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 그래서 그랬어요. +1

에필로그


아이들 말을 번역한다고 시작했는데 벌써 마지막 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미국의 의사 존 맥스웰이 1960년대에 저서 '성공의 법칙'에서 처음 주장했던 - 습관을 바꾸거나 만들려면 최소 21일간 계속해야 한다는 21일의 법칙'이 생각납니다. 21일을 매일 했던 것은 아니지만 21회 이상 아이들 말을 듣고 곱씹으면서 제대로 된 번역을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번역과정(사실 양육하고 있는 아이들 말을 번역해 가면서 함께 산다는 자체가 우습기는 합니다.)을 통해 조금은 아이들 말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요. 아이들 말뜻의 찐의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주 조금 변화되는 과정 속에서 저의 기존 습관을 점검해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아예 아이들 말을 듣지 않고 일방적이었습니다. 지금은 듣는 귀가 열렸을까요?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습관이 생겼다고 하지만 저의 기분이 좋을 때는 "그랬어? 그랬구나!~"하면서 귀가 커집니다. 들은 말은 마음을 통과하면서 제대로 번역되어 공감 또는 위로를 먼저 합니다.



제가 피곤하거나 집을 들어서면서 아이들이 제멋대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짜증이 날 때, 아내 말에 기분이 상할 때 등등에는 아이들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귀가 닫혀서 아이들 말은 들리지 않고 제 말만 강요합니다. 아직도 경청과 공감이 잘 되는 좋은 아빠가 아닌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조금은 아이들 말을 귀담아들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정도입니다.



오늘은 제가 21회 차 이상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을 '아이들 말 번역서 시즌 1'로 마무리해보려고 합니다. '시즌 2'가 또 이어질 수도 있고요. '시즌 1'을 바탕으로 지낸 시간에 대한 '후일담'이 이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번역한 말들을 요약하다 보니 이 정도 말도 이해하지 못했던 아빠라서 민망합니다.


1. "못해요" - 아빠 같은 사람들은 사실 불편해요. 겁도 나고. 그냥.

"아빠를 생각하면 좋기도 한데 싫기도 해요. 같이 먹고 놀고 좋을 때는 마냥 좋은데 혼내기 시작하면 엄청 무서워요. 덜덜 떨리고 아무 생각도 안 나. 무서워. 그게 아빠야. " 그런 이유로 아빠 같이 행동하고 말하는 어른들을 아이들은 무서워했습니다.


2. 피곤하실까 봐서요= 혼날까 봐서요.

열이 나는 자기를 챙겨주느라 엄마 아빠가 피곤하실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는 진짜 아픈데 밤에 엄살 부린다고 사랑받고 싶어서 뻥쳤다고 혼날까 봐 말을 못 하고 끙끙 앓고 잔 아이가 "왜 밤새 말하지 않았니?"에 대해 답했던 내용입니다.


3. 상관없어요. - 책임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혼나고 싶지 않아요.

두 딸은 뭔가 선택권만 주면 자기 것을 결정하려고 나서는데 큰 아들은 늘 "상관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책임질 일을 만들거나 혼나고 싶지 않아서'라는 말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릴 때부터 실수나 잘못을 하기만 하면 삼 남매를 모아놓고 혼냈습니다. 아들은 언제부터인가 다 같이 혼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길까 봐 두 동생들을 미리 혼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한다고 했던 말도 생각났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찢어진 속마음을 붙잡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 사실 너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은 네가 중학생이고 충분히 결정하고 감당할만한 것들을 과감히 선택하고 즐기라는 의미에서 엄마 아빠가 하고 있는 노력이야. 혹 결정에 따라 틀리거나 잘못된 결과가 나와도 크게 문제가 되거나 혼날 일들은 없어. 엄마 아빠가 감당할만한 일들에 대해서 선택해 보라고 하는 거니까."


4. 괜찮아요- 또 혼날까 봐 그냥 포기할게요.

