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빠. 그래서 그랬어요. +10

아빠한테 말하지 마요.

아내와 아이들은 제게 종종 비밀을 만듭니다. 그들끼리 반드시 사수해야 할 내용이고요. 그것은 절대로 제게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때로는 엄청 끈끈하게 맺어져 있다고 투덜거리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 아내와 자꾸 여러 가지로 불필요한 언쟁을 할 때, 아내와 다투는데 아내가 아이들을 감싸면서 자기 품 안에 모을 때 그 모습이 미워서 더 싸우기도 했습니다. 저만 따돌린다는 생각에서요.



한동안 노력하며 열심히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모든 말을 듣는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5인가족에 1:4 대립구도는 사라질 기미가 보인다면서 나름대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 키가 크고 싶다면서 저녁이면 나가서 운동하는 아들이 열이 나서 이틀이나 학교를 못 갔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이유불문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아픈 아이가 열이 나서 그런지, 학교를 안 가서 머쓱한 건지, 쉬다 보니 늘어지는 건지 자기 방에 하루종일 누워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줬습니다. 머었고 싶다고 한 것들을 아내가 사놓았길래 방에 넣어줬습니다. 콜라도 한  넣어주고요. 휴대폰도 편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방문을 거의 닫아줬습니다.


"아빠~~ 왜 가둬요? "

"엥? "


아이가 장난반 진담반으로 한 말에 제가 당황했습니다. 진심으로 맘껏 푹 쉬라고 간식도 넣어주고 얼굴 한번 들여다보기만 하고 문을 닫아준 건대요. 배려를 한 건데 반응이 이상했습니다

 

"간식 넣고 문 닫아 줬는데 오히려 가두냐면서 묻는대요? 여보? "

"에휴... 그럼요. 몰라요?"

"뭘요?"

"그러니까. 애들이 아빠에게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뭘요? "

"자기가 아프다는 걸요."

"엥?"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엄마에게 신신당부한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한테 말하지 마요. - 아빠가 걱정해서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쉬라고 하니까. 제발 말하지 말아 줘요.


아이가 아프면 마음이 아파서 그저 편히 쉬라고 하면서 먹고 싶은 거, 휴대폰 하고 싶은 거, 게임하고픈 거, 푹 자는 거 등등 뭐든지 하라고 하면서 바깥 활동은 제약합니다. '그러다가 더 아프겠다.'라고요.



아이들은 아프더라도 자기가 견딜만하면 바깥에 나가고 싶으며  아프고 힘들면 자기가 알아서 중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 마음을 모르고 아프면 푹 쉬라고 아빠는  '일단정지모드'만 요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이제야 알아 들었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내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더불어서 그렇게 말뜻을 모르고 지내는 남편과 소통의 불편함에 대해 참고 지내줘서 고맙다고도 했습니다.



아플 때마다 아빠가 알게 되면 아무것도 못하게 할까 봐 조마조마하던 아이들 마음도 조금은 풀어진 듯합니다.  상대방의 마음과 마음이 담긴 말을 못 알아듣는 '의도치 않은 불통'은 정말 힘든 것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참아주는 누군가는 고통의 나날임도 이제 진심으로 깨달았고요.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정말 상대를 힘들게 하기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야 고작 열댓 가지  알아냈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이미 했던 말들이 많아서 번역하다 보니 바쁩니다. 역하며 깨달은 것들이 너무 심각해서 마음이 더 바빠집니다.  마음이 점점 더 바빠지는 것은 이 상황에 더해서 사춘기터널을 지나가는 아이들과 눈높이도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나쁜 사람만큼 상대방들을 힘들게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자녀말에 대해 동시통역이 조금 됩니다.

'조금'이라는 의미는 번역 프로젝트를 통해서 완벽히 완수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 말에 대해 마음을 열고 듣기 시작해서 '조금'공감하고 어른 수준의 요구사항을 강요하는 것이 '약간'줄어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이제 더 느낍니다.



아내가 가끔 웃습니다.

아내가 아이들 마음을 통역해 주면  '그게 그 말이에요?'라면서 이제 귀가 열립니다. 아내는 그런 저의 모습에 '다행이에요.'라면서 빙긋이 웃어주기도 합니다. 덩달아서 아내의 불안감 유발 원인도 하나 줄어들어갑니다.



아이들 말 번역 프로젝트를 통해 '아빠로서 해야 할 일'에 대해 더 마음을 열고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을 나중에 더 예쁘게 정리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줄 작정입니다.



이런 어설픈 노력을 늘 격려하며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제 노력이 대단하다기보다는 오죽하면 저를 드러내놓고 고치고 있는가라고 생각하시면서 꾸준히 하도록 읽어주셔서 감동입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 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다행입니다

지금이라도 알아듣기 시작해서요.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unsplash의  sai de silv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