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히말라야 지진에서 살아남기 (5)
인생이 다 그렇지 뭐
루클라 마을에서 일주일 동안 대기를 하다 드디어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네팔 전역에는 만명 이상이 죽었고, 전염병이 돌고 있다고 했다. 가는 내내 우리는 긴장에 휩싸였고, 공항에 도착해 각자 일정대로 흩어졌다. 줌마탐험대 팀은 그들의 숙소로, 한국인 하이커 2명도 각자의 숙소로 갔다. 나는 EBC로 떠나기 전 조그마한 가방에 아이패드를 비롯한 잡동사니를 넣어놓고 머물던 숙소에다 맡긴 후 EBC로 출발을 했었다. 그 가방을 다시 찾으러 가야 했기에 일행들과 떨어지게 되었다. 숙소는 무사할지 궁금했다. 공항에서 오는 길, 카트만두 건물들은 처참했다. 많은 건물들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있기도 했고, 그나마 괜찮았던 건물도 긴 금이 가 있었다. 공사장 같은 현장에 주저앉아 넋을 잃고 허공을 쳐다보던 사람들이 눈에 박혔다. 부모를 잃은건지, 잠시 부모가 어디 가있던건지, 먼지를 뒤집어 쓴 꼬마 아이들끼리 밖으로 나와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도, 숙소 주변의 건물들도 피해가 심각했다. 완전히 무너진 건 아니었지만 곳곳에 금이 가 있었고 부서진 곳도 많이 있었다. 다만 폭삭 주저앉은 느낌은 아니었다. 숙소에 들어가 주인을 찾았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인데도 불구하고, 폐허처럼 변해버린 숙소가 낯설었다. 나는 우선 가방을 찾기 위해 숙소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가방은 옥상의 다락방 안에 잘 숨겨져 있었다. 자물쇠는 열려 있었고, 다른 여행자들의 가방 몇개와 내 가방이 같이 놓여져 있었다. 가방 안의 물건들을 확인 했는데 없어진 건 없었다. 다행이었다. 가방을 가지고 내려와 잘 곳을 찾아야 했다. 인터넷으로 주변 숙소를 검색해본다. 멀끔해보이는 숙소는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렇다고 너무 싼 곳을 찾자니 또 불안했다. 나는 그냥, 아무도 없으니 이곳에 묵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을 돌아다니며 제일 넓고, 깨끗하고, 안전할 것 같은 방을 찾았다. 더블베드에 깨끗하게 새하얀 칠이 되어진 방이다. 여행할 때는 이렇게 좋아보이는 방에선 묵을 수 없다. 그 돈을 모으면 한 나라라도 더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은 완벽했지만 한가지 결점이 있었다. 방이 사각형이라면 세 면에 주욱- 금이 가 있었다. 살짝 무서웠지만 그리 개의치 않았다. 나는 이런 상황에 마주하면 항상 생각하는 게 있는데,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산다.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된다. 뭐 이런 마음가짐이다.
이때도 역시 이 마음을 가지니 편안했다. 옷을 훌러덩 벗고 커다란 침대에 누웠다. 노래를 틀고, 음악을 느낀다. 조금 쉬다가 일어나 리듬을 타며 샤워실로 간다. 화장실도 넓고, 욕조도 크다. 따듯한 물이 나오기를 바라며 물을 튼다. 잠시 기다리니 따듯한 물이 나온다. 유레카! 기분이 좋아진다. 다시 리듬을 탄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샤워를 한다. 샴푸를 바르고, 몸을 닦고, 양치를 한다. 폼클렌징을 손에 듬뿍 뿌려 얼굴을 박박 문지른다. 온 몸을 카트만두의 먼지 구덩이로부터 구원해낸다. 샤워가 끝난 후 가지런히 개여져 있던 타월로 물기를 닦는다. 물기를 다 닦고 다시 침대로 점프한다. 푹신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들고 싶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땅이 또 흔들린다.