막내딸이 순수하게 말하고 행동하거나 아기처럼 어리광 피울 때마다 오빠, 언니 수준으로 행동하길 요구받으면서 늘 혼났습니다. 막내딸은 한번 해서 혼나고 나면 다음부터는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좀 컸다고 오빠, 언니 앞에서 혼나는 걸 자존심 상해하기도 합니다. 그런 막내딸이 뭔가 해보도록 권하면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정리하면서 아내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막내는 아직 관심이 필요한 아이예요. 자유롭게 통통 튀도록 놔두고 싶어요. " 그런 아내 말에 "그래도 자기 나이에 맞게는 행동했으면 좋겠어요. 막내라고 눙치지 말고요."라고 말하면서 아직도 아내와 부딪치곤 합니다.


5. 먹어도 돼요? - 해도 돼요? 아빠가 말해줘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언제부터인가 "해도 돼요? (혼날 타이밍 아니죠?)"라는 의미로 뭔가를 시작도 하기 전에 믈어봅니다. 심지어 편의점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골랐는데도 먹기 전에 물어봤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게임이나 놀이를 앞에 놓고도 "해도 돼요? (혼날 타이밍 아니죠?)"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먹을 때, 입을 때, 놀 때, 가야 할 때 등등 부모와 함께 할 때마다 언제부터인가 '꼭' 물어봤습니다. 특히 아빠와 있을 때면 '' 물어봤고요. 그런 말에 '이제 그만 좀 물어라!'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라고 늘 말해주지만 아이들은 늘 '먹어도 돼요?" "해도 돼요?"라면서 늘 묻고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했는데 제 기분 따라 혼내서 생긴 버릇입니다.



6. 맛 좀 보세요 - 우리 것만 사지 말고 제발 아빠 것도 사요~~

아빠를 신경 쓰는 큰아들의 마음이 담긴 말입니다. 예전부터 하는 버릇이지만 아이들과 다니면서 간식을 사면 여전히 제 것은 잘 사지 않습니다. 솔직히 돈이 풍족하지 않아서 아이들것만 삽니다. 아직 돈을 풍족하게 벌지 못 한다는 미안한 마음도 한 몫합니다.


그런 아빠를 눈치챈 큰아들이 늘 아빠가 사나 안 사나 지켜봅니다. 자기 것은 사지 않는 아빠가 간식을 골랐다면 이제는 아빠가 진짜 취향과 양에 맞게 사는지 살핍니다. 아빠 눈치 보며 혼날까 봐 조마조마하던 큰아들이 중학교를 가더니 아빠를 신경 쓰면서 은근히 챙기려는 모습에 감동합니다. 미안하기도 하고요.


7. 죄송해요. - 혼나기 싫어요. 무서운 상황이 싫어요.

죄송하다 말해서 빨리 상황을 끝내고 싶어서였습니다.


죄송해요...라는 것은 정말 '미안하고 죄송하다'라는 의미보다는 아빠에게 크게 혼나거나 혼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게 싫어서 누르는 '버튼'같은 말이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나서 한참 멍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저는 한때 아이들의 작은 실수에도 넘기지 않고 혼냈습니다. 그러면 자동으로 '죄송해요.'라고 하면서 아이들은 아빠에게 즉시 말했습니다.


아빠에게 혼나고 싶지 않고, 그런 상황이 싫어서 '죄송해요.'라고 말했더니 짧게 혼나고 잔소리 길게 듣지 않아서 그렇게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는 무조건 '죄송해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8. 오빠 거! - 한 개 들어있는 젤리봉지를 버리지 않고 식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까먹고 쓰레기를 방치한 것이 아닙니다. 집을 비운 오빠에게 새로운 젤리를 맛보게 해주고 싶은 막내딸의 사랑이었습니다.

'오빠 거는 무슨' '니 거잖아!!' '버려!!'라면서 핀잔까지 줬던 그때의 저는 정말 몹쓸 모습이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짧은 단어인데도 번역을 해줘야 이해가 되었으니까요. '한국산 아빠'이지만 '한국말'을 이해 못 하는 아빠입니다. '마음'은 더 이해 못 하는 날이 많습니다. 막내딸의 사랑의 마음을 이해 못 한 부족한 아빠임을 또 확인한 날이었습니다.


