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에 잠든 옷이 있습니다. 한 철을 벼르고서야 산 옷인데, 막상 입으려니 너무 짧았습니다. 애써 입어보기도 했지만 거울은 냉정했습니다. 비슷하게 생긴 또 다른 옷이 있습니다. 길고 여성스러워서 입으면 특별한 여인이 된 듯한 기분을 주는 옷이었지요. 하지만 목 부분이 불편해 겉에 입기엔 망설여졌습니다.
두 옷을 꺼내 놓고 바라봅니다. 한 벌로 만들어볼까. 방법은 간단합니다. 짧은 옷의 상체와 긴 옷의 하체를 합치는 것. 가위로 자르고, 바늘로 꿰매면 됩니다. 가위를 대는 순간부터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한 번 자르면 어떻게든 완성해야 합니다. 간절함이 손끝에 힘을 줍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 새로운 옷이 완성됩니다. 입어봅니다. 마음에 듭니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못 입는 옷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옷을 살 때는 조금 더 숙고해야 한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잘라버리고 나면 물러설 수 없기에 오히려 끝까지 해낼 힘을 얻습니다.
바느질의 즐거움은 대체 무엇일까요. 바느질을 하고 있다는 건, 지금 내 마음이 비교적 평온하다는 증거입니다. 급한 걱정도, 당장 해결해야 할 큰 문제도 없다는 뜻이지요. 두 다리를 편히 뻗고 실과 바늘, 옷감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작은 축복입니다. 그 반대도 사실입니다. 바느질을 시작하면 걱정거리로부터 거리두기가 가능해져요. 평온해집니다.
음악을 틀어두기도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선은 손끝에 고정되고, 생각은 한 땀 한 땀 사이로 사라집니다. 잡념은 실처럼 풀렸다가, 어느 순간 매듭 없이 흩어집니다.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며칠이 걸리는 바느질거리는 그렇게 긴 명상이 됩니다.
이런 명상 같은 일들은 우리 곁에 많습니다. 설거지, 걸레질, 현관 바닥 닦기, 욕실 청소. 어떤 이는 운전이 명상 같다고 말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손끝에만 집중하다 보면, 깨끗해지는 건 대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마음이 복잡할 때 욕실 청소가 최고라는 의사의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겠지요.
명상이 되는 일들은 대개 어렵지 않은, 단순한 노동에 가깝습니다. 오늘도 틈틈이 그런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바늘과 실로 옷을 합체한다면 그 과정의 나는 광폭의 옷감으로 해체되는 것 같습니다. 너울너울 자유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