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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Oct 10. 2020

#63. 행복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

인생이 다 그렇지 뭐

피씨티를 걸은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 하프 포인트에 도착했다. 무려 2150km를 지나왔다. 3개월을 걷는 동안 얻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처음 입었을 때 짙은 남색이던 티셔츠는 회색을 넘어 흰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교포 가족분들이 주신 분홍 신발끈과 때가 가득 묻은 얼굴, 팔과 다리, 7개나 빠져버린 발톱. 그 외 너덜너덜해진 가방과 냄새나는 침낭과 텐트. 산에서 먹었고, 산에서 잠을 잤다. 지난 3개월은 자연 그 자체였다. 가진건 아무것도 없고, 누가 보면 거지라고 보기 딱 좋을 상이었지만 길을 걷는 내내 정신만은 또렷했다. 또렷한 정신. 명료한 정신. 걸을 때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걷는 것에 집중했다. 먹을 때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먹는 것에 집중했다. 모닥불을 바라보며 쉴 때도, 호숫가에 들어가 수영을 할 때도 복잡한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하고 있는 것'에 집중을 했다. 그렇게 집중을 하다 보면 정신이 또렷해졌다. 


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좋아한다. 조르바처럼 살고 싶은 마음에 필명도 조르바로 지었다. 현실을 맞닥뜨리고선 조르바처럼 사는 것이 어떤 삶이었는지, 그가 얼마나 위대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됐다. 조르바는 말한다.


행복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닷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다.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음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곤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다.  


저번 글에서 적은 바 있지만 이 길에서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도 이와 비슷했다. 밤 한 알 대신 말린 살구, 허름한 화덕 대신 날 것의 나뭇가지를 모아 만든 모닥불, 바닷소리 대신 잔잔한 호수의 물결, 새의 지저귐, 고요히 들려오는 숲의 소리.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우리에게 말을 걸 때, 그 공간은 빛이 났다. 어떤 행위나, 물건을 소유했을 때 오는 행복과는 차원이 다른 행복이었다. 화가 날 땐 욕을 하고, 힘들 땐 엉엉 울고, 기뻐할 땐 온몸의 에너지를 다 끌어모아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는 것,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이런 것이 이 길에서 내가 행복을 느끼는 방식이었고,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시간이었다. 내가 3개월이란 시간을 걷는 것에 바치는 동안 친구들은 돈을 벌었고, 좋은 옷을 입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과 호텔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하프 포인트에 도착했다며 누더기 옷을 입고 웃고 있는 사진을 보내줬다. 친구들은 이런 개고생을 일부러 하고 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조르바가 누군지 관심도 없었다. 빨리 와서 돈이나 벌라고 했다. 


3개월간 내가 얻은 건 이런 것이 전부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말로 설명하기도 힘든,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는 추상적인 어떤 가치. 조르바만큼의 자유는 아니었지만, 그를 조금이라도 따라 해보려 했던 자가 배울 수 있었던 자유. 온전히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물음. 보여지는 것들에 비해 초라해 보일 수 있었지만 그 정신만은 결코 초라할 수 없었다. 하프 포인트에 도착하니 많은 생각이 오갔다. 지금껏 해왔던 고생을 다시 한번 똑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은 웃픈 일이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와준 나 자신에 대한 고마움이 일었다. 몸과 마음도 어느덧 완벽히 적응했기에 더 잘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Half point
멍든 발톱






하프 포인트를 지나 오레곤에 들어왔다. 오레곤은 지난 캘리포니아의 사막과 시에라 산맥에 비해 업다운이 심하지 않아 비교적 수월하다. 많은 하이커들이 오레곤에서 스피드를 내 하루에 60~70km를 걷기도 한다. 우리 또한 스피드를 내기로 하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는데 오레곤 곳곳에서 산 불이 크게 났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걸었지만 앞 뒤로 트레일이 모두 막혀버렸고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뿌연 재가 텐트에 가득 싸여있었다.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공간이 노란 선글라스를 끼고 본 것 마냥 노랬다. 자칫 잘못하다간 불길 사이에 끼어 위험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근처 마을로 재빠르게 내려온 후 다른 마을로의 탈출을 계획했다. 


조금 더 큰 마을로 가면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을로 내려왔을 땐 이미 수십 명의 하이커들이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택시나 버스가 없어 히치하이킹을 해서 빠져나가야 하는데 사람이 많으니 쉽지가 않았다. 시에라 산맥을 걸을 때처럼 루트를 다시 정해야하기도 했다. 몇몇 하이커들은 오레곤을 패스하고 워싱턴을 걸으러 갔다. 우리는 오레곤 대신 해변가에 나있는 오레곤 코스트 트레일(Oregon coast trail, Oct)을 걷기로 정했다. 피씨티의 오레곤 트레일의 거리가 오레곤 코스트 트레일과 비슷한 650km 정도였으니 대신 걷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틀간 히치하이킹을 열심히 한 덕분에 우리는 오씨티의 출발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피씨티가 산과의 사투였다면 오씨티는 바다와의 사투였다. 바다를 걷는 일이 산을 걷는 것보다야 수월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같은 시간, 같은 거리를 걷는다는 것에 있어선 변함없이 지루하긴 했다. 생각할 거리들이 없을 때면 고기 생각이 났다. 날아다니는 갈매기의 갈매기살은 얼마나 맛있을까(아재개그주의). 미국의 짭짤하고 느끼한 머쉬 포테이토나 또띠아의 참치는 이제 그만,, 지글지글 타오르는 불판에 삼겹살을 치이익- 마늘과 김치도 옆에 놓고 치이익- 구워, 쌈장과 함께 상추에 싸서 한 입에 집어넣으면 그야말로 천국의 맛,, 이런 생각을 주로 하며 걸었다. 매일 보는 바다의 풍경은 질리지도 않고 매일이 새로웠다. 텐트와 침낭이 자주 눅눅해지긴 했어도 새빨간 석양과 짙은 안개, 바닷바람, 바다 냄새, 소리, 공기 모든 것이 그간 산에서 고생한 우리를 감싸 안아주는 듯했다. 캐나다가 얼마 남지 않았다. 더 힘을 내서 걷기로 했다.



Oregon coast t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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