9. 좋아요 - 아빠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맞출게요.

뭐든지 아빠가 제안하면 "좋아요." 해주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 대답에 대해

아내와 대화하고 나서 '혹시'가 '역시'로 바뀌었습니다.


정말 좋아서가 아니라, 아빠 제안을 거부했다가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힘든 상황이 될까 봐 일단 "좋아요."해 준 것입니다. 작고 어린아이들이지만 아빠보다 더 넓은 바다마음을 가졌습니다.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아빠가 제안한 대로 동조함으로써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투명한 수조에 페인트를 넣고 마구 흔들어서 구정물로 만드는 손처럼 아이들의 감정을 마구 흔드는 아빠라는 생각이 들어서 반성에 반성을 했던 날입니다.


10. 사랑해요.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 사랑해요. 잘 자요. 저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아이들을 재울 때 아이들이 하는 말입니다. 들을 때마다 영혼 없는 인사라면서 짜증을 냈습니다. 더불어서 아이들 말을 번역할 때마다 당혹스럽고 창피했습니다. 아이들은 순수하게 굿 나이트 인사하는데 듣는 아빠는 세상 때가 잔뜩 묻은 귀로 아이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아빠의 감정에 이끌려서 그때그때 다르게 듣고 맘대로 행동했던 것을 반성했습니다.


반성을 하고 나서는 아들방에 들어가서 안아주면서 "사랑해. 오늘 진짜 고맙다." 해줬고요. 딸 둘이 자는 방에 가서는 아이들 쪼꼬만 발을 하나씩 만져주면서 "사랑해. 고맙다. 나도 진짜 사랑해."라고 했습니다. 잠이 들었는데도 내 마음을 전한다면서 갑자기 안아줘서 아이들 잠을 깨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춘기가 시작된 둘째 딸을 배려하려고 아이의 발을 만져주며 '이거 악수다!'라고 해서인지 놀라지는 않습니다.


10. 어떤 거 할까요? - 책임지는 게 두려워요. 잘 선택하도록 격려해 주세요. 잘못 선택해서 실수하더라도 지지해 주세요. 아빠~

아이들에게 '네가 원하는 대로 선택해 봐!'라는 것은 아무런 설명 없이 '벼랑 끝에 세워두고 선택해 봐! 선택한 거에 대해 네가 책임지고!'라는 말로 들린 것입니다.


또, 선택을 머뭇거릴 때마다 '빨리 골라. 시간 없어!'라면서 독촉하거나 어떤 것을 고를지에 대해서 되물을 때마다 버럭 화를 내면서 "하라고 해도 못하냐?"라며 윽박지르던 아빠가 무서워서 싫었을 것입니다. 아이에게 선택하라고 한 것은 별거 아닙니다. '먹고 싶은 과자!' ' 네가 먹고 싶은 햄버거' '새로운 과자 사 볼지 말지' '오늘 놀러 나갈까 말까' '원하는 티셔츠 한 장씩 골라봐!'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친절한 설명 없는 '선택의 자유'를 줘서 힘들게 했던 것입니다.


"선택하면 책임져야 하잖아요."


늘 선택순간마다 주저하길래 물었더니 큰아들이 속마음을 말해줬습니다. 그런 아들에게 '선택할 때는 자유하라고! 책임은 부모의 몫!'이라고 말해줬지만 여태까지 선택순간의 공포에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애초에 '선택의 자유'를 주면서 '책임질 것들은 없으니 맘껏 고르라!'라며 친절한 가이드가 없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어른 입장에서는 별거 아닌 선택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이번에도 책임져야 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공포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11. 아빠 아아아!!! - 아빠! 제 얘기를 듣기만 해 주세요. 뭔가 방법을 제시하려고 하지 말고요. 들어만 주세요!!

