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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그래서 그랬어요! +2

안 드셔!

아이들과 비가 오는 날에는 잔디밭에서 철벙거리면서 뛰어다니고 워터슬라이드처럼 겨울썰매를 타고 놉니다. 눈이 오는 날에는 땅바닥을 뒹굴면서 눈을 이불처럼 즐기고 놉니다. 그렇게 놀다 보면 여름에는 목이 마르고 더위에 혀가 쑥 나올 정도로 힘들어합니다. 여름에는 신나게 놀 때는 모르지만 놀이가 끝나서 차에 타고나면 덜덜덜 떨면서 추워지고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칩니다. 아직은 그러고 놉니다.



놀고 나면 집을 가야 해서 갈 길을 재촉했지만 실컷 놀고 허전해하는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원하는 간식을 먹여주려고 편의점으로 들어갑니다. 작년에 언급했듯이 아이들은 편의점 가는 것을 세계여행 가는 것처럼 좋아합니다. 새로운 간식을 즐길 수 있다보니 배고픔과 목마름이 다양한 간식들을 보면서 싹 사라집니다. 맘껏 고르라고 하면서 여전히 저는 잘 고르지 않습니다. 아니면 아이들 보고 다녀오라 하고 차에서 기다립니다.


"엄마, 아빠는 뭐 먹어요? 아이스크림 뭐 사 와요?"

"아빠는 내 거랑 같은 거 드실 껄!!"

"엄마는 나랑 같은 거 드실걸!!"


"안 드셔!"



막내딸이 그렇게 말하면서 얼른 편의점으로 가자고 재촉을 합니다.


"아니야! 바보야! 엄마 아빠도 드실 거야!!"

"안 먹어! 얼른 다녀와!"


제가 딱 잘라 말하고 나서야 아이들은 편의점으로 뛰어갑니다. 아내는 아이들이 먹는 아이스크림을 진짜 안 먹습니다. 너무 달기도 하고 원래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진짜로 아이들을 위해서 안 먹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스크림이 아무리 할인을 해도 가격이 비싸고요. 돈도 잘 못 버는데 살이 쪄서 몸까지 둔해져 가는 것이 너무 속상하기도 하고요. 제가 같이 먹으면 지출이 너무 커져서요.



그런 것들을 눈치를 챈 큰아들이 언젠가 말하더니 이제는 막내딸도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아빠가 먹는 줄 알고 빨리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제 속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조금응 창피했습니다.


아이들 한마디 -
안 드셔! - 안 드셔! 우리 위해 안 드시는 거라니깐!!


덩달아 느낀 한마디-
고맙다! 아빠의 속마음을 알아채서 창피하지만 부모가 현재 상황 속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을 알아줘서 고맙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아이들 말을 번역하다 보니 제가 아이들 말의 진짜 의미를 알아가는 시간처럼 아이들도 제가 꽁꽁 숨기고 있는 제 속마음을 서서히 알아채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이 잘 커간다는 생각에 고맙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저의 부족한 것이 하나둘 더 드러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아이들 말을 번역하면서 늘 놀랍니다.

조그만 아이들의 속마음을 이제야 알아가는 것이 아쉽지만, 신경을 써보니까 느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피할 곳이 없어지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저의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는 것을 보면서 '숨길 수도 없고, 거짓말도 이제 할 수 없구나. '라고 느끼면서 코너에 몰린 느낌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솔직하게 대화하고 지내려고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코너에 몰릴 일이 없고 오히려 함께 제대로 살게 될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지내는 매일이 감사합니다.

아이들과 하는 말을 통해 제가 고쳐져가고 있고요. 아이들이 저를 보고 무심코 따라 하는 행동과 말을 보면서 '깜짝 놀라지만, 제가 고쳐야 한다는 잊지 않게'되어 감사입니다. 아이들을 제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지내면서 저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여전히 부족한 제가 아이들 속마음을 하나라도 알아보려고 시작한 프로젝트가 벌써 마무리도 가고 있습니다. 제가 번역하는 아이들말, 그 속마음에 얽힌 저에 대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Vitolda Kl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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