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마다 키링을 걸고 다니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인형을 빼곡하게 채운 투명한 가방을 멘 여행객을 보면, 저 무거운 걸 왜 달고 다닐까 싶다가도 그 귀엽고 이상한 풍경에 자꾸 눈길이 간다. 키링에서 시작되는 이 작은 인형들의 세계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걸까.
심리학에서는 이런 물건을 전이 대상(Transitional Object)이라 부른다.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는 애착 물건이 있었다. 내 딸아이에게는 분홍 장미꽃이 가득한 흰 타월 이불이 그랬다. 다시 살 수 없는 그 이불을 기워 쓰고, 낡아지면 작게라도 잘라 살려 쓰던 시간들. 많은 시간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아이에게 그 포근한 천 조각은 불안과 외로움을 덜어주는 유일한 방어막이었을 것이다. 이제야 그 마음이 읽혀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 든다.
이 '애착'의 습성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변모한다. 어른들의 키링은 자아의 확장이자 작은 안전장치다.
청소년들에게는 또래 집단에 소속감을 주는 연결 고리가 되고, 20~30대에게는 팍팍한 일상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는 개성의 표현이 된다. 40대 이상에게는 여행지의 추억이나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특별한 의미가 담긴 구체적인 위로가 된다.
흥미롭게도 직장인 남성들의 가방은 유독 매끈하고 비어 있다. 그들은 위로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하다고 외치는 걸까. "다 큰 남자가 뭐 그런 걸 달고 다니냐"는 상사의 비웃음이나 사회적 시선에 스스로를 가둔 걸까.
사실 그들의 애착은 인형 대신 다른 곳으로 숨어든다. 겉으로 드러나는 인형 대신 주머니 속의 자동차 키홀더, 혹은 고가의 운동 장비 같은 성능과 효율의 껍데기를 쓴 장비들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하곤 한다. 귀여움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들이 선택한 생존 방식일지도 모른다.
양복을 입고 샘소나이트 백팩을 멘 채 달려가는 서른 즈음의 남성을 보았다. 흔들리는 가방 끝에 아주 작은 '다스베이더' 인형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그 순간 냉랭했던 비즈니스의 세계에 작은 틈이 생겼다. "나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소년이기도 해"라고 나직이 읊조리는 듯한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워 보였다. 일도 열심히 하지만 개인적 유희도 잊지 않는 사람이겠지.
저마다의 가방에 매달린 작은 존재들이 부디 그들의 일상을 조금은 덜 팍팍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