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프다는 말은 듣기만 해도 맘이 짠해집니다. 병원에 데려다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아픈 것을 끙끙 앓으면서 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입니다.
그런 고통을 느끼면서 마음속에서 엉엉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지만 못 그럴 때도 있었습니다.
제 마음이 힘들거나 돈이나 직장 관련한 심각한 고민할 때는 아이가 '아파요'라고 말하는데도 못 들은 척하거나 안 들리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빠인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아빠를 느낀 아이는 "아프니?"라고 물어도 "아파요."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아픈데도 "아파요."라고 말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정말 짜증 나는 일이 있거나 바빴을 때는 "또, 넘어졌니? 그러면 다친다고 말했었지?"라면서 다쳐서 아픈 아이에게 동문서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막내딸이 퇴근 후 멍하니 앉아 있는 제게 와서
"아빠. 여기 아파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응. 어디가 아프니?"라고 늘 묻고 아픈 그 자체를 공감하며 받아주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마음속으로 한 날입니다.
"어디가 아프니?"라고 말하면서 원래 빼빼 마른 딸을 그냥 말없이 안아줬습니다. 그랬더니 막내딸은 아프다고 말하면서 왔는데 그냥 안긴 채로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맘이 저리면서 아프고 미안했습니다.
여기가 아파요! - 저를 좀 봐주세요. 사랑해 주세요.
그런 마음으로 제게 말을 거는 것입니다. 잠깐 안아줬을까요. 막내딸을 놓아주고 물었습니다.
"아프겠네. 어디가 아픈데?"
"요기."
말한 것은 손가락 손톱 위 살이 조금 찍혀서 이미 딱지가 앉아 있었습니다. 다친 지 며칠 된 것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이제 말한 것도 맘이 아프고요. 안아 줬더니 안 아픈 사람처럼 제 품에 안겨 있는 것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늘 저는 제 감정에만 섬세했습니다.
아내, 아이의 상태와 감정에 신경 쓴다고 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제 감정에 치우쳐져서 귀가 열렸다 닫혔다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느끼면서 '아차'싶었고 그런 행동 때문에 긴 시간 서로가 마음 아픈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아파요'하면 '아차'합니다.
아이들이 늘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바쁘다면서 피곤한 몸을 핑계로 관심 가지기를 소홀히 할 때가 있습니다. 잘 지내주고 있기를 소원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아플 때면, 심하게 아플 때면 '미안하다. 이렇게 아플 때까지 미처 몰랐구나'라면서 반성하기도 합니다. 좋은 아빠가 될 것이라는 의욕이 현실에서는 좋아질 아빠였던 것입니다.
아이는 오늘도 S.O.S를 보냅니다.
아이들은 오늘, 지금도 신호를 보냅니다.
'도와주세요.'
'힘들어요.'
'사랑해 주세요. 관심 가져주세요.'
아이들 말 중에 충격받은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은근 무시하는 아이가 있는데 집에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아이라는것입니다. 그런 사실도 슬펐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 안 쓴다는 말에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우리 가정의 삼 남매도 그렇게 되면 안 되겠지만 이 세상의 많은 아이들이 그러면 안 되도록 신경 써야겠다 싶었습니다.
아이들 말을 번역하면서 저는 아주 미세하게 변화하는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예전이라면 그랬을 텐데!'라고 스스로 또는 아내가 말하는 횟수가 늘어갑니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더라도 이제는 귀 기울이며 지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