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깨알의 재미와 감동 덕분에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하루도 견딜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돌아다닐 체력이 있고 때로는 하루를 바쁘게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쁜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반대편에서 건너오시는 어르신과 마추쳤습니다.아기걸음보다 더 천천히 조심조심 걷는 중이었습니다. 조심하기보다는 그 속도로 건널 수밖에 없으신것입니다. 그 마음을 전혀 모르는 기계, 신호등은 규칙적으로 숫자를 바꿔가면서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시간이 다되어 차들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고 어르신은 차들사이에서 여전히 천천히 걷고 있으셨습니다. 빵빵거리는 차들, 비켜주는 차들, 기다려주는 차들 정말 다양했습니다. 어르신도 마음같아서는 옛날 소싯적처럼 한달음에 뛰고 싶으신데 몸이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르신에게 하루는 엄청나게 빨리 흐를까? 더디게 흐를까?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멈칫했다가 저도 놀라서 뛰었습니다. 돌아보니 여전히 어르신은 건너고 있으셨습니다. 내게도 저런 시간이 온다는 생각에 또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어르신은 길거리의 깨알을 보실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깨알을 보신다면 '잠시라도 '푸훗' 웃으시며 잠깐이라도 행복하실 수도 있으실 텐데' 말입니다.
#1. 길 위의 깨알들..
1. 날아라..
아주 뜨거운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너무 더워서 아무도 안 나오는 공공 풋살장을 다녀왔습니다. 막바지 불볕더위라서 아무도 없어서 아이들이 맘껏 공 차고 놀 수 있어서 가끔 그렇게 즐깁니다.
아들 딸이 무턱대고 축구공을 찼다가는 딸내미 얼굴이나 몸에 멍자국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무공을 축구공으로 사용하면서 도저히 못 뛸 때까지 뛰어놉니다. 그 이후는 시원한 팥빙수나 아이스크림으로 갈증해소를 시켜줍니다.
아이들에게 공을 차다가 머리 위의 파란 하늘을 보았습니다. 문득 파란 하늘을 건드리고 싶어서 가지고 있던 고무공을 힘껏 발로 찼습니다. 많이 올라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파란 하늘을 약 올리는 것 같은 빨강 고무공이 재밌어서 찍었습니다. 공을 안 주고 자꾸 하늘을 향해 뻥뻥 차는 것을 이해 못 하면서 아이들이 "공 차요!!"라고 소리 지르는 땡볕 오후였습니다.
2. 밥 먹다 목마르면 물 먹어..
수돗가에 놓인 반려견 밥통을 봤습니다. 보는 순간 재밌어서 찍었습니다.
반려견은 주인이 내놓은 밥을 맛있게 먹겠지요. 날이 더워서 목이 마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어서 물을 마실 겁니다.
밥통 사이즈를 보아하니 대형견을 위한 것은 아닌데 수도꼭지가 너무 높아서 먹기 힘들겠다라면서 혼자서 웃었습니다.
사실은 밥통옆에 물을 떠주기 좋은 수도꼭지옆에서 먹이는지도 모릅니다. '밥 먹다가 목이 말라서 두 발로 서서 수도꼭지를 틀어 물 마시는 꼬마 애완견 모습'을 만화처럼 혼자 상상했습니다. 혼자 웃었습니다.
3. 보리밥 쌀밥..
딸 둘이 있는데 한 명은 머리숱이 엄청나고 한 명은 머리숱이 적습니다.
그런 두 딸에게 늘 필요한 것이 집게핀입니다. 머리숱 많은 딸이 사용할 때 집게핀이 자주 망가집니다. 숱이 많아서 버겁긴 했을 겁니다.
쩍 벌어진 집게핀을 버리려다가 아이의견을 묻고 버리려고 올려놨다가 상상했습니다.
"보리밥, 쌀밥, 보리!! 보리!! 쌀!!" 실컷 약 올리면서 놀이를 하던 주먹과 두 손을 상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이일 때 놀던 손놀이를 지금의 아이들도 하고 있다는 것이 엄청 신기합니다. 집게핀이 망가지고서야 본 것이 있습니다. 반갑게도 'Made in Korea'였습니다. 정말 드물게 보는 귀한 물건입니다.
#2. 마음의 감사 & 행복..
