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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장 뒷자리.. 아빠

중형승용차

우리는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선택적 가난을 감당하고 있다. 의욕을 가지고 진행한 덕분에 아이 셋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아이 셋과 풍족하게 살만큼 아직 재정이 회복되지 못했다. 가족을 위한 SUV 패밀리카가 좋은 것은 알지만 살 수 없어서 중형차를 대안으로 구매했다. 당시에는 중형차가 인기가 없고 가격이 떨어진 시점이었다.   



우리 집 중형차 뒷좌석과 얽힌 해프닝을 점검하면서 나의 모습을 돌아볼 생각이다. 


늘 중형차 뒷좌석에 아이 셋이 타고 다닌다. 카시트 세 개를 장착하고 다닐 때에는 아기들이라 싸울 일도 없었다. 그냥 카시트에 태우는 대로 앉아 있었다. 조금씩 커가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서로가 같은 자리에 앉고 싶어 한다거나 서로가 앉고 싶어 하지 않는 자리에 앉으려고 무지 싸운다.  



세 명이서 나이불문하고 자리확보를 위해 투쟁하듯이 싸운다. 그런 상황을 중재하느라 나는 운전석에서 뒤를 돌아다보고 아이들을 혼냈다. 그래서 아이들은 룸미러로 아빠 눈이 마주치거나 아빠가 뒤돌아보는 것을 상당히 꺼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매번 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은 자동차를 패밀리카로 바꿀 수도 없다.  그래서 내가 제안한 해결책은 '가위바위보'였다. 자기 의지로 낸 '가위바위보'로 결정된 결과에는 아이들이 승복하기 때문이다.  


"안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이겼으니까 나는 가운데. 나는 오른쪽, 그러면 나는 왼쪽 " 


결론이 나오면 바로 평온이 찾아오곤 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들인지라 승부 결과에 대해 100%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빠가 늦게 냈어. 내가 졌지만 맘에 안 든다. 속상하다. 엉엉" 그렇게 되면 '가위바위보 단판 결정'에서 가끔은 '삼세판'룰을 적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누가 승자가 되더라고 세 번을 이겨야 하기 때문에 각자 한 번씩 이긴 후 결판이 났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을 때는 엄마가 나서서 아이들을 다독이면서 '어서 출발'해서 목적지를 가자고 타이른다. 우리는 그렇게 매번 승용차 뒷자리 때문에 싸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뒷좌석 자리를 가지고 왜 싸울까. 뒷자리 세 구역에 대한 아이들의 느낌을 적어본다. 

 


1. 운전석 뒷자리- 편안함과 안정감 확보 

이 자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아빠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빠와 마주칠 일이 절대 없다. 혹여 아이들끼리 싸우더라도 고개를 숙이면 아빠와 직면해서 혼날 일이 없다. 필요하거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조수석에 앉은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하기 싫거나 애매한 상황 속에서는 꼭 이 자리를 선호한다. 세 명 모두 똑같은 마음이기 때문에 '가위바위보'를 할 수밖에 없다. 겨울에는 열선시트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위로가 되는 자리이다. 더울 때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며 앉아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한 자리이다. 



2. 조수석 뒷자리- 편안함과 안절부절 

조수석 뒷자리는 타고 싶은 않은 자리이다. 원래 VIP의전용으로 사용되며 실제로도 안전면에서 탁월하다. 차에 타고 내릴 때에도 편리한 포지션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기피대상 1호이다. 수시로 아빠와 마주쳐야 한다. 잘못한 일이 생기면 아빠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혼나야 한다. 극도로 불편하고 싫은 자리이다. 막내가 카시트를 앉아야 할 때 늘 그 자리에 앉히는 걸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머지 두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하곤 했다. 이런 와중에 막내는 자기도 얼른 커서 '가위바위보'로 자리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겨울철 열선시트를 사용할 수 있어서 좋은 자리이다. 


 

3. 가운데 자리- 장단점 있음.  

아이들이 앉고 싶어서 싸우는 자리이다. 앞 좌석 전면 시야가 확보되어 답답하지 않다. 그래서 멀미할 일도 없다. 수시로 엄마 아빠 대화에 끼어들 수도 있다. 더울 때 에어컨이 나오고 추울 때는 히터가 발밑에서 나오기 때문에 아주 좋은 자리이다. 



아이들이 앉고 싶어 하지 않기도 한다. 특히 장거리 이동 때는 아주 싫어한다. 서울 -부산까지 승용차로 이동할 때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거의 극혐을 했다. 이유는 목받침이 없어서 극도로 불편하다. 장거리 이동하다 보면 당연히 피곤하고 졸리게 된다. 자야 하는데 의지할 곳이 없다. 자다가 옆으로 넘어지면 나머지 두 아이들이 짜증을 내며 밀어내기도 한다. 



앉게 되는 좌석이 정상적인 자리가 아니다 보니 붕 떠있게 된다. 안전벨트도 3점 식이 아니다 보니 허리만 감게 된다. 또, 자동차 구동축이 바닥을 지나가니까 자연스럽게 두 다리를 벌릴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계속 들어야 하는 말들이 끊이지 않는다. 


