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프로젝트 #23

큰사람

늘 길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길을 걷는 게 아니라 찬바람을 이겨내느라 힘들 때도 있습니다. 이제 슬슬 귓가가 시려지기도 합니다. 점점 추위를 느끼는 부위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몸의 구석구석이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매서운 바람이 이어지는 점심때, 따뜻한 햇살을 등으로 느끼거나 얼굴과 머리로 느끼면서 걸을 때면 "아! 이럴 수가 있구나! 이 따스함!"이라면서 혼자 감탄하며 걷기도 합니다.


풍성한 초록잎들이 자랑스러웠던 나무들도 이제는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는데 그 나름대로의 운치도 느끼기도 합니다. 햇살아래 흔들거리는 마른 풀잎, 잔 가지 하나하나가 찬찬히 흔들거릴 때면 그들만의 또 다른 멋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 그 앙상한 가지 위로 소복소복 눈이 쌓일 때가 다가옵니다.


또 다른 변화를 느끼면서 걷고 있다 보면 여전히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그것에서 "깨알재미"를 느낍니다. 그것들을 찬찬히 나눠봅니다.




#1. 병뚜껑

비 온 뒤 아스팔트 위를 걸으며 출근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떨어진 병뚜껑을 봅니다.

새로 깔아놓은 아스팔트 위로 그려 놓은 노란 차선이 상당히 노랗습니다. 선명합니다. 마치 새 카펫을 깔아놓은 느낌을 느끼면서 걷는데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병뚜껑'이었습니다. 초록초록한 병뚜껑은 까만 아스팔트 위 노랑 차선과 대비되면서 전혀 사이즈에 따른 밀림은 없습니다. 각자의 색깔과 매력을 자랑하면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사실 초록 병뚜껑이 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물론 이런 아름다움 들을 느낄 수 있도록 깜장 아스팔트의 존재감도 무시할 순 없습니다. 묵묵히 노랑 차선과 초록 병뚜껑의 매력을 뽐내도록 돕고 있는 깜장 아스팔트가 더 멋스럽기도 합니다. 이런 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서 즐거운 출근길이었습니다.







#2. 쇠사슬

어느 건물 앞 입구를 지키고 있는 쇠사슬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존재감과 무게감이 일품이었습니다.

절대 끊어지지 않으며, 쉽게 녹슬지 않으며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쇠사슬, 밤에는 건물을 지키고 낮에는 잠시 쉬면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쉬고 있는 낮에도 쇠사슬의 무게감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늘어진 쇠사슬 개수가 그 무게를 짐작하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짊어지고 가는 인생의 무게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버릴 수도 피할 수도 없고 벽돌 위에 항상 올려져 있듯이 우리의 어깨 위에 드리워진 인생의 무게 같습니다. 그런데, 벽돌담벼락 위의 쇠사슬과의 차이점은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인생의 무게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건물 앞 쇠사슬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어서 즐거웠습니다.



#3. 귀뚜라미

길을 걷다가 어느 담벼락에 붙은 귀뚜라미를 보게 되었습니다.

귀뚜라미로 알고 반갑게 사진 찍고 나서 확인해 보니 곱등이었습니다. 온통 세균을 달고 다닌다는 꼽등이. 그런데, 그 자체로는 별로이지만 길을 걷다가 건물 구석에 붙은 것을 보면서 그냥 반갑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뭔가의 곤충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여전히 살만한 지구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세균 붙은 꼽등이라는 것에 충격이긴 했고요. 길을 걸어 다니다 보면 주로 식물, 동물, 곤충, 갖은 쓰레기, 부착물 보이는 모든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4. 뭘 봐!

퇴근길에 하루를 보내느라 지친 아내에게 커피 한잔 대접하려고 기다리는 동안 만난 녀석입니다.

커피를 받는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만 쳐다볼 수 없어서 무심코 아래를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저를 보고 있는 듯한 시선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순간 혼자서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바라보는 뭔가의 시선은 우산 손잡이의 캐릭터였습니다.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었고 저의 느낌을 적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작은 손잡이에 캐릭터를 붙인 감각도 최고이면서 우리 일상에 소소한 감성을 입힌 저 우산에 100점 주고 싶습니다.


눈이 마주쳤는데 인상 쓰면서 "뭘 봐?"라고 말하기보다는 "왜? 모 봐?"라고 말하며 웃을 수 있는 캐릭터의 힘을 느낀 저녁이었습니다. 디자인하신 분께 두 손 모아 박수 10000번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5. 그들

주택가 주차장 담벼락에 올려진 두 물체들을 보러 가까이 갔습니다.

가까이 가서 봐도 괴물체의 존재는 파악했으나 사용처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재밌었습니다.


웃고 있는 개구리인가? 말을 안 들어서 배가 터진 개구리인가? 뭐든지 채워달라고 자신 있다고 손 드는 개구리인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입 벌린 개구리인가? 가까이 가서 바라보고 상상하는 잠시의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어디서 이런 것들을 만드셨나? 생각도 하게 되었고요.


재밌는 것을 모아둔 주인분께도 엄지 처하면서 또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구석구석 재밌는 것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6. 그들의 거리감

지나갈 때마다 눈을 잠시 멈췄다가 걸어가는 구간입니다.

벽의 두께만큼이나 서로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선명한 색깔들 덕분에 전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고 다양하게 생긴 사람들이 어우러진 모습 같기도 합니다. 한 가족과 옆집의 가족 같기도 하고요. 어른들과 아이들과의 만남 같기도 하고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파랑 노랑 회색 의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이 왠지 보기 좋아 보이고 안정감도 있어 보였습니다. 절대로 틀림없이 디자인하 설계자분께도 박수 올립니다.



글을 적다 보니 색깔에 대한 오해가 있을까 봐서 덧붙입니다.

덧붙임: 전혀 정치와 관계된 색깔론과 무관합니다. 저는 평상시 길에 다니면서 회색도시와 어우러진 다양하고 선명한 색깔의 물건, 구조물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색깔들의 어우러짐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중이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적어 봅니다. 날씨가 더 추워져서 귀가 시려지기도 하는 아침입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마음의 따뜻함을 놓지 않는 노력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이 춥다고 마음이 추워지면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할 마음조차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춥고 힘들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따듯한 이불 속에 들어가서 "아~~감사"라면서 나지막히 우물거려 봅니다. 포근함을 느끼면서 온 몸이 드디어 긴장을 풀고 촤아악 늘어지는 그 시간에 대한 감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감사를 느끼는 동안 딱딱한 바닥, 차가운 바닥에서 똑같은 시간을 느끼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집니다. 모두가 적절한 행복과 감사를 느끼는 동일한 시간이기를 소원해봅니다.



작은 것을 보고 느끼는 '깨알재미'를 함께 공감하며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든 분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큰사람의 깨알 프로젝트 #23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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