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카페를 가서 큰아들과 앉아 있었습니다. 아내를 기다리면서 차를 마시면서 아들은 휴대폰을 하고 저는 보고 싶었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말하고 듣고 있는 뒤편 테이블을 살짝 보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본 것이 아니라, 아빠의 말이 끊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왜 저렇게 시끄러운가?'라면서 보게 된 것입니다. 아빠가 본 책에 대해서 아들에게 그 교훈을 전해주겠다는 목적으로 책의 줄거리, 교훈, 삶 속에 적용점에 대해서 쉴 새 없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곁에서 보는 엄마는 '응. 맞아!! 아빠 말이 그런 거 같지?'라면서 호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화가 매우 일방적이었습니다. 아빠는 정말 침 살킬 틈조차 없이 말하고 있고 엄마는 계속 아빠의 말에 공감하면서 호응을 아들에게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아주 가끔씩만 '네.."라면서 듣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 내용이 어떻든 간에 들려서 들었고 보여서 봤는데 너무 '숨이 막혔습니다.'
자유롭게 자기 시간을 즐기는 큰아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저기 테이블은 너무 심하지 않니?"
"맞아요. 숨을 못 쉴 정도예요. 시끄럽고요."
"시끄러울 순 있지. 카페이니까! 그런데 말이 너무 많으시다. 쉴 새 없이"
"네. 힘들어요."
"야! 근데 나는 저 정도 아니지? 아빠도 저 정도 말이 많니? 저녁에 우리 모여서 간식 먹으면서 대화할때 저렇니?"
"괜찮아요. 아빠는...."
"......................."
큰아들의 답변은 저로 하여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대답이었습니다. '다행이다.'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다시 보던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은 처음에는 다행이다라는 느낌으로 느껴졌지만 나중에는 큰아들의 숨겨진 배려를 느낄 수 있어서 감동이었습니다.
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들이 빈말로 한 것을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들이 되게 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주워들은 얘기, 브런치 내에서 읽은 이웃작가님들 얘기, 세상을 보면서 느낀 얘기, 새로운 아이돌에 대한 아빠의 평가등등에 대해 쉴 새 없이 얘기하는 제 모습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자꾸 뭘 가르치려고 의욕을 부렸던 제 모습을요. 거의 매일 저녁때 간식을 먹으면서 '대화'하자고 해놓고는 '훈화열정 아빠'가 독차지하면서 아이들은 그 시간이 새로 나온 간식을 먹는 시간 외에는 고통이었습니다.
"괜찮아요. 아빠는...." - 아빠도 저렇게 쉴 새 없이 말하세요. 조금 줄여주세요. 제가 말씀 안 드려도 이미 아시는 거 같아서 아빠 기분 좋도록 갈게 말하지는 않을게요.
큰아들의 말의 속뜻을 되새겨보면서 '그러는 거 아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게 아니다.'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숨이 막히고 귀를 닫고 머리를 숙일뿐이었습니다. 카페에서 그런 가족을 보지 못했다면 저도 끊임없이 저의 에너지가 허락하는 한 그랬을 것입니다. 아직 의욕을 부릴 만큼 에너지가 있는 것은 다행인데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저를 돌아본 어느 오후였습니다. 저를 배려해서 말해준 큰아들에게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저보다 10배는 속이 깊은 것 같습니다.
자꾸 가르치려고 해서 아이들을 피곤하게 했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그런 저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베워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때 정말 속이 '뜨끔'했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제가 영화를 보고, 책을 보고 감명 깊은 내용에 대해 저렇게 쉴 새 없이 아이에게 말했고요. 듣다가 지쳐서 한눈 팔면 집중하라고 말하면서 어려운 분위기로 만든 것같암ㅅ습니다. 칼에 베여서 아파하고 나서 칼의 위험성을 느낀 것처럼, 쉴 새 없이 말하는 아빠와 아이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의 피곤한 매일 저녁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혼내고 무서운 아빠가 되지 않으려다가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금연하려고 금연껌을 씹다가 금연껌의 맛에 중독되어 하루에 몇 통씩 습관적으로 씹는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런 것처럼 매일 애들을 혼내고 무섭게 구는 아빠의 부작용을 알고 고치려다가 아이를 혼내는 대신 말로 타이르거나 설득시키면서 말이 많아졌습니다. 금연껌 같은 부작용이 생긴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말을 줄이고 아이들 생각 수준에 맞는 '대화'로 잘 변화하려고 합니다.
꼭! 직접! 느껴봐야 아는 저를 반성했습니다.
사실 이번 상황에서 느낀 것은 아내가 몇 번이나 말한 것입니다.
"남편, 애들한테 말할 때 너무 말이 많아요! 그냥 '잘했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라고만 말해도 아이들은 알아 들어요.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뭘 하면 안 되는지 알아요. 당신은 왜 해야 하는지, 왜 하면 안 되는지 일일이 설명해 주고 다시 반복하고 안 그랬을 경우 어떤 일이 생기는지까지 제대로 안 들은 것 같다면서 몇 번이나 말하고 그래요. 옆에서 보는 내가 지쳐요. 아이들은 어떻겠어요."라면서 수만 번 말한 것입니다. 수만 번 말해줬는데도 '절대' 고치지 않고 끈기 있게 하는 행동들이었습니다.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을 직접 보고 나서야 고쳐야 될 행동이라며 깨닫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가 말했습니다. "남편, 다행이네요. 이제서라도 고치려고 하니까!"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또 하나 고친다는 생각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살고 있으니 아내와 아이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말 번역 실력이 늘어가면서 저는 아이들 속마음을 조금 더 알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제가 일반적인 아빠, 남편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실력을 배양하고 있고 이번 프로젝트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은 모두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