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본드를 눈물처럼 흘린.. 아빠

쌤통이다.

생각밖의 일은 감사를 느끼기도 하고 제대로 된 반성을 하게도 한다.


2년 전 공공 분양 당첨이 그랬다. 형편에 맞는 장기전세나 영구임대가 되지 않아서 마음이 힘들었다. 돈도 넉넉하게 못 번다는 자괴감과 그런 형편이 반영된다는 공공분양도 당첨이 안되니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예상 못한 지역에 공공분양이 당첨되어서 너무 놀라고 감사했다. 물론 관련된 돈을 감당하느라 빚은 늘었고 삶은 여전히 힘들다.



당첨후 2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작년 12월말 입주를 했다. 처가살이 들어가며 웬만한 짐들은 처분했다. 이사나올때 짐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가전기기나 살림은 모두 새로 사야 했다. 새로 사면서 아내의견이 100% 반영되도록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아내에 대한 배려였다.



아내의견 100% 반영이라고 했지만 내가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 있다. 바로 '식탁'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우리 집 생활이 시작되는데 식탁만큼은 편하고 넓은 것을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1. 아이들 방이 좁아서 책상을 놓지 못하니 공부할 때 사용.

2. 5인가족이니까 기본적으로 6인이상 필요.

3. 어른들 방문 시 식사, 티타임을 하게 되면 기본 7인이상 필요.

4. 다른 가족들과 함께하면 기본적으로 8인이상이 될 것이다.   


라는 이유로 큰 식탁을 원했다. 그런데, 그런 이유에 아내도 전적으로 공감했다. 우리 형편에 맞도록 구매하다 보니 나무재질로 된 6인용 식탁이었다. 결정적인 구매이유는 확장하면 8인용이 되기때문이다. 그런데, 대리석이나 세라믹 식탁에 비해 오염에 취약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 의미로 심사숙고하며 구매한 식탁이다 보니 이사오기 전부터 아이들에게 새로 산 식탁의 용도와 관리에 대한 주의사항을 수차례 강조했다. 특히, 음식물 흘리기나 슬라임 놀이등에 대해 몇 번이나 당부했다. 그렇지만 당부는 당부일 뿐 원치 않는 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음식물을 흘리다. 


이사 오고 첫 식사 때  둘째 아이가 음식물을 식탁의자에 흘렸다.


“야~ 조심하랬잖아. 그렇게 음식을 흘리면 어떡하니? 의자는 잘 지워지지도 않는데 빨리 닦아라! “

"참. 내... 첫날인데 그렇게 강조했는데 바로 흘리냐? 어휴....."


불꽃슛 같은 핀잔이 순식간에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런 상황을 수습한 것은 “닦으면 돼. 괜찮아~~~”라는 아내의 천사 같은 말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정말 속상했다. 식탁보다 순간적으로 놀랐을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주지 못하고 혼낸 아빠의 부족함에 속상했던 것이다.





또? 물을 흘렸어?

그 사건 이후 며칠 만에 사건이 또 터졌다. 막내 아이가 마시려고 식탁 위에 둔 물컵이 엎어졌다. 그러면서 쏟아진 물은 식탁 위를  가로질러 흐르더니 의자 엉덩이 쿠션으로 주르르 낙숫물처럼 흘러내렸다. 막아볼 새도 없이 보는 앞에서 엉덩이 쿠션에 주르르 흘러내리더니 금새 물얼룩이 생겼다. 아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정지되었다.


“야! 조심하랬잖아. 어떻게 며칠 후 또 쏟니? 물이었기 망정이지.”

“죄… 송… 해… 요. “


 실수에 대해서 또 순간적으로 호된 말초리를 내리쳤다. ‘아불싸!!! 또 그랬네.’라며 반성하고 있는 사이, 아이는 축 처진 어깨로 자기 방에 들어갔다. 그런 대화로 상황이 마무리되니까 내 마음도 너무 씁쓸했다. 조금 후에 나는 아이를 불러서 아까 무턱대고 혼낸 것을 사과했다. 놀라고 억울한 아이의 마음도 누그러지는 듯했다.