아이가 아빠를 설득하면서 "이렇게 해주세요. 아빠!"라고 하는 건 '선물'밖에 없습니다. 많은 상황 속에서 느끼는 속상함과 힘듦에 대해 아빠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노력을 조금 하고 있다 보니 이제 아빠가 들어주는 것 같아서 한참 동안 자기 마음을 말하면서 풀고 있는데 아빠가 '~라테는~"하면서 한참을 말하는 실수를 또 했을 때였습니다. "아빠 아아아 아!!!"라면서 '대화 그만!!'이라고 한 것입니다. 들어달라고 말했는데 아빠가 더 많이 말해서 말할 수가 없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 뜻은 아이가 기분 좋았을 때(젤리를 사줬더니) 말해줘서 간신히 알았습니다. 아직도 한참 멀기만 한 아빠입니다.


12. 응, 아니 - 아빠랑 더 친근해지고 싶어요. 아빠랑 반말하는 친구들은 아빠랑 친하대요. 나도 그러고 싶어요...

둘째 딸이 언제부터인지 반말로 대답하고 반말로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상시 그런 아이가 아니어서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내가 뭘 듣고 있는 거지?'라면서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런 날이 계속 이어지길래 아이와 동네를 걸으며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날 물었습니다.


"너 왜 반말하냐? 안 그러던 애가!"

"다른 애들은 아빠랑 그런데. 그게 좋아 보여서."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대화를 하면서 동네를 걷다 보니 아이스크림을 거의 다 먹었습니다. 벌써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에 거의 다 왔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와서인지 아이들과 대화할 때마다 아이들 대답이 귀에 속속 들어왔습니다. 알고 보니 막내딸도 그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딸이 해준 말과 평상시 제가 느낀 것을 아내와 대화해 봤습니다.


"아이들이 아빠랑 친근하고 싶어서 반말로 대답하고 그런대요. 친구들도 다 그런대요. 자기도 그러고 싶대요."


"남편! 뭐 어때요? 나는 괜찮아요. 나도 어릴 때 한 번도 아빠에게 반말해보지 못해서 우리 애들은 반말도 하면서 지내도록 해주고 싶어요. 나는 그래서 딸들이 반말하는 거 하나도 거슬리지 않아요."


"............................................."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그렇습니다. 한 번도 엄마나 아빠에게 반말하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부산출신이고 아들 둘만 있다 보니 대화가 무 자르듯이 무뚝뚝~했습니다. 아내도 대가족 내에서 자라다 보니 반말이나 소위 뗑깡은 부려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익숙지 않아서 허용 못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고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바라보니까 아이들 대답이 귀엽기도 했습니다.


13."엄마는 알면서 져 주시더라고요." - 아빠! 저 좀 이해해 주세요. 요즘 너무 힘들어요 저한테 가끔 틈을 주세요. 엄마처럼요. 엄마는 알면서 그래주시니까 숨 쉴 틈이 있어요. 아빠! 부탁이에요. 저도 노력할게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예전 같으면 아이들을 이해하며 은근히 받아주는 아내교육철학에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잘 안다고, 뭘 잘한다고....'라면서 전공과 육아 현실이 다르다며 반발심을 가졌습니다. 요즘에 아이들 말을 되새기면서 지내다 보니 아이들 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사랑하고 받아주면서 아이들을 포용하는 아내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귀가 열리기 시작했고 제 마음밭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용기 내서 속마음을 꺼내기 시작했고 그 말들을 깊이 생각해 보면서 행동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습니다.


아이들 말 번역은 나비효과가 있습니다.


가정회복이 주제인 제 글에 소규모 프로젝트로 아이들 말 번역을 진행하면서 회차를 거듭할수록 제 마음밭이 달라져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쏙쏙 들어오고요. 그 말의 깊은 속뜻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요. 아이들도 점점 용기 내서 "아빠!!"라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늘 아이들을 혼내기만 하는 저를 보면서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는 아내도 조금씩 가능성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진짜 '의지 약한 아들'로 생각하고 뭔가를 해낼 때마다 불만스럽게 바라본 아들이었는데 어느새 키가 자라듯이 마음크기도 자라고 있었습니다. 알면서 모른척해주기도 하고요. 아빠를 생각해서 말 안 하고 감당해주기도 했고요. 아빠와 갈등상황을 겪으면서도 엄마가 '모른척하면서 받아주는'것들로 위안을 삼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어느새 용기를 내고 혼낸 아빠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들의 그런 모습에 제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아들은 몸과 마음이 정말 커가고 있습니다. 기특하고 대견합니다.