내 모든 근육이 다시 쪼그라든다. 나는 들고있던 수건 한장만 가지고 쏜살같이 1층으로 내려가 밖으로 튀어 나간다. 밖으로 나가면서 내 중요 부분을 수건으로 가린다. 나는 숙소 앞에 서서 행여나 옆 건물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우리 숙소가 무너지지는 않을까 위, 밑, 양 옆, 앞, 뒤를 재빠르게 둘러본다. 땅이 얼마나 더 흔들릴지 긴장된 더듬이로 주파수를 찾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카투만두의 선선한 바람은 내 몸과 머리카락에 남은 물기를 데려가기 시작한다. 바람은 서늘하고 나는 온 몸을 발가벗은 채 밖에 서있다. 한 곳만 수건 한장으로 가린채로. 숙소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이 웃으며 소리친다. 여진이야! 여진!, 너무 쫄지말게 친구! 얼른 가서 옷입고! 하하하하. 나는 부끄러워진다. 젠장. 여진이야? 망할놈의 여진. 언제까지 여진이 계속 되는거야?
나는 숙소로 다시 들어갔고, 옷을 입었다. 그 숙소에선 불안해서 머물지 않기로 한다. 혼자인데다가, 여진이 계속 나면, 계속 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루클라에서 만났던 트레커에게 연락을 해 그쪽으로 이동을 했다. 그 숙소에서 3일을 더 묵었고, 안전하게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한국 공항에 도착하니 줌마탐험대 대장님이 나를 부른다. 지금 밖에 나가면 기자들이 쫙 깔려있어. 너가 제일 먼저 앞장서서 나갈거야. 옷 깔끔하게 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하고, 신발도 슬리퍼 말고 운동화 없니? 좀 갈아신어. 나는 네팔에 갈 때 쪼리를 신고 갔다. '세계여행자는 쪼리지' 라는 히피스러운 생각이 뇌리에 박혀 나름 철저히 수행중이었다. 맨발로 비행기도 타고 세계여행하는 친구도 있는데 뭐, 라는 생각에 당당했다. 그러나 대장님은 기자들이 와 있으니 맨 앞에 선 내가 멀끔해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결국 사무장님을 불러 나와 신발을 바꿔 신게 했다. 나는 사무장님의 운동화를, 사무장님은 초록색 쪼리를 신게 되었다. (...) 죄송했다. 팀의 위원장은 자신이 위원장인 만큼 맨 앞에 서서 당당히 인터뷰를 하고 싶어했지만, 뉴스에 나온 사람이 나인지라 내가 앞장서야 한다고 대장님은 말하셨다.
그리하여, 나를 필두로 뒤에는 줌마탐험대의 리더쉽과 팀원들이 줄을 서게 되었다. 이윽고 공항 게이트 문이 열리고 밖으로 고개를 빼끔 디밀며 발을 내딛는 순간, 수많은 플래시 세례가 터지기 시작했다. 나로썬 처음 받아보는 플래시 세례에 당황을 했고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했다. 플래시의 빛은 내가 서있던 공간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처럼 바꿔주었다. 나는 잠시나마 우주대스타가 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느낌도 잠시, 대장님은 내게 뭐하냐며 등짝스매싱을 날리셨고, 앞으로 계속 가라고 말하셨다. 나는 걸음을 이어 나갔다. 기자들이 내게 몰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어쩌다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게 된 건가요? 혼자 가신 건가요? 지진이 났을 때 어떠셨나요? 혼자 계셨나요? 등등. 연예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아- 연예인들은 이런 느낌으로 인생을 사는구나. 좋구나. 부러워라. 나 뿐만 아니라 대장님을 비롯한 팀원분들도 인터뷰를 하시고, 꽃다발을 받는다. 나도 내가 왜 꽃다발을 받는진 모르겠지만, 받으니 기분은 좋다. 경기도지사가 보냈다고 한다.
여러차례 인터뷰를 하고, 마중나온 가족을 껴안는다. 피말리는 시간을 보냈다던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드린다. 힘든 시간 동안 나를 아들처럼 챙겨주셨던 줌마탐험대의 어머니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대장님과 사무장님, 위원장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언젠가 연이 닿는다면, 어디선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인사를 하고 다시 각자의 길을 떠났다.
히말라야의 지진은 내게 겸손을 알려줬다. 아무리 날고 기는 인생이라고 해봐야 자연 앞에서는 한낱 연약한 인간일 뿐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자연 앞에 결코 오만해질 수 없다고. 어떤 자연 속으로 들어가든, 이 사실은 변함없다.
히말라야의 새벽 공기가 다시 그리워지는 날이다. 언젠가 또 떠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