다 어떤 마음과 어떤 조건으로 일하느냐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단어를 만들지만, 단어는 다시 사람의 시선을 만듭니다. ‘노동절’이라는 이름이 일하는 하루를 조금 더 존중받는 날로 기억하게 만든다면, 그 변화는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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