14. 안아 주세요. - 아빠가 안아주면 마음이 편해져요. 용서받는 것도 같고요. 사랑해 주세요.

맨날 '싸우지 좀 마라!' '서로 비난하지 마라'라면서 아내의 말에도 여전히 싸우고 서로를 헐뜯는 아이들에게 따끔한 매를 들이대듯이 버럭 화를 내며 끝냅니다. '한 번만 더 서로 싸우면 혼내 줄 테야!'라는 으름장으로 상황을 무섭게 종료시키는 아빠에게 '안아주세요.'라는 말은 실제로 '알겠어요. 아빠. 이제 그만 용서해 주세요. 사랑해 주세요.'라는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진짜 어이없는 투정으로 두 딸들 앞에서 호기를 부린 큰아들이 너무 밉고 속상해서 대화를 단절한 날이 있었습니다. 잘 때 '안아 주세요.' 하길래 '땀이 많이 난 날이라서 싫다.'라고 했는데 '괜찮아요. 안아 주세요. 제발요.' 하길래 못 이기는 척하고 안아 줬습니다.


'고마워요. 아빠'라면서 뺨에 가볍게 뽀뽀해 주고 안아주는데 괜스레 마음이 뭉클하면서 미안하고 짠했습니다. 아직은 몸도 어리고 마음도 어린 아기 같은 아들이지만 때로는 저보다 더 깊고 넓은 마음으로 아빠에게 사랑을 나누고 살자고 제안하곤 합니다.



안아 주세요.



그저 안아주고 이해해 주고 사랑해 달라는 아이들의 한마디 외침을 '제때 이해 못 하고 받아주지 못한 아빠'로써 반성 많이 했습니다.


15. 내 용돈 전부로 플스를 샀어요. - 아빠랑 게임하고 싶어서 샀어요. 함께 게임하고 놀아요.

아이들이 커갈수록 눈높이에 맞춰서 함께 지낸다는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생일 때는 거실에서 고무공을 발로 차주기만 해도 깔깔거리더니 이제는 잔디가 깔린 곳에서 축구공으로 제대로 놀아줘야 좋아합니다. 큰아들은 특히 잔디밭에서 축구공 차주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좋아하더니 이제는 아예 축구경기에 나가서 볼 차는 것을 즐깁니다.


그런 아들이 이제는 함께 온라인 축구게임을 하면서 신나게 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진짜로 1년을 용돈 모아서 플스를 산 것입니다. 딸들은 잔디밭에서 뛰노는 것이 이제 별로라고 합니다. 쇼핑몰이나 다이소를 가서 사던 안 서던 돌아다니면서 아이쇼핑하는 것을 엄청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가는 아이들의 눈높이를 잊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큰아들에게 오랜만에 감동한 것은 "여전히 함께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16. 아빠. 아빠도 그랬어요.- 들으셨죠? 아빠! 그렇게 말하실 때마다 우리도 마음이 힘들었어요.

책을 놓고 아들에게 쉴 새 없이 말하고 있는 아빠를 카페에서 봤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말하고 아내는 그저 옆에 앉아 있고요. 아들은 듣고만 있었습니다. 아빠는 열정이 가득해서 끝까지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아들에게 물었더니 "아빠. 아빠도 그랬어요."라고 대답해 주는 것입니다.


아내가 제게 그런 말을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아이들 말을 듣기라도 한다니 다행이네요. 제발 애들만 좀 들어줘요."


강력하게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듣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늘 의욕이 충만해서 말하는 자만 되고 있습니다. 아들과 대화한 내용을 통해 많이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7. 도와 드릴까요? - 아빠 옆에 있고 싶어서요.

