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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보내. 버린.. 아빠

어린이집

햇살이 아직은 따스한 아침

회사를 향해 걸어가다 보면 두 가지 풍경을 보게 된다. 


예쁘게 챙겨  입힌 아이와 정신없이 어린이집 향하고 있는 편안한 차림의 엄마.

다소곳이 인사하며 셔틀버스에 아이를 태우는 행복한 얼굴의 엄마. 

그런 광경을 보면서 걷다 보니 내게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어린이집을 다닐 때였다. 대부분 아내가 바쁜 아침일 때가 많았다. 가끔 아이들과 더 많이 대화하려고 내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곤 했었다. 아파트 정문에서 어린이집 셔틀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도착한 셔틀버스에 아이를 태우고 손 흔들어주면 끝나는 일이었다. 물론 아기 엄마들 사이에서 해야 해서 상당히 어색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선생님께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그다음은 자리에 앉은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줬다. 아이는 창문 너머로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때로는 손을 흔들어 줄 때도 있다. 그렇게 셔틀버스가 '부우웅~'하고 멀어지면 흐뭇하고 행복한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오늘도 아이를 내가 배웅해 줬다. 이럴 수 있어서 감사하다. 뿌듯하군!'



전날 야간근무를 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잊어버리게 했다. 더불어서 아내와 함께 양육을 한다는 자부심에 마음속에는 뿌듯함이 덤으로 차올랐다. 이른 아침 대충 입은 옷과 슬리퍼차림 덕분에 누군가는 백수로 쳐다볼지라도 당당했다. 야간근무하고 와서 어린이집 등원까지 함께해 준 아빠라는 자부심이 하늘높이 솟는 폭죽처럼 커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종종 셔틀버스에 태워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셔틀버스로 다니던 어린이집이 폐업을 했다. 그 이후는 동네어린이집으로 아이들을 보내게 되었다. 걸어 다니면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이 각자 학교를 등교하고 있다. '어느새' 이제 부모 손 잡고 다닐 일이 없어졌다. 고사리손 잡고 걸을 일이 이제 없어졌다.  



어느 날인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우적우적 먹다가 내가 한마디 했다. 


"이제 너희들 등원이나 등교를 해줄 일이 없어졌네. 알아서 잘 다니는 걸 보니 금세 컸네. 아빠는 너희들 등원같이 가주는 게 참 좋았는데.."


"아빠!! 그거 알아요?"


아이가 말한 내용은 정말 내게 충격적이었다.  


"아빠가 셔틀버스에 태워주고 나면 내가 왜 창문밖을 보고 있었는지 알아요?"

"밖에 보던가 아빠 보고 있었겠지. 다른 아이들이 엄마 보듯이."

"아니에요. 아빠가 셔틀버스에 나를 태워서 보내는 게 싫어서예요. 그래서 아빠 얼굴이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어요."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너무 충격적이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웹툰이 사실이었다.  

창문 밖을 바라보는 아이를 향해 사랑의 마음으로 즐겁게 손 흔들어 주는 나 
창문 안에서 또 태워서 보내는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아이.


아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있고 싶은데 매일같이 셔틀버스에 타서 갔다가 와야 해서 너무 싫었다고 했다. 그 말을 무려 7년이 지나 이제야 얘기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더 이상 과자를 집어 먹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매일 셔틀버스에 태워서 보내지고 맡겨지는 하루종일 너무 싫었다는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렇게 아이 세 명을 어린이집에 보냈고 지금은 초등학교를 보내고 있는데 말이다. 



"고맙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말해줘서. 아빠는 정말 몰랐다. 이제라도 마음을 잘 알아주도록 노력할게!" 

"네. 이제는 괜찮아요. "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이제는 출근길 익숙한 풍경들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그래서, 보일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나고 '동상이몽'인 아이들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들을 하면서 회사를 향해 걷고 있다. 







아이의 손은 아주 연약하고 보드랍다. 조금이라도 뾰족한 것에 닿으면 금세 피가 날 정도로 연약하다. 마찬가지로 아이의 마음도 그러함을 이제야 깨달았다. 아이에게 무심히 건네는 어른의 한마디가 화선지에 떨어지는 먹물 한 방울처럼 속도와 파급력이 엄청나다. 



그렇게 느끼는 아이는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제때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사실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마치 땅 속 깊숙이 숨겨져 있을 보물을 찾는 심정으로 과거에 내가 무심히 한 행동들 때문에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들을 뒤늦게 찾아내는 중이다. 그러면서  '회복'을 꿈꾸고 있다. 물론, 그렇게 마음먹었지만 잠자기 전에 거실 정리 안 하고 들어갔다고 '버럭' 혼내는 여전히 부족한 아빠이기도 하다.  



노오랑 셔틀버스가 지나갈 때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 밤톨만 한 아이들을 보고 나서 떠올리게 된 아이의 말을 다시금 곱씹어 봤다. 


"나를 태워서 보냈어요...."  



출처:사진: Unsplash의 hossein azarb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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