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 삼 남매는 학원을 가지 않고 공부 중입니다. 학원을 보낼 여력도 되지 않고 학원을 보내서 선행학습하기보다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복습하고 부족한 부분은 자습으로 보완하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중학교 1학년인 큰아들이 공부하는 것에 대해 매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중에 특히 수학공부를 제일 힘들어합니다. 이유는 잘하고 싶은데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아내와 제가 대출금과 빚 때문에 일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예전과 달리 아이들을 봐줄 시간이 없어서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학원에서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해결하며 수업이 끝나면 같이 놀다가 집에 간다는 말을 늘 원망처럼 하는 큰아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보내주지 못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씹어 삼키는 심정이었습니다.
어느 날, 큰아들이 '제발 학원 좀 보내달라!'는 말을 거듭 울부짖었습니다. 혼자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만 하느냐?'면서 원망 섞인 한숨을 토해냈습니다. 아내와 저는 고민하다가 다른 비용을 줄여서라도 한 번쯤 '학원'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그런 결단을 내리고 아내와 함께 방에 앉아서 돈 계산을 해보니 아무리 해도 여유가 없었습니다. 월말마다 결제금액, 대출금액을 처리하느라 덜덜 떠는 상황에서 그 돈을 감당하는 것이 무리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큰아들의 원망 섞인 절규를 더 이상 모른 채 할 수 없어서 지출비용을 줄이고 결제를 진행했습니다. 학원을 가기 시작하면서 아들에게 공부하고 싶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왜 공부를 잘하고 싶니?"
"스페인에서 사진작가를 하고 싶어요."
그런 대답을 하는 큰아들을 보면서 아내는 "아깝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반대로 너무 기특해서 "yohigo"라는 작가를 추천해 주고 '비전선언문'을 작성해 줬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말했습니다.
저는 아빠 닮았나 봐요.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아이들과 놀면서 보이는 것들이 아름답다면 휴대폰으로 얼른 찍는 것을 즐기도록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 혼자서 또는 아이들과 걷다가 휴대폰으로 "깨알사진"을 찍는 아빠를 늘 재밌어하면서 따라서 자기 시선으로 온갖 것들을 찍는 큰아들이 '저는 아빠 닮았나 봐요!!"라면서 닮았다며 사진을 쫌 찍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축구 덕분에 알게 된 스페인을 너무 가보고 싶다고 하면서 스페인어를 듀오링고로 공부하고 있고요. 그 소망이 합쳐져서 큰아들은 스페인 가서 사진작가를 하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큰아들의 비전을 들으면서 저는 가슴속이 뜨끈해지면서 울컥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빠가 자기감정으로 순식간에 화를 내거나 혼내면서 엄한 독재자처럼 굴었던 시간이 많아서 늘 미안해하며 고치고 있는데 반대로 큰아들은 아빠의 재밌는 점을 바라보면서 아빠를 칭찬하면서 감동과 사랑의 마음을 제 마음에 흘려보내주는 것입니다.
저는 아빠 닮았나 봐요.- 아빠의 취미실력을 인정해요. 아빠 잘해요. 아빠를 사랑하고요.
덧붙여서 큰아들이 엄마에게 말하는데 "엄마는 공부를 잘하고 아빠는 사진을 잘 찍는다면서 창의력이 뛰어나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야! 엄마만 공부 잘했는 줄 아냐? 나도 잘했다!!"
그렇게 말하며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창의력'있다는 말만으로도 또 고마웠습니다. 저를 높여주고 사랑해 주는 아들의 마음 깊은 말에 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큰아들이 저를 닮았겠습니까? 아내와 저의 둘 다 닮으며 장단점을 가지고 태어났겠지요. 그렇지만 큰아들은 아빠 닮아서 자기도 창의적이며 독특한 사진을 잘 찍는다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큰아들과 오늘도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키가 작고 나이가 어릴 뿐, 마음그릇은 저보다 깨끗하고 넓은 것을 오늘도 인정했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저를 키우고 있습니다.
제가 집, 돈, 보호자 역할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고 제가 모든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자꾸 아이들을 함부로 대한다면 '내 아이들을 남의 자녀를 맡고 있다는 마음으로 대해보라고 제안'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행동들의 이유는 예전에 '말해봐라! 들어보고 모든 결정은 아빠가 한다.'라고 했다면 이제는 '말해줘! 어떤 것을 가장 원하니?'로 바뀐 질문을 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느낀 감동이 동기부여가 되어 제가 조금씩 더 변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예술사진 찍는 크리에이터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길거리에 같이 본 '깨알'들이 아무 의미 없어 보였는데 아빠 휴대폰으로 볼 때는 재미있고 색다른 느낌이라면서 늘 엄지 척해줍니다. 그러면서 늘 아이들이 '아빠는 기발한 생각과 색다른 시선으로 멋있는 사진 찍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봅니다. 깨알 프로젝트에 올리는 '깨알 사진'들이 원래 일상 속 실제취미입니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가장 돈 안 들고 제가 평생 즐길 취미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그런 시간도 얼마 안 가지 싶습니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아빠 휴대폰 사진들을 보면서 "예술 사진이 아니었네. 별거 아니네.'라고 말하면서 웃을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세상을 더 알아갈수록, 아빠는 조금씩 작아집니다.
아이들 마음이 아빠 마음보다 여전히 예뻐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질투, 미움, 분노등으로 변하는 아빠 마음과 달리 아이들 마음은 여전히 '사랑, 이해, 배려'의 마음으로 가득 찬 것을 느끼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아이들과 살고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요.
자기가 아빠 닮았다는 큰아들의 말이 가슴에 큰 감동의 울림을 준 어느 날을 적어봤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것에 대해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아이들 말을 번역하면서 아이들이 저보다 더 깊고 넓고 이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저는 '덩치 큰 어른이'같다고 느꼈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게 사실이고요. 그래도 아이들 말을 곱씹으면서 번역해 보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