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는 머저리였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by 조르바


경찰관 두 명은 나를 데리고 구금소 밖으로 나왔다. 나는 경차관에게 물었다. 이렇게 쫓겨나는 일이 한 달에 몇 번이나 발생하나요? 한 달? 말도 마~ 하루에 열명씩 쫓겨나는 판이야. 이 말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는 나는 멍청한 놈일까 이기적인 놈일까.


우리는 공항 라운지로 올라갔다. 100미터 앞에 공항 밖으로 나가는 회전문이 있었다. 밴쿠버 땅에 한 발자국만 디뎌보고 싶어 옆에 있던 경찰관에게 물었다. 저기 저 땅바닥 한 발자국만 디뎌보고 오면 안 돼요? 안돼. 무뚝뚝한 얼굴과 냉정한 표정으로 바로 철벽을 쳐버리는 우리 캐내디언 경찰관님. 그래 안 되겠지. 내 빌어먹을 인생, 뭐가 되겠냐. 저 앞에 보이는 밴쿠버는 따사로워 보였다. 그 햇살에 몸을 맡긴 채 근처 공원에 누워 뒹굴뒹굴 거리며 '월든'을 읽으려 했던 나의 꿈은 한 줌의 파편으로 흩어져버렸다. 경찰관은 이윽고 나를 공항 안에 있는 항공사로 데려갔다. 나는 그 앞에서 멀뚱멀뚱 서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찰관이 물었다.


"뭐해? 비행기 표 안 끊고?"

"네? 잘못.. 들었습니다?"

"비행기 표 안 끊고 뭐하냐고."

"어.. 어제 이민국 직원이 말한 바로는 이민국에서 끊어준다고..."

"그랬어? 우린 모르는 일이야. 얼른 다시 끊어. 시간 없어."

"아 아니, 저기요. 잠시만요. 그러면 안되죠. 쫓겨나는 것도 짜증 나 죽을 판에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도 내 돈으로 내라고요?"

"그럼 어떻게 할 건데? 헤엄쳐서 갈래?"

"....."


몹시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꾹 참고 중국 항공 직원에게 가격을 물었다. 몇 시간 후에 있을 편도 항공편의 가격은 170만 원. 뜨억. 절대 못내. 아니, 안내. 미쳤어? 나는 경찰에게 다가가 말했다.


"가격이 170만 원이네요. 못 내요. 돈 없어요."

"허 참, 미치겠네. 그럼 어쩔 건데?"

"몰라요, 어제 그 이민국 직원 불러오던가 아님 밴쿠버에 들여보내 주던가."


키가 족히 190은 돼 보이는 경찰관 두 명의 얼굴은 빨개지기 시작했다. 화가 난 듯 보였다. 그러나 나는 이판사판이었다. 지들이 쫓아내면서 비행기 값도 나보고 다시 내라고? 미쳤냐 내가? 뭐가 맞는 건진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었다. 경찰관과 내가 여행사 항공사 앞에서 투닥투닥거리고 있으니 매니저로 보이는 어떤 여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일까요?"

"아 안녕하세요. 제가 어제 캐나다에 도착을 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쫓겨나게 됐어요. 근데 어제 분명 이민국 직원이 돌아가는 비행기 값을 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을 했거든요. 근데 그 직원은 사라지고 여기 이 경찰관들이 저보고 빨리 편도 티켓을 사라고 하네요. 근데 편도 값이 170만 원이잖아요. 너무 비싸서 안사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에요."

"아 그러세요? 저는 이 항공사의 매니저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혹시 그러면 최대 얼마를 지불하실 수 있으세요?"


나는 투박한 경찰관과는 달리 나긋나긋한 말투로 도와주려는 매니저의 말을 듣고 1000달러가 있다고 말했다. 어찌 됐든 내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내야 한다면 1000달러라도 내고 간다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들은 매니저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말했다.


"그럼 1000달러만 내시고 타시죠. 제가 그렇게 해드릴게요."


잠깐만, 뭐야. 이게 가능한 거였어? 내 얍삽한 머리는 순간 잽싸게 돌아갔다. 이 사람의 권한과 역량으로 700달러나 깎아서 누굴 태울 수 있다면, 상황에 따라 융통성이 적용된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때부터 세상 모든 불운을 다 가진 사람처럼 눈꼬리를 내리고 두 손 두 발을 공손히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곤 세상 제일 불쌍한 표정으로 어제 일을 다시 한번 자초지종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제가 있잖아요........ 한 번만 어떻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매니저님?


매니저는 다시 한번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좋아. 작전이 먹히고 있어. 제발, 제발, 제발. 1000달러를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뿌릴 순 없지. 마침내 매니저는, 오케이 좋아요. 한국으로 가는 항공편에 남는 자리가 있는지 보고, 있으면 태워줄게요.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이게 그렇게 환호성을 지를만한 상황일까. 모르겠다. 다행히 남는 자리가 있었고, 매니저는 웃으며 조심히 가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감사하다고 말을 하며 매니저의 메일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꿈을 이루기 위해 캐나다로 출국한 지 약 40시간 만에 한국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게 되었다.


꿈이 있었다. 6년간 꿔왔던 꿈이었다. 그 꿈은 멍청한 내 실수 때문에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박살이 났다. 나는 머저리 같은 놈이었다. 인생의 패배자였고 어디에도 쓸모없는 놈이라 여겼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나를 그렇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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