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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주는게 사랑이다. +38

남은 음식

아이들과 음식을 먹으면서 느낀 것을 적어보고 있습니다. 그런 일상을 적으면서 제가 느낀 것들이 다양하고 그것을 나누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남은 음식

먹기


근무가 색다른 일을 하다 보니 잘 차려진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보통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를 가거나 출근하는 것이 일반적인 루틴입니다. 저는 갈 길이 멀기에 이른 새벽에 첫 지하처로 나가기도 하고요. 늦은 저녁에 나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뒤죽박죽 지내는 저와 지내는 아내와 삼 남매는 혼란스럽지만 차츰 적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이 밥을 먹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간신히 짬을 내면 과자 먹으면서 다 같이 모인 시간에 하루 종일 생긴 일을 잠깐 나누고 자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다 보니 같이 밥 먹는 시간이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부모 2 자녀 3 총 5명이 다 같이 모여서 먹고 마시며 나누는 시간은 엄청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 되어갑니다. 서로에게 애틋해지기도 합니다. 5명이 모두 모이면 "오우! 오랜만인데. 아빠도 함께하니까 좋다!"라면서 한 마디씩 해줍니다. 그럴 때마다 "고맙다. 먹자!"라면서 가족 안에 살고 있음을 감사히 여깁니다.



그렇게 먹고 마시며 나누는 시간이 아닐 때는 혼자서 컴컴한 새벽에 뭔가를 꺼내서 입에 넣고 새벽 출근길을 나서거나 다들 등교하고 출근한 시간에 집에 들어와서 뭔가를 먹고 잠시 자다가 모두가 집에 오면 함께 저녁 일상을 시작합니다. 특히 모두가 등교하고 출근한 빈집에 들어올 때면 휑한 집공기를 가르고 냉장고로 갑니다. '뭘 먹을까?'라면서 둘러봅니다. 어릴 때부터 냉장고 열고 구경하는 걸 즐긴 버릇이 아직도 있습니다. 당황스러운 것은 삼 남매가 그런 저를 닮아서인지 집에 들어오면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그냥 서 있기도 합니다.



'뭘 먹을까?'라면서 둘러보다 보면 밀폐용기에 담긴 먹다 남은 음식들이 몇 가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열어보다가 먹을 것을 정합니다. 그리고, 전자레인지에 데우거나 에어프라이기에 다시 구워서 먹습니다. 먹으면서 포장이 잘된 새 음식은 아니지만 데우거나 에어프라이기의 손길로 재탄생한 음식의 맛이 나쁘지 않다고 끄덕거리면서 혼자 조용히 먹고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곤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졸릴 경우 잠을 자고 졸리지 않을 경우 글을 다듬거나 또 다른 공부를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런 의지와 달리 근무를 하고 난 이후라서 그런지 앉아서 노트북을 앞에 놓고 자거나 책을 보다가 책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 앉은 채로 잠을 자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자다가 보면 아이들이 하교할 때도 있습니다.


"어! 아빠 그거 먹었네! 그거 어제 엄청 맛있었어요."

"아빠! 그거 엄마가 해준 건데 진짜 맛있더라고요!!"

"그거 주문해서 먹은 건데 내가 너무 먹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주문해 준 거예요."

"으응.. 그래... 아빠... 잘게!!~~~"


그렇게 대화가 조금 이어지다가 못내 치우지 못하고 다시 침대로 가서 잠을 자기도 합니다. 짧은 찰나였지만 냉장고 속 남은 음식을 먹다 보니 아이들과 교감이 되면서 어제 아이들이 이 음식을 통해 신났던 감흥이 제게 전해지면서 잠시 웃고 웃어주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음식은 혼자의 만족을 채우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서로와 서로를 이어주는, 저희 집에서는 아이들과 저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합니다. 남은 음식을 꺼내 먹었더니 어제 아이들이 먹었던 음식이고 특히 엄청 맛있고 재밌었던 감흥이 그 음식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어서 즐거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 혼자 집에 있을 때 새 음식을 만들어먹기보다는 남은 음식을 먹는 것을 즐길 때도 있습니다.


"냉장고에 남은 거 내가 먹고 처리했어요!! 여보!!"

"남편, 그거는 남은 음식이 아니에요."