1. 택배 박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진행하는 일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이 없는 상황이 답답해서 그저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에는 아무런 위로도, 맛있는 식사도, 상큼한 커피 한잔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정도까지 구석구석 터덜거리며 걷고 있었는데 빌라 앞 내놓은 재활용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곧 아무렇게나 접혀서 차에 실릴 누런 박스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 당신의 선택은 언제나 오름 -
대상을 정하지 않고 인쇄되어 있는 문구이지만 이때만큼은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갈팡질팡하고 마음이 복잡하고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원망스러워서 추진하는 일을 전격 취소하고 싶었습니다. 그 문구 자체로 위로받는 것 같고 무슨 선택을 하던지 격려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감사하다.'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왔습니다. 이런 순간에 이런 문구를 만날 수 있어서 '또 감사'했습니다.
#3. 마음에 깨알추가 -초심
1. 길과 너..
신혼 때의 초심을 되살리기 위해서 신혼 때 사용하던 아이폰4로 사진을 찍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길가에 세워둔 자전거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직진" " 달릴 준비" "첫 달 무료"
이 길로 쭉 가시오. 첫 달 무료...
결혼해서 신혼이 시작되면서 늘 직진이었습니다. 뒤돌아 볼 틈도 없었고 모든 게 처음 시작이라서 앞만 보고 지냈습니다. 결혼한 것도 아내가 있는 것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은근 자랑스러워서 무슨 일만 생기면 아내를 동반해서 '제 아내입니다.'라고 소개하곤 했습니다. 매일 알콩달콩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시간이 가면 가는 대로 좋고, 시간이 안 가면 안 가는 대로 행복했습니다.
지금도 그럴까요?
여전히 아내를 동반하는데 이제는 아이들도 함께합니다. 아쉬운 건 점점 소개할 자리가 줄어드는 겁니다. 아이들이 가끔 물어봅니다.
"아빠! 요즘은 결혼식 뷔페 안 데려가줘요? " "요즘은 우리 왜 소개 안 해줘요?"
"아빠!! 아빠 일하고 있는 사무실 안 데려가요? 예전에는 데려가서 용돈도 받고 아빠 책상도 보고 좋았는데..."
자전거를 보면서 가야 할 길을 '직진'하고 싶습니다. 뒤돌아보면 그동안 쌓은 추억과 상처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뒤를 돌아보고 탈 수는 없습니다. 가야 할 길을 위해 앞을 보면 다시 힘차게 달리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을 다시 우물에서 퍼올리듯 마음에 장착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자전거를 다시 한번 바라봤더니 콩닥콩닥한 마음으로 아내의 손을 잡던 제 마음, 태어난 아기가 너무 사랑스럽고 고마워서 똥 묻은 기저귀를 열심히 갈던 신혼 때 남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아내에게 아무 설명 없이 "여보! 사랑하고 고마워요!"라고 할 생각입니다.
여담으로 '첫달은 무료하지 않습니다.'
길에서 깨알을 만나는 일은 늘 감사합니다.
버려지거나 아무렇지 않은 깨알들이 참 귀하게 생각됩니다. 다행인 건 제가 일부러 창작하거나 콘셉트를 가지고 만드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모습을 통해 제가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입니다.
항상 감사한 것은 보시는 분들이 즐겨주신다는 점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길에 널려 있는 것을 나누는데도 재밌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늘 감사하면서 금요일밤 마지막 점검을 준비합니다. 비록 이 메모 같은 글이 작품집이 되거나 대박일 리가 없습니다. 다만, 신문의 한 귀퉁이에 토요일마다 올라오는 '한컷 만평'처럼 1초 '푸훗'이 되는 순간이 늘 감사입니다.
초심 퍼올리기와 아이폰4
큰일 날뻔했습니다. 신혼때 초심을 되살리기 위해 그당시 사용했던 아이폰4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어느 날!! 휴대폰의 전원 버튼이 작동중지되었습니다. 발행도 발행이지만 아이폰4로 찍은 사진의 푸근한 감성과 그때 사진 찍던 생각들이 떠올라서 진짜 초심을 떠올리는 중이어서 걱정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신혼 때 아이폰4를 커플폰으로 구매했었습니다. 드레스룸 구석에 보관 중인 또 다른 아이폰4를 꺼내서 작동시켰습니다. 다행히 잘 작동되었습니다. 초심을 계속 꺼낼 수 있다는 것과 그 마음을 발행해서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여기까지 적으면서 길거리의 깨알을 나눠드렸습니다. 이런 시간을 이번주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늘 이런 작은 것에 즐거워해주시고 공감해 주심에 대해 미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