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6년의 시간을 부정당하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by 조르바


그래, 알겠어. 내가 잘못한 거 알겠어. 그러나..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너 잘못했어. 누가 거짓말하래? 한 번만 봐줄 테니 다음부턴 절대 그러지 마!라고 말하길 기대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내심 기대란 걸 했었다. 혹여나 그렇게 말해줄까 봐. 한국인 통역관이 내 처량한 눈빛을 보고, 내 편에 서서 통역을 잘해줄까 봐. 그러나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나는 공항 구치소에 갇히게 되었다.


구치소 안에는 콜롬비아 할아버지와 미국 아저씨가 있었다. 그들을 힐끗 바라보고는 내게 지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1인실에, 나름 멀끔했다. 그러곤 1인용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떨어진다. 한 방울, 두 방울. 천장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눈물은 계속해서 흘렀다. 내 뒤통수와 베개가 눈물로 젖었다. 차마 소리 내어 울 수는 없어, 끅끅대며 울었다. 지난 6년간의 대학생활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예과 1학년 시절 배운 해부학부터 시작해 대체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를 식물학과 동물학 같은 교양과목들. 학년이 올라가 본과생으로써 배우는 병리학과 생화학 같은 과목들. 점점 치과에 관련된 수업을 듣고, 기술을 배우고, 환자들을 치료하며 느끼는 뿌듯함, 부족함, 내 한계, 역량, 쪽잠 자며 공부했던 시험들.


이 모든 기억들이 아른거리는 눈물 사이로 스쳐 지나갔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오로지 하나의 시험만 보고 이 힘든 시간을 다 견뎌왔는데. 이 모든 걸 단 한 번의 실수로 다 날려버리고 있는 나 자신이 무엇보다 싫었다. 멍청한 놈. 멍청한 새끼. 바보 등신 새끼. 살고 싶지 않았다.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내 6년의 시간이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때문에. 죽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어느새 잠이 들었고 일어나 보니 한밤중이었다. 쇠창살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콜롬비아 할아버지와 미국 아저씨가 나를 반겨준다. 저녁 안 먹었지? 배고프지? 이거 먹어라. 내게 줬던 건 스팸 두 조각에 빵 한 덩어리, 그리고 계란국 비슷한 국물. 그날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몹시 허기가 진 상태였다. 너무 우울한 나머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도 않고, 먹고 싶지도 않았지만 내 본능과 이성은 따로 놀았다. 이성은 먹지 말라고 말하고 있어도 본능의 손길은 자연스레 빵 한 덩어리로 향했다. 나는 우거적 우거적 빵을 씹어먹었다. 아저씨와 할아버지는 축구경기를 보고 있었다. 내가 밥을 굶주린 개처럼 먹고 있으니, 한마디 툭 던진다. 어쩌다 들어왔니?


나는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지만 같은 구치소원들끼리의 동질감 비슷한 것이랄까, 하여튼 그런 게 느껴져 자초지종 털어놓기 시작했다. 콜롬비아 할아버지는 듣더니 내게 욕을 했다. 에이 캐나다 개 같은 놈들. 아니 지들은 거짓말 한 번도 안 하고 사나? 에이 개 같은 놈들. 할아버지는 개 같은 놈들과 사랑에 빠진 듯 보였다. 캐나다 얘기가 나오면 말 끝마다 개 같은 놈들도 따라 나왔다. 옆에 있던 미국 아저씨도 그에 동조해 캐나다를 씹기 시작했다. 마더 퍼커 같은 놈들이라고. 미국 아저씨는 마더 퍼커를 사랑했고, 콜롬비아 할아버지는 개 같은 놈들을 사랑했다. 나는 무엇을 사랑해야 할까. 웃긴 건 두 분 다 캐나다에서 불법체류를 하다 걸려서 쫓겨나기 직전 이곳 구치소에 갇혔다는 점이다. 본인들이 잘못을 했음에도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 라고 말하며 캐나다인들을 개 같은 놈과 마더 퍼커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덕분에 조금 웃을 수 있었다. 나에게도 단어를 하나 만들라고 했다. 나는 애쓰ㅎ홀을 소환해냈다. 캐내디언 애쓰ㅎ홀.


아저씨와 할아버지는 새벽까지 캐나다의 이민 시스템에 대해, 콜롬비아 정부의 무능함에 대해, 미국 동부 서민층의 고달픔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콜롬비아 정부와 미국 동부 서민들에게도 개 같은 놈들과 마더 퍼커는 따라왔다.


나는 먼저 자야겠다고 말하고 어느새 내 방 문이 되어버린 쇠창살을 열고 들어갔다. 한숨이 끊임없이 나왔다. 돌아가면 친구들한테 뭐라고 하지? 부모님은 얼마나 걱정하고 계실까? 치과의사의 길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하지? 공부를 다시 해야 하나? 시험을 볼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 미국에 가면 그래도 괜찮을까? 아니야 미국도 무서워. 같은 아메리카 대륙에 있잖아. 캐나다와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돼. 미국과 캐나다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잖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다시 누워있는 동안 끊임없는 물음과 한숨 속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덩치 큰 경찰 두 명은 나를 데리러 왔다. 콜롬비아 할아버지와 미국 아저씨는 각자 자기 방에서 자고 있었다. 며칠 후에나 나가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말에 그곳이 집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다. 경찰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경찰을 따라나서며 옆에 있는 이민국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돌아가는 비행기표는 어떻게 하죠? 아 그거? 괜찮아~ 알아서 다 마련해줄 거야. 나는 이 말을 믿고 아무 걱정 없이 그들을 따라 나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