아들이 제게 한 말은 몇 마디 아닙니다. 사춘기 아들이 논술시험처럼 구구절절하게 주제를 가지고 말할 리가 없고요. 그렇지만 아들이 한 말은 저를 멍하게 했습니다. 가족 내의 수많은 문제들을 어릴 때부터 보고 들으면서 지내다 보니 뭔가 기가 죽어 보이고 늘 쑥스러워하고 선뜻 용기 내지 못했습니다. 기 살려주겠다고 두 동생들 앞에서 '오빠다!!'라고 했더니 언제부터인가 두 동생들 앞에서 '제왕'처럼 군림하길래 은근 머리가 아픈 요즘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제게 한 말은 나름대로 감동이었습니다.


화분정리하고 있는데 뭐라도 돕겠다면서 옆에 와서 앉아 있는 것입니다. 필요 없으니 가서 놀아라라고 했지만 돕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속마음 깊은 말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여전히! 아빠와 함께 하고 싶다는 것 자체가 최고였습니다.


18. 아빠. 하고 싶은 대로요.- 아빠 뜻이랑 다르게 선택해서 불편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아이들을 위해 고심해서 제안하는 뭘 먹자고! 어딜 가자고! 무언가를 사자고! 할 때는 가능한 재정 내에서 예산, 시간, 일정을 감안한 것이다 보니 어쩌면 '의도가 내포된 질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풍족하고 남아도는 재정이 아닌데 다른 애들처럼 살고 싶은 우리 아이들 마음을 헤아려주려고 애쓰다 보니 소위 말하는 '안 하니만 못한 셈'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토끼귀까지 붙여준 아이들 머리만 한 토끼 모양 솜사탕을 먹고 싶은 아이에게 과자봉지에 포장된 손바닥만 한 납작한 편의점 솜사탕을 사주는 식이었습니다. 형편을 모르는 아이들은 아빠의 현실이 반영된 제안은 천진난만하게 반대하고 자신들의 꿈같은 소원을 이루어달라는 대답을 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황당한 대답에 늘 화를 버럭 내곤 했던 제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이들이 몇 번이나 계획과 다른 선 넘는 선택을 하면 저는 더 심하게 화를 내고 '그럴 거면 하지 말자!!!'라면서 모든 계획을 취소해 버렸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수습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빠가 낸 아이디어를 따라보자"라면서 아이들을 달레고 나면 모든 상황이 어색하지만 다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자꾸 생기니까 어느샌가 아예 "아빠 제안대로!! "라면서 무조건 계획대로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대답이 늘 비슷한 걸 알고 나니 정말 슬펐습니다.


제 필명이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인 이유가 이것이었습니다. 아내의 마음을 모르고 엉뚱한 일을 하면서 애쓰는 모습이 바람도 없는데 연을 올리겠다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아이 같아서인데요. 마찬가지로 아이들 마음을 모르고 아이들을 위한 계획을 늘 세웠던 저의 부족한 모습을 또 경험한 날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나서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가정 형편에 맞춰서 아이들을 위한 뭔가를 계획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면 그것이 가능한 상황인지 아닌지를 어느 정도 말해주고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이제 아이들이 편안해하면서 자기 의견도 다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와 대화하면서 아빠 의견에 그냥 맞추고 불편함을 피하려는 일들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그런 상황으로 바뀌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내의 마음에 조금의 평안이 더 자리 잡았습니다.



19. 엄마. 아빠한테 말하지 마요. - 아빠가 걱정해서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쉬라고 하니까. 제발 말하지 말아 줘요.

아이가 아프면 마음이 아파서 그저 편히 쉬라고 하면서 먹고 싶은 거, 휴대폰 하고 싶은 거, 게임하고픈 거, 푹 자는 거 등등 뭐든지 하라고 하면서 바깥 활동은 제약합니다. '그러다가 더 아프겠다.'라고요.