"가운데 앉아서 다리 벌리지 마."

"내 신발 밟지 마!!"

"나한테 기대서 자지 마. 무거워"

"먹으면서 왜 내 바지에 흘려."

"가방이 나한테 밀려와! 잘 잡아줄래?"

"신발 벗지 마. 더러워."


이처럼 뒷좌석은 죄가 없는데 아이들의 마음 상태와 성장 속도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자리가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뒷좌석이 조용한 날도 있다. 


먼 곳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아무 생각도 없이 뻗어서 잠을 잔다. (예: 부산) 

하루종일 힘든 일을 견뎌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예:체육 대회/서울 결혼식 참석) 

누군가가 아파서 응급실로 달려가는 길( 둘째가 열이 39도까지 육박해서 헛소리까지 할 정도로 아픈 날) 



이런 상황에서 엄마 아빠의 반응은 갈린다. 


이런 일이 매일 일어나는 뒷좌석 전쟁터를 대하는 엄마 아빠의 온도 차이를 비교해 본다.

 

엄마.

최대한 상냥한 표정과 말로 아이들을 타이른다. 가능하면 설명하고 타이른다. 아이들의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아이의 속상한 마음과 상황을 들어주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상황이 악화되어 아빠가 곧 무섭게 말하면서 아이들을 혼낼 상황이 임박했을 때이다. 그런 상황이 싫기 때문에 엄마가 소리 질러서 혼낸다. 

  

아빠

소리 지르고 밀치고 짜증도 낸다. 그리고, 아이중 한 명은 울기도 한다. 어쩔 때면 아이들끼리 얼굴에 주먹을 날리기도 한다. 그 정도가 되면 아빠는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에게 불호령을 내린다. 짜증 내는 표정이 아니라 정말 화를 내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다그치며 혼낸다. 절대 안 하겠다는 다짐을 받으며 운전을 다시 시작한다. 그럴 때는 마치 나쁜 사람을 대하듯이 혈기를 다해 순간적으로 혼내버린다. 

 

"하지 마! 엄마가 얘기했는데 왜 안 듣니? 차 세우고 제대로 혼나야겠다."

"여보. 그러지 마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

"아니에요. 너희들 차 세우고 보자."

'끼익. 끼~~ 익"

' 또깍또깍( 비상등 소리처럼 내 마음속 분노게이지가 두배로 상승한다.)'

"왜 그러니? 너는 왜 못 참고! 너는 왜 대드니? 왜 그 정도도 못 참고 짜증이니(버럭)(버럭)? "

아이들에게 그 순간은 아빠가 아니라 멸종된 공룡이나 빌런같이 느껴질 것이다. 



신기하게 아이들은 앞자리를 탐낸다. 


희한하게도 싫을 것 같은 앞자리를 아이들이 늘 탐내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아내가 아이들이 태어나도 항상 자기를 1순위로 해달라는 말을 평생 지켜줘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조수석은 항상 '엄마자리'라고 강조한다. 언젠가 아이 한 명과 이동할 일이 있었다. 막내 아이인데 카시트를 탈출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이었다. 

"앞에 타도 돼요?"매번 안된다고 했는데 그날은 아이 마음을 알아주는 셈 치고  " 그래. 타봐라"로 답을 했다. 

아이는 눈과 입이 커지면서 얼른 아빠 마음이 바뀌기 전에 조수석으로 옮겨 앉았다. 

 

"에이!! "

"왜? 네가 좋아하는 엄마 자리에 탔잖아?" 

"아니. 그렇기는 한데. 근데.. 근데."

"왜?"

"응. 엄마 자리에 앉아서 좋은데, 앞이 하나도 안 보여.!! 별로야"

"하하하하하"


아이가 동경하고 탐내던 조수석 엄마 자리에 앉아서 행복했다. 그런데,  카시트가 없으니 앞이 보이는 게 아니라 하늘만 보이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 정말 아이의 아이 같은 마음 그 자체였다. '하하하' 크게 웃으며 아이를 안아 주었다. 운전하며 매번 혼내는 아빠자리, 그 옆에 매번 앉아서 탁 트인 앞유리를 보고 다니는 엄마 아빠가 그래도 엄청 부러웠나 보다.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앉아 보니 앞이 보이지 않고 하늘만 보인다고 투덜거린다. 이런 아이들과 살고 있는 게 감사하다.  




"아빠. 우리도 각자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다녔으면 좋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미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온유한 아빠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얼마나 바뀌어 가고 있는가 점검하고 싶었다. 우리 집에서 늘 문제가 되는 승용차를 통해 점검해 봤다. 아직 아빠의 모습은 한참 멀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덜 혼내고 덜 무섭다고 아이들이 말해주곤 한다. 다만 혹여나 또 그럴까 봐 아이들이 가끔씩 긴장한다고 한다. 더 노력하며 꾸준히 유지하려고 노력의 고삐를 바짝 쥐어본다. 



그리고, 아직은 차를 바꿀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아이 셋이 함께 다닐 일이 이제 점점 줄어들 수도 있다. 


출처: 사진: Unsplash의 Samuele Errico Piccar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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