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새벽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이른 새벽이다 보니 조용히 집안의 어둠 속을 비집고 제 물건들을 챙겨서 현관문을 나서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신발을 신고 나가려고 현관에 발을 딛는 순간,
"빠빠이~"
라는 손인사와 함께 졸린 눈을 뜨지도 못하는 둘째 딸이 나왔습니다.잠을 깰까 봐 얼른 들어가라고 하는데도 깨금발로 팔을 들더니 저를 안아 줍니다. 물론 저도 허리를 조금 숙여서 맞춰줘서 서로 안아주게 되고요.
그 순간, 제 맘은 뭉클했습니다.
"이제 들어가! 잠 깰라~"
"아빠 가면 들어갈 거야!"
둘째 딸의 그런 행동에 감동한 마음을 점퍼 안 깊숙이 넣어두고 조용히 나왔습니다. 현관문을 나서면서 뒤돌아보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둘째 딸덕분에감동이넘쳐서 벅차고 뭉클한 가슴 덕분인지 새벽의 추위가 잠깐동안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둘째 딸은 잠이 많은데 예민해서 수시로 깹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수면부족인데 요즘 자꾸 새벽에 일어나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 걱정때문에 저녁식사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나갈 때 잠을 깼다면서 둘째가 인사해 주는데 엄청 감동이에요. 엄마는 피곤하다면서 안 일어나는데.."
그 말에 아내는 화가 나고, 둘째 딸은 으쓱거리면서 씽긋 웃었습니다. 제 말이 애매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잠을 많이 자야 하는 나이니까. 일어나지 마아.."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아니야! 그러지 마! 그냥 푹 자~~"
"알았어요. 혹시 잠 깨면 나올게요."
"알겠다. 아빠가 더 조용히 나갈게. 미안~"
그런 대화를 하다 보니 둘째 딸의 인사말이 생각 속에서 맴돌면서 그 의미를 곱씹어봤습니다.
빠빠이! - 힘들죠.. 아빠? 잘 갔다가 오세요. 저도 할 일 잘하고 있을게요
잠시 혼자서 방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돼 샘김질 하듯 둘째 딸의 말을 생각해 보니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갱년기라서가 아니라 이제야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생겨서인 것 같습니다. 맨날 살찐다고 걱정하는데 계속 과자를 먹고 운동은 안 하는 초등 5학년 둘째 딸을 맨날 혼낸 것을 반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계속 사랑해 주고 애틋해하는 마음이 너무 예뻤습니다.
그렇게 예쁜 마음으로 저와 살아주는 둘째 딸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더 온유하고 마음 따뜻한 아빠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식성도 비슷하고 은근 생김새도 비슷한데 너무 의욕적이라며 핀잔을 많이 준 딸이 늘 제게 감동도 많이 주고 살갑게 옆에 있어줘서 고마운 날이었습니다.
아이의 '빠빠이'는 만 가지 공통어입니다.
'빠빠이'가 아기일 때는 아무 의미 없이 그냥 '빠빠이'였는데요. 아이가 자랄수록 그 의미가
'잘 다녀오세요.'
'사랑해요.'
'나도 학교 잘 다녀올게요. 걱정 마세요.'
'아빠 그만해요. 손절각!'
'아빠 그만해요. 손절각!'
등등의 많은 의미를 포함한 단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빠빠이'는 만국공통어처럼 딸과 저의 '만 가지 공통어'였던 것입니다. 그저 듣기만 해도 이제는 뭉클합니다. 딸들이 없었다면 절대로 경험하지 못했을 일들입니다.
딸의 행동 때문에 또 감동했습니다.
출근하지 않는 날 새벽, 발행예정글이 허술한 것 같아서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너무 죄송했습니다. 노트북을 펼쳐서 혼자 조용히 식탁에 앉아서 수정하고 있었습니다.
'왜왜에에엥.. 왜왜에에엥..'
어디선가 알림음이 울리더니 멈추지를 않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찾아봤더니 저의 출근시간에 맞춰서 둘째 딸이 시계에 알람을 맞춰놓은 것이었습니다. 아빠의 부스럭거리는 출근소리에 잠을 깬 것이 아니라, 일부러 아빠 출근 시간에 맞춰서 일어나 인사해 준 것이었습니다.
진실을 알고 나니 딸이 너무 기특하고 예뻤습니다. 그 새벽에 저는 노트북을 접고 혼자서 소리 없이 엉엉 울었습니다. 변질된 나쁜 아빠가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부단한 노력을 하는 중인데들째 딸은 아기일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제게 주고 있었습니다. '아빠'라는 이유만으로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라는 말을 저녁식사 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런 마음에서 그랬던 것입니다. 일주일정도 그러더니 "아빠! 너무 피곤해서 내일은 못 일어날 거 같아요."라고 하길래 괜찮으니까 푹 자라고 했습니다. 재택근무를 할 때는 "아빠, 모든 것을 보시니 잔소리가 많아요. 그냥 출퇴근하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투덜거리더니 막상 이른 새벽 나갔다가 깜깜한 늦저녁에 퇴근을 하니까 또 애틋하게 여겨줍니다. 그 모든 것이 저에 대한 '아이들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진짜로 아이들 말 번역을 하면서 너무 행복합니다. 아이들이 제게 사용하는 말의 속뜻, 속마음을 제대로 알아낼 때마다 쾌재와 함께 '이제야 이걸 이해했다고?'라면서 자책도 합니다.
진작 아이들 말을 잘 알아들었다면 아이들도 행복하고 저도 늘 감사하는 일상이었을 텐대요. 아쉽긴 하지만 지금 회복의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오히려 진짜 '사랑 가득한 가족'의 '맛'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가족의 참맛'을 몇 배나 더 진하게느낄 때도 있고요. 함께 먹는 저녁식사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