아이들은 아프더라도 자기가 견딜만하면 바깥에 나가고 싶으며 아프고 힘들면 자기가 알아서 중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 마음을 모르고 아프면 푹 쉬라고 아빠는 '일단정지모드'만 요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이제야 알아 들었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내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더불어서 그렇게 말뜻을 모르고 지내는 남편과 소통의 불편함에 대해 참고 지내줘서 고맙다고도 했습니다.


20. 아빠는 내 자기야. - 나 아빠한테 사랑받고 있는 것 같아서 참 좋다.

이런 뜻으로 막내딸이 한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조금은 막내딸의 속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다행입니다.


제가 감성적이면서 섬세하다는 것은 완벽한 착각이었습니다. 살면서 내가 싫은 것에 대한 예민함을 감성적인 것으로 착각했고요. 현실 속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을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수성 있다고 착각했다 싶었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가져야 할 진짜 섬세함은 거의 제로 수준이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고 엉뚱한 배려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늘 사랑한다면서 아빠에게 '사랑하자!' '사랑해 줘요!'라면서 말하고 엉겨 붙는 막내딸의 존재자체가 감사하고 고마운 날이었습니다.


21. "괜찮아요. 아빠는...." - 아빠도 저렇게 쉴 새 없이 말하세요. 조금 줄여주세요. 제가 말씀 안 드려도 이미 아시는 거 같아서 아빠 기분 좋도록 갈게 말하지는 않을게요.

과하게 행동하거나 훈계도 30분 이상하고요. 좋은 말도 길어지면 힘든데 마음이 앞서서 잔소리를 늘 길게 말하니까 애들이 한숨을 쉬길래 버럭 화내면서 물었습니다. 그에 따른 대답이었습니다.


여차하면 버락 화내는 아빠가 물어본다고 사실대로 말하지 못해서 그렇게라도 대답해 준 아이들이 고마웠습니다. 아직 아이인 아이들을 제가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저를 배려한 것입니다. 제 마음을요.


22. 아니요.- 예전보다는 나은데 아직은 무서워요.

은근 제가 조금 바뀐 거 같아서 아이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해준 대답이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예전에 해 준 말이 함께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속마음을 함께 알아차린 것입니다. "이제는 무섭게 혼나지 않아서 좋긴 한데.... 갑자기 아빠가 화를 내며 예전처럼 혼낼까 봐 불안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섭지는 않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불안감'이 아직은 남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속뜻을 헤아리고 나서 후회했습니다. 처음에는 '잘하고 있다고 아이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힘이 빠졌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아이들 마음속에는 아빠가 엄하고 무섭게 혼내고 혼낸 것에 대한 상처가 너무 크다 보니 상처가 아물거나 마음이 회복되려면 몇 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걸 또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애초에 그렇게 물어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23. 저는 아빠 닮았나 봐요.- 아빠의 취미실력을 인정해요. 아빠 잘해요. 아빠를 사랑하고요.

덧붙여서 큰아들이 엄마에게 말하는데 "엄마는 공부를 잘하고 아빠는 사진을 잘 찍는다면서 창의력이 뛰어나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야! 엄마만 공부 잘했는 줄 아냐? 나도 잘했다!!"


그렇게 말하며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창의력'있다는 말만으로도 또 고마웠습니다. 저를 높여주고 사랑해 주는 아들의 마음 깊은 말에 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큰아들이 저를 닮았겠습니까? 아내와 저의 둘 다 닮으며 장단점을 가지고 태어났겠지요. 그렇지만 큰아들은 아빠 닮아서 자기도 창의적이며 독특한 사진을 잘 찍는다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큰아들과 오늘도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키가 작고 나이가 어릴 뿐, 마음그릇은 저보다 깨끗하고 넓은 것을 오늘도 인정했습니다.


24. 여기가 아파요! - 저를 좀 봐주세요. 사랑해 주세요.

그런 마음으로 제게 말을 거는 것입니다. 잠깐 안아준 막내딸을 놓아주면서 물었습니다.


"아프겠네. 어디가 아픈데?"

