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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엉뚱하게 애쓰던 사람

헛삽질

나는 엉뚱한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5년간 헛삽질.

왜 그래야만 했을까?


나는 어떤 일에 대해 아내 의견을 두세 번 묻지만 결국 내 생각대로 리했다.

매번 그렇게 하니까 

"내 생각은 왜 물어요? 묻고 나서 항상 다르게 할 거면서 왜 물어요?"

아내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언제부턴가는 그냥 "네. 그렇게 해요."라고만 했다.


어느 날,

아내는 새 바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아는 척하며 함께 외출하자 했고 쇼핑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봐서 아내에게 잘 어울릴 바지들을 잔뜻 권했다. 한참을 진땀을 흘리며 권하기를 수차례..

그리고는 괜찮은 가격에 어울리는 바지를 하나 샀다. 잘 산거 맞냐고 물었다.

"그래요. 잘 입을게요. 이제 집에 가요."

"아니에요. 바지도 샀으니 나온 김에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요"

"그냥 집에 가요."

"아니에요. 당신 좋아하는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요. "

"그. 그래요. 가요."

바지를 사고 커피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또 묻는다.

"여보, 오늘 괜찮았죠? 바지도 샀고 오랜만에 나온 김에 색다른 커피도 마시고요."

"그. 그래요."

"많이 피곤한가 보네요. 한숨자요. 내가 조용히 운전해서 집에 도착할게요."

"그래요."

갑작스러운 쇼핑이 숨 가쁘게 마무리된다. 나는 아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사는 것에 함께 했고, 아내가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도록 해줬기에 마음 한 구석 뿌듯함을 안고서 집로 복귀했었다.


반면에 아내는 어땠을까?

아내는 필요한 바지를 인터넷 쇼핑몰에 1만 원 정도 가격으로 찜해뒀고, 내게 보여주고 바로 구매하려고 했단다.

또, 그날은 카드결제금액과 지출할 돈들이 많아서 금전적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특가 제품을 디자인 따지지 않고 사서 입을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극도로 마음이 불편하고 힘든 하루였던 것이다.



그럼 나는 왜 아내 의견과 정반대로 직접 쇼핑하며 시간과 돈을 쓰고, 커피까지 마셨을까?

필요한 대화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무엇을 사고 싶은지?  봐둔 게 있는지? 어디서 살 계획인지? 등등 아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대화를 하지 않았고 내 생각으로 제안하고 무작정 실행했기 때문이다.


그럼 아내는 "여보. 아니에요."라고 왜 말하지 않았을까? 왜 무기력하게 마음이 힘들고 싫은데 하루종일 그렇게 했을까?  

아내는 말을 듣지 않는 남편에게 5년간 지쳤기에 '항상 적당히 빨리 끝내려고'만 했다고 한다. 


또 어느 날,

"여보. 오랜만에 커피 한잔 하러 나와요. 나 일이 일찍 끝났어요. "

"어딘데요?"

" 응. 여기 인천. 우리 살던 동네. 대중교통으로 오기만 하면 내가 가본 맛있는 커피카페 갔다가, 오랜만에 살던 아파트 보고 노을 보며 집에 가도록 해줄게요."

"아. 여보... 그럼. 다음에 해요." "나 좀 힘들어요."

"여보. 오랜만인데 나와요. 그럼 그 이후는 내가 다 알아서 할게요."

"다음에 하면 안 돼요? "

" 여보. 이렇게 해야 우리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아. 알겠어요. 준비해 볼게요."

얼마의 시간이 흘러 아내는 지친 기색으로 도착했다.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나오느라 멀미도 했었다고 한다.

"나오느라 고생했어요. 얼른 커피 한 잔 먹고 예전 살던 아파트 가 봅시다."

"커피 빼고 그냥 예전 살던 아파트나 보고 집에 가요."

"그러지 말고 커피 마시고 갑시다. "

결국 커피를 마시고, 예전 살던 아파트를 돌아보고 집로 돌아왔다.

나는 오랜만에 좋지 않았냐고 '또' 물으며 운전었다.

도돌이표 따라 반복되는 것 같은 시간들.

아내  몇 번이나 자기 의견을 말했는데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시작하고  끝까지 해버리는 남편

그런 시간이 5년이 흘러 흘러 아내는 속병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은 헛삽질을 5년이나 한 것이다.


부부상담 후

"도대체 왜 정확히 말하지 않았어요? 싫다고!! 안 하겠다고!! 왜 말 안 했어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엉뚱한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체력도 허비해 가며 몇 년을 지냈잖아요"

핀잔과 불평 가득한 말을 뱉었다.

아내의 대답은 심플했다.

"매번 세 번 이상 내 생각을 말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절대로 듣지 않고 자기가 생각대로만 했잖아요."

"너무 지쳐서 그냥 하기도 하고, 맘에 든다고 하고, 그냥 맞춰주고 끝낸 것도 많아요."


이제야 그 말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헛삽질한다고, 헛삽질하고 있다고 화를 낼 일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들을 몇 년간이나 버텨준 아내가 너무 고마웠다.

 


이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필요한 대화하고 있다.

막무가내로 일을 추진하지 않는다. 아내는 이제 대화가 통하는 것 같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제 함께 커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하며 지난 시간 마음의 고통도 나눈다.

편안하게 대화가 이어질 때면,

예전에 못했던 말들을 나누고 있노라면, 

아내의 눈과 나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기도 한다. 

지금이라도 다행이고 감사하다.


사진출처: Unsplash의 Filip Mro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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