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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그래서 그랬어요. +12

도와 드릴까요?

아이들 학기에 맞춰서 시작한 '베란다 농장'( 방울토마토, 해바라기, 참외, 수박)의 모든 일정이 끝났습니다.

집 베란다에 화분을 걸어놓고 아이들과 물 주고 매일 관찰하며 지내던 일상이 마무리된 것입니다.



농작물 종류는 해바라기, 방울토마토, 수박, 참외, 상추였습니다. 해바라기는 제법 커져서 깜장 씨앗들과 대비되는 노랑 꽃잎들이 전부 만개해서 한껏 아름다움을 뽐내다가 시들었고요. 방울토마토는 화분 통째로 식탁 위에 올려놓고 '산지직송'이라면서 아이들이 맘에 드는 것을 골라 물로 씻어서 먹도록 해줬습니다. 정말 신나는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수박, 참외가 큰 결실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수박은 미니어처 수박이 열려서 점점 커지면서 기대감을 잔뜩 심어주다가 큰 장맛비에 비피해를 입었고요. 참외는 가을 직전 햇살까지 챙기면서 힘을 냈지만 역부족이었다. 참외 꽃이 피고 참외가 동그랗게 달렸다가 시들었습니다. 상추는 계획처럼 집에서 기르고 있는 식용달팽이들의 먹이로 틈틈이 잘라서 먹였습니다.  이렇게 '베란다 농장'은 계절이 바뀌면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과 함께 끝났습니다.  



베란다 너머 바깥으로 넝쿨지는 참외, 수박들 때문에 동네 아기들이 자꾸 베란다 앞까지 오거나 뭔가를 던지기도 해서 난감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 학기 시작과 함께 성장하다가 찬바람이 살짝 불면서 끝난 '베란다 농장'의 화분들이 이제는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계속 미루면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남편, 베란다의 화분들 정리해야 하지 않아요? 곧 날이 추워질 거 같아요."


아내의 말에 미루고 미루던 '화분 정리'를 더이상 미룰 수 없어서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없어서 한적한 느낌에 빨리 처리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집에 남아있던 큰아들이 갑자기 제게 물었습니다.


"도와드릴까요? "


큰아들의 말에 웃었습니다.

"아니! 도울 것은 없고.. 아니다. 필요하면 말할 테니 그냥ㅍ쉬어~~"



그렇게 말하고는 죽거나 시들은 식물들을 정리했습니다. 비옥한 비료 흙들도 재정비하면서 불필요해진 화분들은 세척해서 내년에 아이들 새 학기에 또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들어드릴까요? 제가 흙 담을까요?"

"괜찮아. 너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 휴대폰을 하던지, 게임을 하던지"

"아니에요." 그렇게 또 대답하는 큰아들은 자꾸 제 옆에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꾸 주고받다 보니 할 일을 줘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럼 이 흙들 창고에 갖다 놓고 와라!~"

"네.."

"이 화분들 세척할 거라서 너네 화장실 앞으로 가져다 놓고"

"네..."


순식간에 처리하고 또 저를 바라보는 큰아들을 봤습니다. 아들이 부담스러워서 자꾸 저를 도와주려는가 싶어서 '자유'하도록  말했습니다.


"너 하고 싶은 거 해!!"

"아니에요."


그런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화분정리가 모두 끝났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에 거실을 가려놓은 하늘거리는 커튼너머로 벌써 서늘해진 가을하늘이 더 은은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커튼 너머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정원수들이 더 운치 있는 정원 같아 보였습니다. 뭔가 할 일을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해서인지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렇게 느끼면서 그런 기분을 전해주려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다 끝났으니 방에서 편히 쉬어! 네가 산 플스 게임 해도 되고!! 잠을 자도 되고!! 동생들 없는 시간에 자유를 만끽하던가!!"

"아니에요."


그 말을 하고 나서 정리의 완성으로 거실 주변을 청소기로 밀고 물걸레로 닦았습니다. 아내가 집에 오면 정리된 화분들을 보면서 좋아할 것 같아서 제 기분도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상큼한 기분에 식탁에 앉아서 멍하니 있는데 그 옆에 앉은 큰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근데. 이상하다. 편히 쉬라고 하는데. 자꾸 뭘 돕는다 그러냐? 동생들도 없는데 자유를 주고 싶은데..."

 그 말에 아들은 "아...." 하면서 망설였습니다.



"왜? 말해봐. 쉬라는데 왜 안 쉬고 그러냐?"


도와 드릴까요? - 아빠 옆에 있고 싶어서요.


아들이 제게 한 말은 몇 마디 아닙니다. 사춘기 아들이 논술시험처럼 구구절절하게 주제를 가지고 말할 리가 없고요. 그렇지만 아들이 한 말은 저를 멍하게 했습니다. 가족 내의 수많은 문제들을 어릴 때부터 보고 들으면서 지내다 보니 뭔가 기가 죽어 보이고 늘 쑥스러워하고 선뜻 용기 내지 못했습니다. 기 살려주겠다고 두 동생들 앞에서 '오빠다!!'라고 했더니 언제부터인가 두 동생들 앞에서 '제왕'처럼 군림하길래 은근 머리가 아픈 요즘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제게 한 말은 나름대로 감동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여전히! 아빠와 함께 하고 싶다는 것 자체가 최고였습니다.



오늘 큰아들 말을 번역하기 전까지 그때의 '감동'을 잠시 잊고 지냈습니다.

아내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늘 엉뚱한 생각을 하고 '소통'불통이었던 제가 아들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것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들 마음을 읽어주지 못한 것입니다. 아들은 아빠와 둘만 집에 있는 시간 동안 아빠와 뭔가 같이 하고 싶어서 자꾸 '도와드릴까요?'라고 사인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옆에 있고 싶어서 그랬다는 말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말, 특히 한국말은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강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yellow를 표현하는 것도 '노랗다' ' 누렇다' ' 누르뎅뎅하다' ' 노리끼리하다' '노르스름하다' '샛노랗다' '노래진다' ' 황색' 등등으로 끝도 없이 사물의 모든 면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거의 완벽하게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마음을 열어 듣지 않는다면 이해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나마 마음을 표현한 몇 마디 조차도 이해를 못 하고요. 제가 그렇게 지내온 것입니다. 이제야 조금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춘기 유무를 떠나서 '여전히 함께 하고 싶다!'라는 것은 '감동'입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순간순간 감정기복이 심한 큰아들, 아직 초5인데 벌써 사춘기가 시작된 둘째 딸, 오빠와 언니의 변화를 보면서 덩달아 신경질을 내는 막내딸 모두가 태풍의 눈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 매일입니다. 그럴 때마다 정말 가슴 한복판에서 불덩어리가 치솟으면 쥐어박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도 제어 못하는 그런 감정상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빠와 함께 하고 싶다.'라고 말하고 곁에 있어주는 삼 남매의 말과 행동에 여전히 '감동'입니다. 본격 태풍의 시간이 엄습해오고 있는데, 아기일 때 받은 감동과 지금 느끼는 다양한 감동들을 방패 삼아 지혜롭게 잘 견뎌나가 보려고 합니다. 살면서 '사랑'이 가장 최고라고 하는데 '감동'도 그에 못지않은 것 같아서 든든합니다.


아이들 말을 번역하면서 받는 '감동'은 엄청납니다. '아이들 말 번역' '함께 영화 보면서 마음 알기'프로젝트가 슬슬 중반을 넘어서면서 감동과 깨달음은 더 커집니다. 오늘도 느낀 '감동'을 정리한 것을 읽어보면서 스스로 행복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심에 대해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Cathal Mac an Bhea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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