"요기."


말한 것은 손가락 손톱 위 살이 조금 찍혀서 이미 딱지가 앉아 있었습니다. 다친 지 며칠 된 것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이제 말한 것도 맘이 아프고요. 안아 줬더니 안 아픈 사람처럼 제 품에 안겨 있는 것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25. 빠빠이! - 힘들죠.. 아빠? 잘 갔다가 오세요. 저도 할 일 잘하고 있을게요

잠시 혼자서 방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돼 샘김질 하듯 둘째 딸 말을 생각해 보니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갱년기라서가 아니라 이제야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생겨서인 것 같습니다. 맨날 살찐다고 걱정하는데 계속 과자를 먹고 운동은 안 하는 초등 5학년 둘째 딸을 맨날 혼낸 것을 반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계속 사랑해 주고 애틋해하는 마음이 너무 예뻤습니다.


그렇게 예쁜 마음으로 저와 살아주는 둘째 딸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더 온유하고 마음 따뜻한 아빠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식성도 비슷하고 은근 생김새도 비슷한데 너무 의욕적이라며 핀잔을 많이 준 딸이 늘 제게 감동도 많이 주고 살갑게 옆에 있어줘서 고마운 날이었습니다.


26.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사랑해요. 내일 봐요!! - 아빠! 사랑해요. 저도 사랑해 주세요. 아까 미안해요. 안 싸울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저도 잘 잘게요! 내일 봐요.

아이들은 상황이 끝나면 바로 잊어버리고 다음 행동을 하는데 어른인 제가 못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가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왜 그리 아이들을 이해 못 해요. 아이들은 금방 잊어요. 당신도 좀 그렇게 해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우리 가정이 평화로울 텐데...."


그런 일이 백번 이상 반복되면서 막내딸이 하는 '굿 나이트 삼종세트'-'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사랑해요. 내일 봐요. '를 들을 때면 제 감정을 다스리면서 "그래~"라고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옵니다. 그렇게 아이의 순수한 '굿 나이트'를 들으면서 '어른'이 되어 갑니다.


성숙한 어른이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늘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제야 성숙'해지는 저를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다행입니다. 천만다행!


28. 안 드셔! - 안 드셔! 우리 위해 안 드시는 거라니깐!!

아이들과 지내면서 아이들 말을 번역하다 보니 제가 아이들 말의 진짜 의미를 알아가는 시간처럼 아이들도 제가 꽁꽁 숨기고 있는 제 속마음을 서서히 알아채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이 잘 커간다는 생각에 고맙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저의 부족한 것이 하나둘 더 드러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이렇게 그동안 아이들 말 번역해 본 것을 정리해 봤습니다. 마치 저에게 필요한 '삼 남매 말 번역서 시즌1'입니다.



아이들 말 번역 프로젝트의 전과 후


진짜로 아이들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자기 말을 들으려고 하는 아빠를 알고 나서 1:1로 있을 때 자기감정을 말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아들과 대화, 딸들과 대화법을 조금 바꿔보려고 합니다.


아이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아내는 당부의 한마디를 했습니다.

"잘하고 있어요."

"아이가 힘들어하거나 특별한 상황 때 말고요.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의 마음을 좀 더 공감해 주세요. "


그렇게 삼 남매 아빠는 아이들과 5cm 더 가까워졌습니다. 45cm 거리가 친밀함을 느끼는 거리라고 했던가요? 함께 부대끼며 놀 때 빼고는 1m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두고 지낸 것 같은 거리감이 있었는데 5cm 정도 좁힌 느낌입니다. 아이들이 아기일 때는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30cm도 채 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엄하고 권위적인 아빠가 되어가면서 점점 거리가 멀어져서 1m는 된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정리하면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다른 분들은 정말 어른답게 아빠로서 잘 지내시는데 '저는 너무도 부족한 어른이었다는 생각에 창피합니다.' 그렇지만 더 노력하면서 발행글을 이어가겠습니다.


이렇게 이어오도록 2024년도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여전히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unsplash juliane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