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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네 백수 취급받는 남자

인천공항

나는 동네에서 백수, 한량취급받는 때도 있었다.

인천공항 근무할 때였다.


" 혹시 아이 아빠가 (무슨) 일하세요?"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엄마들은 궁금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아빠 (무슨) 일하시는지? 사실은 아빠가 백수인지 궁금해서 정중히 물어보시곤 했었다.

 

" 오늘은 너희 아빠니? 삼촌이니?"


일을 할 때는 '콘텍트렌즈' 쉬는날은 '안경'을 착용했다. 눈이 나빠서 안경을 착용하면 아이브 안유진처럼 눈이 작아진다. 얼굴느낌이 완전 달라진다. 어떨땐 맨눈의  '당당한 아빠'이고, 어떨땐 뱅글이 안경과 편한 옷때문에 '삼촌'같은 이미지였다.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아빠니? 삼촌이니?'라는 질문을 종종 듣기도 했다.  

심지어

아이를 픽업하러 유치원가면 담당 선생님도 헷갈려하셨다. 매번 '안경'과 세상 편한 복장으로 아이를 데려다주다가, 반듯하게 옷 입고 맨눈으로 내원하면 전혀 못 알아보셨었다. 나는 열심히 일하며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기에 당당했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들 등하교에 최대한 많이 참여하는 것이었다.


인천공항에서는 특별한 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주간, 야간 교대근무라서 주말도 없고, 낮/밤도 없다. 정해진 스케쥴대로 일하느라 새벽에 출근하기도 하고, 오후에 출근하기도 한다. 일 안할때는 세상 편한 얼굴과 복장으로 지내는 것이 행복했다.


아이들 등하교를 최대한 동행했고 어떤날은 아침에 어린이집,유치원,학교를 등원 동행하고 하교시간에 픽업까지 동반하면 하루종일 동네를 돌아다닌다. 아이들 손을 잡은채.

가정내 관계의 회복을 위해 '함께 등하교하기'를 최대한 열심히 했다.  횡단보도앞에서는 아이 시선에 맞춰서 무릎을 꿇거나 보도 블록에 앉으면서 조금이라도 아이 시선에서 대화를 하곤 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게의치않았다. 아이들과 소소한 대화를 하고, 손을 잡아주고 걷는 것을 통해 '사랑'이 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이집,병설유치원,초등 저학년때까지 약 4년간 함께 동행했다.

아이들은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친구들하고만 다니기 시작했다. 아빠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도 싫어하기 시작했다.

"아빠! 옷 좀 단정히 입어요. 너무 알록달록한 옷 입지 말아요."

" 아빠! 좀 일어서요. 바닥에 앉지 마요."

처음에는 서운했지만 얼른 그렇게 바꿔서 행동했다. 아이들과 눈높이 대화도 중요하지만, 커가는 아이들 마음에도 높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서다.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는, 아이들이 어른들과 놀아주는 나이는 12살까지입니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 이후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고 했던것 같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아이들과 대화횟수가 많아졌고, 함께 등교하며 장난친 것들도 아이들이 종종 기억해준다. 여전히 무서운 아빠라는 이미지가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아이들이 말하곤 한다.


작은 행동이지만 4년여 꾸준히 했고,

동네 엄마들이 백수로 착각하더라도 게의치않고

내가 목표로 한 행동대로 아이들과 노력했다.
나는 결혼생활과정중 '부부상담'이 가장 큰 이슈이다.  아내와 아이들과 살면서 필요한 행동과 대화를 하도록 노력하게 되는 시작점이 되었고, 그 다짐을 꾸준히 실천하면서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가 달라지고 있다.
오늘도 아이들이 함께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아내와 점점 더 깊은 대화를 나누며 대화하고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근무중 이상무"는 아니지만 "여전히 노력중"
사진출처: UnsplashJaime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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