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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라는 말에 우는 남자

아.....

저녁식사 후 아내와 운동삼아 동네를 산책한다.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하루종일 일어난 일들에 얘기한다. 요즘에는 서로 대화가 통한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 좋게 걷는다. 그러다가 예상 못한 부분에서 또 의견차이가 생긴다. 주제들은 다양한데 싸우는 포인트는 늘 비슷하다.  


 

주로 아이들 학교생활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세 아이가 각각 친구들과 겪는 오해, 속상함, 화난 일들과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해 승낙하는 것이 주된 주제이다. 이번에는 아이가 가고 싶은 학원 이야기였다.  



"남편, 아이가 학원을 다니고 싶대요."

"여보, 우리가 다 해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매번 하고 싶다고 해놓고선 제대로 안 하잖아요."

"태권도도 그렇게 가고 싶다고 졸라서 보내줬더니 간 지 며칠 만에 소리 지르는 게 싫다며 관뒀잖아요."

"자기가 하고 싶다고 했는데 연습도 잘 안 하고 잘 안 가려고 하잖아요."



"그래도 아이가 원하는 것이니 또 생각해 봐요. 나는 해주고 싶어 지네요. 남편"

"그러지 마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그 아이는 맨날 그러니까 맨날 허락해 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 줘도 막상 시작하면 하고 싶었던 때와 다르다면서 시작한 것을 후회하는 아이를 보면서 짜증을 낸다. 심지어 엄하게 화를 낸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면서 말한다. "아이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오랜만에 마음을 나 친구가 같이 하자고 하니까 함께 하려는 아이 맘을 이해해 주면 어떨까요?"

"됐어요. 아이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 결정했다면  최선을 다해보 음이 있어야죠."

"남편,  서툰 아이를 이해하는 게 부모예요."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머리가 무겁고 발걸음이 터덜터덜거리기 시작한다. 내 머리가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은근슬쩍 몇 발자국 앞으로 나와서 걷는다. 아내가 째려보고 있는 느낌이다. 아내 걸음도 느직느직 늦어진다. 둘 다 대화하다가 마음이 상한 것이다. 의견이 좁혀질 기미 없다. 서서히 둘이 더 떨어져 걷기 시작한다. 그러는 와중에 아내는 내게 일침을 가한다.   


"이럴 줄 알았어요. 남편.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변한다고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역시 당신은 그대로예요."


나는  돌망치로 갑자기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마라톤을 힘겹게 달리고 있다가 어이없게도 바닥의 작은 돌멩이를 밟고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것처럼 황당했다.   "당신 그대로예요. 그럴 줄 알았어요."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쳐지면서 마음은 더 굳게 닫혀 버렸다. 



나는 공개하고 쓰고 있는 것처럼 몇 년에 걸쳐서 가정 회복을 위해 노력 중이다. 이런 과정에 있는 나에게  " 당신 그대로예요. 변한 게 없어요."  며 아내가 화나서 내뱉는 말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하고 나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에이. 씨.... 그렇게 말할 거예요?" 급기야 너무 속상해서 말도 험하게 해댄다. 리고 아예 따로 걸으며 집을 향해 계속 걷기 시작했다. 



고친 대로 잘하다가 또다시 그러길 매번 반복하긴 한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나면 화도 더 나고 말도 화난 감정 그대로 표현하기까지 한다. 

"나는 공개적으로 고치기라도 하지만 본인은 고질적인 습관을 고치지도 않으면서.... 참.... 내" 라면서 마음으로 아내를 미워하면서 걷고 있었다. 


둘이 한참을 멀찍하게 걷다가 이대로는 아닌 거 같았다. 이건 노력하는 남편이 취할 행동이 아닌 거 같았다. 

무심한 듯 퉁명스럽지만 말했다.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줍시다. 대신 시작하면 어느 정도 유지하도록 지도를 잘해줘요."

"그리고 아까처럼 그런 말은 무작정 내뱉지 마요."

"그래요.... 남편."



잘 걷다가 뜬금없이 서로 다투고 침묵으로 걷다가 다시 말하며 풀기까지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길을 얼추 걸었더니 집 앞까지 거의 다 왔다. 산책시간은 저녁식사 후 소화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도움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가끔 " 그럴 줄 알았어요. 당신. 변한 게 아니에요. 역시."라는 아내 말에 마음이 몹시 상하기도 하니까.



예전 같았으면 침묵하면서 아무런 말도 건네지 못하도록 거부하며 며칠을 버티기도 했다. 아이들은 아무 말없고 무표정한 아빠 때문에 분위기를 살피느라 힘들어했다. 그렇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아이들에게 감정적 고통을 많이 줄 필요가 없다 싶어서 이제 그런 상황은 가능하면 만들지 않도록 노력 중이다. 대신에 아까처럼 어느 정도 생각하다가 얼른 화해하고 필요한 결정을 하는 것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매일 저녁 산책하다 보면 아내가 본인 힘들었던 것을 내게 하소연하는 일들이 이제 종종 생긴다. 느낀 감정들을 말하는 것이 탄력 받아서 말을 이어가려는 아내, 나도 겪었다고 아내 말을 끊고 말하는 남편, 그러다 보니 아내는 말하다가 끊겼다고 답답해한다. 오랜만에 들어주는 남편에게 속감정을 시원하게 풀고 싶었는데 끊긴 것이다. " 나 안 해요. 남편. 내가 말하는 중이었단 말이에요."라고 기분 찝찝해한다. 나는 얼른 "아. 그래요. 여보. 계속 말해요. 들어줄게요."라고 하며 이어가도록 독려한다. 아직 내가 더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상황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내 말을 경청하고 공감해 주는 것에 대해 노력하는 시간으로 저녁 산책시간을 활용한다. 



나는 여전히 해야 할 것 많고 고칠 것도 많다. 그런 와중에

"남편. 역시 그대로예요. 역시 변한 게 없어요."라는 아내의 핀잔 섞인 말은 듣고 싶지 않다. 편으로는 뭔가 달라지고 있는 남편 모습에 점점 더 기대하고 있다가 실망하니까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도 한다. 노력을 더 많이 할 생각이다. 의리로 사는 부부보다  서로 의지하며 사는 부부가 되고 싶다. 



"남편! 많이 노력해 준 덕분에 조금씩 더 안정적인 것 같아요."는 듣기 좋은데

"당신 그대로예요. 그럴 줄 알았어요."라는 말은 정말 듣기 싫다. 사실 이왕 노력하는 거 더 노력하라는 채찍으로 생각하는 게 맞긴 맞지만 서운한 건 사실이다. 그런 말은 안 해줬으면 한다. 



" 가정 회복을 위한 변화의 고삐는 늦추지 말자. 노력해야 한다. "  




출처: 사진: Unsplash의 Maksym Kaharlytsk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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