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박은경 Dec 31. 2023

쓰다 보면 써진다, 안 쓰면 안 써진다


올해 중간쯤 세웠던 계획 중에 ‘매일 한 편의 시’를 쓰자는 것이 있었다. 매일 한 편의 시가 (기적적으로, 이상하게) 써질 때 했던(잠깐 동안의) 일이었다. 좋은 시인가, 그런 질문과는 무관하게 막무가내로 쓰자고, 쓰다 보면 더욱 쓰게 되고, 그것들의 총합을 거르면 제법 좋은 것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다. 결론은 실패.      


쓰다 보면 쓰게 되는 게 틀린 말은 아닌데 리듬을 이어가는 게 어렵다. 급한 마감이 있을 때, 급한 다른 일이 생길 때 (늘 그렇더라고요) 그래도 열심히 쓰자고 마음먹지만 시간은 마른 모래처럼 빠져나가고 졸다 보면 쓰레기통이 차오른다. 이게 다 뭐야, 버리자. 시를 어떻게 쓰는 거지, 낙담한다.      


이곳의 글은 어떤가. 일주일에 한 번만 쓰려고 했는데 지나치게 연속적이다. 쓰다 보니 쓸 이야기가 생기고, 안 쓰면 허전해져서 올리고 있다. 써야 하는 글이 아니라 써지는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회피인가, 차선인가, 혹시 차악인가. 아니, 쓰다 보면 써진다는 말은, 안 쓰면 안 써진다는 말 아닌가.  

     

거꾸로 생각해 보았다. 써지지 않는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저항하는 마음의 힘으로 결국에는 좋은 글을 쓰게 될 거라고. 마음을 다잡고 속도는 줄이고 덜 중요한 일은 처내며 가볍게 시작하자고. 한 줄짜리 시를 써보자고(그게 더 어려울 수도), 한 줄만 써보자고. 한 줄을 쓰다가 절망하고 두 줄을 쓰다가 더욱 절망하자고. 악전고투의 시간이 무언가를 완성시킬 거라고.   

   

중요한 것은 읽어주시는 분들(과 나)의 타임을 킬링 하지 않도록 자판을 달려 나가기 전에 머릿속으로 대략의 얼개를 구상할 것. 결말에 대한 의도를 가질 것. 의도와 다르게 결말이 흘러간다면 열린 마음으로 숙고할 것. 내년에도 매일 한 편의 무언가를 쓰는 목표는 계속됩니다. 무엇이든, 이라고 괄호를 열어놓는 것으로 스스로를 풀어주려고요.       


p.s. 올 한 해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글 많이 낳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취향은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