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해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내와 상의해서 진행만 하면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아이 둘이 사춘기가 시작되고, 그런 언니 오빠를 보면서 지내고 있는 막내딸까지 함께 할때는 이제 조금씩 아이들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하곤 합니다.
"뭐 먹을래? "
"아무거나요."
"아빠. 드시고 싶은걸로요. 저는 좋아요."
"우리 이번 연휴에 산에 갈까? 바다로 갈까? "
"으응.... 아빠. 하고 싶으신 대로요. 그게 재밌어요."
그런 의도였지만 늘 의견이 비슷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 얼굴은 그저 그렇고요. 오히려 저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했습니다. 늘 아이들의 마음이 반영된 대답이 나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들이 늘 이어지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키고 하고요. 물어봐야 뻔한 대답이 돌아온다는 가정에서 그저 통보하고 추진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물 흐르듯이 흐르는 것 같은 일상들이 왠지 건강하고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의 찜찜함을 모른 척할 수 없어서 세 아이들에게 틈날 때마다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아빠가 '뭘 살까? 뭘 먹을까? 어딜 갈까? '같은 것들에 대해서 '왜? 고민 없이 대답할까?'를요. 그런 의문에 대한 아이들 각자의 대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요. 어쩌면 절대 아이들의 마음을 몰랐던 제 실수일 수도 있습니다.
아빠. 하고 싶은 대로요.- 아빠 뜻이랑 다르게 선택해서 불편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아이들을 위해 고심해서 제안하는 뭘 먹자고! 어딜 가자고! 무언가를 사자고! 할 때는 가능한 재정내에서 예산, 시간, 일정을 감안한 것이다 보니 어쩌면 '의도가 내포된질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풍족하고 남아도는 재정이 아닌데 다른 애들처럼 살고 싶은 우리 아이들 마음을 헤아려주려고 애쓰다 보니 소위 말하는 '안 하니만 못한 셈'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토끼귀까지 붙여준 아이들 머리만한 토끼 모양 솜사탕을 먹고 싶은 아이에게 과자봉지에 포장된 손바닥만 한 납작한 편의점 솜사탕을 사주는 식이었습니다. 형편을 모르는 아이들은 아빠의 현실이 반영된 제안은 천진난만하게 반대하고 자신들의 꿈같은 소원을 이루어달라는 대답을 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황당한 대답에 늘 화를 버럭 내곤 했던 제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이들이 몇 번이나 계획과 다른 선 넘는 선택을 하면 저는 더 심하게 화를 내고 '그럴 거면 하지 말자!!!'라면서 모든 계획을 취소해 버렸니다. 그럴때마다 아내가 수습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빠가 낸 아이디어를 따라보자"라면서 아이들을 달래고나면 모든 상황이어색하지만 다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자꾸 생기니까 어느샌가 아예 "아빠 제안대로!! "라면서 무조건 계획대로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대답이 늘 비슷한 걸 알고나니 정말 슬펐습니다.
제 필명이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인 이유가 이것이었습니다. 아내의 마음을 모르고 엉뚱한 일을 하면서 애쓰는 모습이 바람도 없는데 연을 올리겠다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아이 같아서인데요. 마찬가지로 아이들 마음을 모르고 아이들을 위한 계획을 늘 세웠던 저의 부족한 모습을 또 경험한 날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나서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가정 형편에 맞춰서 아이들을 위한 뭔가를 계획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면 그것이 가능한 상황인지 아닌지를 어느 정도 말해주고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이제 아이들이 편안해하면서 자기 의견도 다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와 대화하면서 아빠 의견에 그냥 맞추고 불편함을 피하려는 일들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그런 상황으로 바뀌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내의 마음에 조금의 평안이 더 자리잡았습니다.
뒤늦게 알게 된 아이들 마음을 반영해서 더 이상 가정형편을 이유로 양몰이하듯 아이들 의견을 몰아가는 일이 없다 보니 서서히 아이들의 불안감도 줄어들었습니다. 대신에 아이들과 장난 삼아 제가 맹목적으로 의견을 맞추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저녁식사 후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식탁에 놓고 둘러앉아서 대화를 이어가곤 합니다. 그러다가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사 올 때가 있습니다.
"아빠. 아이스크림 사러 갈 건데 아빠 뭐 먹어요? "
"네가 먹는 거 나도!!"
"네에에~~~"
아이들은 아빠의 대답에 굉장히 즐거워하면서 우루룩 현관문을 나섭니다.
그렇게 나가는 아이들 뒤로 이런 말이 들립니다.
"아빠가 오늘은 내가 먹는 게 먹는데.. 신난다."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면서 사 온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면서 말합니다.
"아빠!! 내 거랑 똑같은 거 샀어요.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말하고 아이가 주는 아이스크림은 정말 아이 입맛에 맞춘 아이스크림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스크림이 금가루를 뿌린 듯 재밌고 귀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아이들과 지내면서 아이들 속마음을 알아가는 과정 덕분에 조금씩 성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느끼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아빠가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오늘도 저의 서툰 모습이 다듬어지는 과정을 읽어주심에 대해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늘 이렇게 조금씩 변화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이 모르는 '영화를 통해 아이들 속마음 알기' ' 아이들 말을 번역하며 속마음 알기'덕분에 아주 조금 달라졌더니 아이들이 진짜 좋아서 '아빠! 아빠!'하고 찾고 함께 하고 싶어 합니다. 둘째 딸은 새벽에 출근하는 저를 위해 늘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서 문 닫고 나갈 때까지 손 흔들어줍니다. 그저 감사한 하루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