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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요리네요. 요리! +17

식빵..

아이들이 늦은 아침을 즐기는 날이었습니다.



아직 곤하게 자는 아이들을 위해 '아빠표 장난'을 또 쳤습니다. 이번에는 식빵입니다. 요즘 토스트해서 바로 먹는 식빵들은 제법 두툼합니다. 그래서, 토스트기에 넣을 때는 꽉 끼어서 넣는 게 쉽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 구워져서 툭 나온 노릇노릇한 빵을 한 입 물었을 때 폭삭하면서 달달한 느낌은 말이 필요 없이 최고입니다. 거기에다가 아메리카노의 쓴 맛을 이어서 삼키면 그냥 행복해지곤 합니다.



그런 두툼한 식빵을 가지고 장난을 치려고 한 이유는 코스트코에서 사 먹던 베이크들이 생각 나서였습니다. 한때는 코스트코를 부담 없이 다닐 수준이 되어서 수시로 가곤 했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살 때까지 키보다 큰 상품 렉을 돌아다녔고 그런 시간 동안 그냥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아내가 원하는 가격대의 필요한 상품을 살 때까지 아무 불평 없이 카트를 밀고 다녔습니다. 쇼핑이 끝나면 주차장으로 가기 전에 꼭 베이크를 많이 사서 집에 가는 동안 차에서 먹으면서 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먹는 베이크는 항상 기억 속에 남길 만큼 맛있고 맛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맘 편히 갈 형편이 되지 못하기 시작하면서 그때 느꼈던 입맛만 생각하면서 아쉬움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그 느낌을 살린 '간식 장난'을 치기로 했습니다.



먼저 토스트기에 바로 구워 먹는 두툼한 식빵을 굽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식빵이 왜 이리 두꺼워! 토스트기에 잘 안 들어가잖아! 이그'라면서 짜증을 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도 짜증이 안 났습니다. 오히려 얼른 빵을 구워서 다음 과정을 하고 싶어서 조바심만 났습니다.



그렇게 토스트기에 빵을 일인당 두 개씩 먹도록 구웠습니다. 저희는 5인가족이니까 한 봉지를 모두 구웠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먹고 남겨둔 냉장고의 소불고기를 꺼내서 다시 볶았습니다. 우리 부부와 큰아들을 위해서는 소불고기절반은 고추장과 스리라차 소스를 넣어서 볶았고, 나머지는 그냥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워서 매운 것을 못 먹는 두 딸들을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매운 소불고기와 그냥 소불고기는 만두소처럼 쓰려고 합니다. 아까 구워둔 두툼한 빵을 칼로 잘랐습니다. 가른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테두리 가운데를 찔렀습니다. 그리고 배를 가르듯 가로로 갈랐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칼을 밀어 넣으면서 위와 아래로 계속 가르면서 들어갔습니다. 반대편 갈색 빵테두리에 칼이 닿지 않을 때까지만 속을 갈라줬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태블릿 파우치처럼 식빵이 준비됩니다. 그렇게 10장을 갈라서 준비했습니다.



그 속에 아까 만들어둔 매운 소불고기와 안 매운 소불고기를 숟가락으로 넣어줬습니다. 많이 넣으면 식빵가운데가 터지고요. 적게 넣으면 아무런 느낌도 없습니다. 10장을 만들다 보니 요령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빵에다가 만두소를 넣듯이 채워 넣고 나니 10장이 완성되었습니다.



10장에 소불고기를 채워 넣은 다음에 냉장고를 또 열었습니다. 두 딸들이 좋아해서 피자치즈로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소불고기 속을 넣은 빵의 입구에다가 피자치즈 조각들을 쑤셔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릇에 두 개씩 올린 다음에 전자레인지에 돌렸습니다. 피자치즈가 녹아서 살짝 흐를까 말까 할 정도로 1~2분 정도만 돌렸습니다. 그렇게 5인용 10장을 모두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부산을 떨면서 전자레인지를 돌리다 보니 아이들 먼저 슬슬 깨기 시작했습니다.


"뭐야!! 아빠가 또 뭐 만들었다!"

"어디?"


화장실이 급해서 먼저 일어난 큰아들이 부산 떨면서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는 먹어도 되냐는 말에 "먹으라고 만든 거다!"라고 했습니다. 한입 물더니 바로 엄지 척합니다. 그 몸짓에 저도 기분이 좋아서 "코스트코 베이크 같지 않냐?"라면서 물었더니 "오웅.. 비슷해요. "라면서 한 번 더 흐응해줬습니다. 두 딸들도 그 소리를 듣고 나오자마자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아내도 일어나더니 "와아! 아빠가 아침 만들어줬네."라면서 재밌어해 줬습니다. 다들 맛있다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장난으로 만든 간식이 또! 다행히! 온 가족이 즐거워해줬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냉장고 파먹기도 성공했고 아이들이 잘 먹고 또 재밌어해서 느지막한 휴일시작이 즐거웠습니다. 이번에도 마술쇼를 성공한 마술사같이 되어서 가족들 앞에서 저의 자존감도 올라갔습니다.




항상 레시피는 없습니다.

갑자기 생각나서 만들고요. 혹시나 해서 먹고 나서 찾아보면 이미 있는 레시피도 있지만 아직 레시피로 공개된 적이 없는 것도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나서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 이리저리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엄지 척해주면 그 자체로 '게임 끝'입니다. 레시피가 있건 없건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참! 재주 없는 사람이다.

저는 재주가 없습니다. 다른 재주가 아니라 제일 중요한 돈 버는 재주가 없습니다. 타고나지 않아서 포기했지만 자꾸 자책하게 되는 이유는 돈 때문에 마음고생하는 아내와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 늘 우는 삼 남매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가진 것들로 이런 잠깐의 재미를 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모두 먹고 나면 설거지도 제가 하는데 뿌듯함과 함께 또 생각납니다. '아! 진짜 돈 버는 재주만 더해주시면 더 큰 기쁨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제발'이라면서 애꿎은 그릇을 몇 번이나 닦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한 것입니다.

제가 '이러면 어떨까?'라고 생각하면서 만든 장난 같은 간식에 아이들이 엄지 척해주고 '오오~~'라면서 해준 추임새 덕분에 자꾸 냉장고 속 남은 음식 가지고 간식을 만드는 장난을 칩니다. 계속 간식 장난을 치는 이유는 아이들 엄지 척 때문입니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듯이 아이들의 엄지 척이 아빠가 자꾸 만들게 하는 겁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고 나서 급반성도 했습니다. 저처럼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칭찬을 해주면 못하던 것도 잘하게 되고요. 쭈삣거리던 것도 어느새 자랑스럽게 해내는 것을 이미 많이 봤는데 저는 여전히 '엄지 척'을 못해주고 있었습니다. 반성 많이 했습니다.



남은 음식을 가지고 아이들이 '엄지 척'하는 간식을 만드는 재주꾼 아빠라고 자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의 '엄지 척'에 자꾸 용기 내는 마법을 잊지 않고 싶어서입니다.'엄지 척 마법'을 아이들에게 다시 돌려주겠다는 다짐을 잊고 싶지 않고, 그 '마법'을 공유하고 싶어서 오늘도 적었습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사진: Unsplash의 Charles 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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