"그럼요" 애들이 먹다 남긴 거 아니에요? 아니면 먹기 싫은 거 남은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남편. 당신 오해하는 거예요!!"

"엥?"

"아이들이 맛있다고 아빠 남겨드리라고 해서 남겨놓은 음식이에요.

너무 맛있다고 내일도 먹겠다고 남긴 음식이에요.

맛있는 음식 먹는데 당신이 없어서 허전하다고 미리 떠 놓은 거예요. 당신 위해서요."


"미안해요!!!!!"


할 말이 없고 그저 미안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요구했던 모습이 한심해서 이제는 가족을 위한다고 밀폐용기에 담은 음식이 있으면, 먹다 남긴 것 같은 음식들이 있으면 그것들을 냉장고 파먹기 하듯이 '먹어주는 것도 사랑이다.'라는 생각으로 먹어주며 흐뭇했었습니다. 철저히 반대였습니다. 사랑해서 미리 떠서 남겨둔 음식이며 함께 먹지 못한 아쉬움에 남겨준 음식이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었습니다.



남은 음식


아니다.


남겨둔 음식이었다.

먼저 떠 놓은 음식이었다.


남은 음식, 먹어주는게 사랑이 아니다.

남겨 둔 손길이 사랑이었다.

그걸

몰랐다.




남은 음식을 먹는 이유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처음 시도한 음식이 맛이 없을 때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어찌어찌해서 먹지만 남은 음식은 먹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는 제가 먹기로 합니다. 아빠는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비위가 좋다고 아이들은 느낍니다. 저는 그런 것도 시행착오이며 그런 시행착오도 아빠 앞에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그렇게 합니다. 다행인 것은 여태까지 다른 나라 음식을 먹으면서 비위가 상해서 못 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출장 가서도 처음 먹는 음식도 잘 먹어도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었습니다. 작은 음식에서부터라도 시행착오를 맘껏 해보도록 돕고 싶은 마음에 저도 노력하는 수단입니다.



저만을 위한 음식을 요구했던 지난날을 후회합니다.

저는 아빠로서, 남편으로써 저를 위한 스페셜한 대우를 요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얼마나 상대방을 힘들게 하고 피곤하게 하는 것인지 몰랐던 때였습니다. 늘 저를 위한 음식, 퇴근하고 오는 저를 위해 따로 준비된 음식을 먹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반성하고 나니까 이제는 저만을 위한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함께 준비하고 같이 먹고 때로는 남은 음식도 감사히 먹는 마음을 겸비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자 아빠인 저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특별한 사람들임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사랑한다면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주고 기다려주는 것을 몰랐던 것이지요.



남은 음식, 그것을 통해 사랑을 경험하다.

먹다 남은 음식이 아니라 미리 떠 놓거나 특별히 남겨준 음식이었음을 알고 감사했고요. 그 음식을 먹음으로써 아이들이 전날 먹으면서 행복했던 감동과 감흥을 같이 느끼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아하! 이게 그거야? 맛있네! 어제 굉장히 재미있었겠다!"라면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어제저녁식사자리에 없었던 제가 다시 그 자리에 포함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 좋은 식사가 되기도 합니다. 음식은 음식의 종류와 맛에 따라서 특별해지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 어떻게 준비되느냐에 따라서 특별해지는 것 같습니다.

먹다 남은 음식이 아니라, 같이 먹지 못해서 아빠를 위해 특별히 남겨 둔 음식이기에 특별하고 먹으면서 특별한 감동을 경험하게 되니까 저는 그럴 때마다 특별해집니다.



별거 아닌 음식들을 먹으면서 느낀 감동들을 나누는 시간이 감사하기도 합니다. 남은 음식을 먹으면서 제가 가족들을 위해 사랑을 베푸는 줄 알고 으쓱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저를 위해서 특별히 남겨 둔 음식이었고 그 음식들 덕부에 저는 더 특별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더 큰 사랑을 받고 서로 더 애틋한 마음을 느끼는 시간들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해야 하는 사람이고요.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사느라 버거운 것이 아니고 제가 앞에 서 있기는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주는 사랑으로 다리 네 개가 버텨주는 널빤지 같은 존재입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Sishir Malak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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