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ay 11. 2023
자꾸 고르지 않는 남자
편의점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다닌다.
온 가족이 나갔다가 아내가 자전거 사고로 다치고 나서 아내는 안 탄다.
아이들과 나가면 줄줄이 비엔나처럼 다닌다.
모두가 한 번씩 쳐다본다.
엄청 뜨거운 땡볕을 머리 위에 두고도 신나게 달린다.
소리도 꽥꽥 지른다.
손 놓고 탈 수 있다고 서로 자랑한다.
세시 간이상 타기도 한다.
입안은 바싹 마르고, 목이 타들어갈 만큼 말라간다.
자전거를 타는 날은 편의점 놀이도 한다.
몇 군데 고정적으로 가는 곳도 있다.
아이들은 편의점을 가기 위해 몇 시간을 참으며 자전거를 탄다고 했다.
어릴 때는 편의점에 가서 젤리 하나 또는 초콜릿 하나씩과 물만 사면 해결이 되었다.
이제는 삼각김밥에 라면, 핫바나 소시지와 라면 그리고 텁텁해진 입을 달래줄 스포츠음료까지 구매해야 한다.
네 명이라서 편의점 구매 금액이 꽤 크다. 따져보면 식당에서 두 번 밥 사 먹는 금액일 때도 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사 먹었다. 가다가 한번, 오다가 한번, 집 근처에서 집밥 먹기 싫다고 하면 마지막으로 또 가면 금액이 크다.
또, 아이들이 커갈수록 편의점 금액도 커져간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내 것을 안 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고르도록 시간을 주고 먹을 수 있도록 테이블로 안내해 준다. 레인지에 데워 주거나 뜨거운 물을 부어주는 것들을 돕는다. 나는 아이들이 잘 먹게 도와주고 쓰레기도 틈틈이 치워준다. 아이들이 못 먹겠다고 하는 것들을 내가 먹고 마무리한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아이들 자전거 페달이 다시 쌩쌩거리며 돈다.
편의점 가는 이유는 자전거 타고 놀거나 공놀이하면서 배가 고픈 것도 있지만 새로운 것, 편의점의 특이한 기획상품들을 즐기기 위해서이다. 아이들이 새로운 과자, 새로운 음료수, 처음 보는 외국 과자 등등을 다 고르고 나면 계산대로 간다.
" 아빠 거는?"
" 응. 오늘은 새롭다고 느끼는 게 없네."
" 너네가 도전했는데 못 먹겠는 거 먹어줄게. "
" 알겠어. 아빠."
그렇게 나를 빼고 아이들을 사게 해서 또 전자레인지에서 데우고, 섞어주고 하면서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새로운 음식들을 시도하듯이 다른 일들도 그렇게 도전하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 그리고, 그에 따라 느끼는 새로움에 대한 짜릿함도 덤으로 챙겼으면 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편의점 놀이를 즐긴다. 아이들은 여전히 자전거 탄다.
그러던 어느 날,
" 아빠 거 골라요. 골라야 나도 고를 거예요. 아빠 안 먹으면 나 안 먹어요."
" 아빤 맨날 안 먹잖아요."
아이가 강력하게 말한다.
들켰다.
정말로 들킨 느낌이라서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의 무능함을 알아버린 느낌.
매 순간 하고 싶은 걸 가능하면 채워주고 싶은 아빠 맘인데 돈 생각해서 나를 은근히 뺐는데..
" 아냐. 너네가 도전해 놓고 못 먹는 거 아까워서 내 거 안 고르고 그런 거다."
" 아니에요. 골라요. 얼른요."
" 알겠다. 짜파게티 사발면과 새로 나온 음료수"
" 거 봐요. 고를 거면서."
나는 더 이상 들킨 마음을 숨기는 대신 내 취향 따라 오랜만에 골라서 함께 먹었다.
아내도 종종 내게 당부하고 챙긴다.
"여보, 아까 애들하고 자전거 타고 편의점 가서 먹으면서 당신도 먹었어요? 진짜?"
"당신도 음료수 좀 마셔요. 그리고, 뭐 좀 먹어요!!"
"네. 그럴게요." 말만 그렇게 한다.
아내와도 그럴 때가 있다.
" 여보, 퇴근길에 커피 사 갈게요. 뭐 마실래요?"
" 속이 안 좋아서 라테로 부탁해요. 남편."
" 그럼 어른 들 거랑 사 갈게요."
" 그래요. 고마워요."
잠시 후,
" 여보, 커피가 3 잔인데요. 당신 거는요?"
" 아. 난 안 샀어요. 사무실에서 5잔 마셨어요."
" 일부러 안 샀지요? "
" 아뇨."
" 그러지 마요. 남편."
" 알겠어요."
점점 습관이 되어간다. 자꾸 내 것을 뺀다. 일부러 그러면서 나 스스로 잠시 숨을 자유롭게 쉬어 본다.
죄책감과 미안함이 여전히 앞선다.
'얼른 더 벌고 싶다.... 그래서 다 같이 웃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의 모성애
무엇이든지 해주고 비바람 막아주고 싶은 아빠의 부성애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가 되고 보니 매번 가슴에 피멍이 들고 피눈물이 뚝뚝 흐른다.
알면서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알면서 떼쓰는 아이를 어쩌지 못하고 느끼는 미안함.
그래서 매번 먹는 거 살 때는 내 것을 뺀다.
그렇게 해서라도 잠시 죄책감과 미안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이들이 이제 알아버렸으니 안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라는 것이 오히려 수입의 한계에 직면해 간다.
원래 '뭐든지 하고 싶고, 뭐든지 할 수 있다.'가 삶의 자랑이고 자부심이었다. '하나에 대한 전문노하우'와 인생 노련미가 곁들여진 프로가 아니다 보니 가정에 필요한 재정만큼 세상 속에서 대우받지 못하기에 점점 더 구멍 난 곳간인생이다.
그런 곳간을 아내에게 전적으로 맡겨 놓았다. 그래서 아내는 마음의 병을 달고 산다. 채우는 바가지도 손바닥 바가지이다. 인생이 이럴 줄 몰랐기에 당황스러움의 연속이다.
그런 마음에 잠시 숨 돌릴 틈 만든 것이 '내 것 빼고 사기'
내 소원은
내가 내 것도 고르며 함께 웃는 것!
아내와 아이들이 안정감 느낄 정도만 채워진다면 남는 것은 나눔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늘 다짐한다. 욕심이 크면 또 다른 아픔을 만들기 때문이다.
요즘 편의점에 애들하고 가면 나도 뭔가는 산다.
산다기보다는
아이가 1 + 1을 사면 한 개는 내 것이라고 우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