눈물 대신 본드 흘리다..


그렇게 두 가지 사건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사건이 터졌다. 어느 날인가 아이들이 식탁 위에서 슬라임 놀이 영상을 찍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영상을 찍을 때는 부모는 조용히 해줘야 한다. 그러는 동안 나는 핸드크림튜브 터진 곳을 강력본드로 붙이고 있었다. 약속대로 조용히! 조심하며 붙이고 있었는데 강력본드가 순간적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내 손과 핸드크림 사이로 흐르더니 튜브와 손이 ‘강력하게 찰싹’ 붙는 느낌이 들었다.



당황해서 그만!! 식탁 위에 핸드크림을 내리쳤다. 다행히 손과 핸드크림이  '쩍'소리를 내면서 분리되었다. 물론 아이들 동영상 촬영도 예상 못한 소리에 중지되었다. 손이 붙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다시 붙일 자리에 강력본드를 흘렸는데 아뿔싸! 또 주르륵 흘러내리더니 이번에는 식탁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다급하게 물티슈로 식탁 위를 닦았다. 그렇지만 소용이 없었다. 식탁 위로 흐른 본드는 두손가락 크기의 본드얼룩을 만들었다.



그 순간, 나는 얼음이 되었다. 동영상을 찍던 아이들이 이제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벌어진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가 엄청나게 강력한 사고를 친 것을 감지한 것이다.



정말 황당했고 내가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있기 전에 음식물과 물 흘린 것에 대해서 호되게 혼난 두 아이들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가 말이야.... 어이없게 강력본드를 흘렸다야…. 식탁 위에다가…. 참.. 내…..”

“남편……….. 참……“

“와… 아빠는 본드를 흘렸대….”


나무 식탁에 본드를 흘린 아빠를 보고 있는 두 아이 표정은 "맨날 혼내더니 아빠는 본드를 흘렸네요. 아빠가 제일 큰 실수 했네요 "라는 눈빛이었다. 아이들은 가끔 아빠가 실수하면 제일 즐겁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맨날 아빠는 완벽한 척하면서 아이들을 혼냈으니까.



아내에게 다시 한번 사과했다.

"여보, 내가 제일 큰 실수를 했네요. 미안해요. 나중에 본드자국을 지워볼게요. 아이들을 두 번이나 혼내더니 나는 정작 지우지 못하는 본드를 흘렸네요... 쩝....."

"그러게요. 알겠어요. 남편"

이라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의 사과를 담담하게 받아줬다.



생각지 못한 집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의미를 가진 식탁을 심사숙고하며 샀다고 애지중지하면서 아이들을 미리부터 몇 번이나 단속했었다. 그러더니 정작 아빠는 중대범죄를 저지른 꼴이었다. 음식물 흘리거나 물을 흘린 것과 비교가 안 되는 실수였다. 본드 흘리기.  





식탁 본드사건을 생각해 보면서 느낀 것은 두 가지이다.


1. 여전히 나는 부족하다. 여전히 오류 투성이 아빠이다. 그러니까 고치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2.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장담하거나 단언하면 안 되는 것이다.


맨날 아이들이 사고 친다면서 새 식탁과 의자쿠션에 뭔가를 흘리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하라고 단속했다. 그런데, 정작 중대사고는 아빠가 친 것이다. 본드를 흘렸고 지워지지도 않는다.



아직 미완성인 아이들의 실수를 관대하게 받아주고, 성숙한 아빠는 실수를 줄이면서 아이들과 함께 잘 어울려 살도록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정말 당황스럽고 난감하면서 숨고 싶었던 '식탁 본드 사건'이었다.



오늘도 부족한 저의 고군분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리 감사합니다.



출처: 사진-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뭐 하지 말라 “를 안 하는.. 아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