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반감 사이의 인정
최근 배우 박정민님의 출판사와 출판 서적들이 여러 미디어에 나오며 알게 된 책,
『살리는 일』 입니다.
작가는 사회부 기자 출신이자 다년간의 캣맘 그리고 채식주의자로서 본인의 경험을 동물권을 옹호하는 중심 내용으로 에세이를 출간했습니다.
1. 공감
저는 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지는 것도 무서워하고, 길에서 보더라도 큰 감흥이 없습니다. 종종 '반려' 를 앞에 붙이며 사람과 동물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들을 보는 것도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는, (어떤 무의식이나 과거 경험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물을 함부로 하는 것에는 아주 민감한 편입니다. 예전에 KBS 사극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달리는 말이 넘어지는 씬을 촬영하기 위해 (말 목이 부러질 것을 알면서) 달리는 말 다리에 줄을 걸어 장면을 연출한 동영상이 퍼졌을 때, 배울 만큼 배운 인간들이 동물의 생명에 대한 무감함을 가감없이 드러난 것에 대해 잠을 자지 못할 만큼 분개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둘째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내 뜻으로 키우는 것 아님;;;) 에게 과격한 장난을 치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에 크게 야단을 치곤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작가가 캣맘 활동을 하거나 동물권 취재를 하는 과정, 여러 동물들에 대해 가지는 작가의 생각에 많은 공감이 갔습니다. (평소에 캣맘 에 대한 편견을 깨보려는 시도 역시 이 책을 집어 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2. 반감
앞서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누가 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입니다. 뭐 누가 그걸 좋아하겠냐마는, (만약 그렇다면, 저 또한 그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라고 표현해봅니다.)
결혼도 하고 회사생활도 하며 누군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니예 니예" 하며 무감하게 수긍하다도, 내게 주어진 과업 이외의 영역에서 (특히 사상적으로) 강요를 하는 것에 꽤 반감이 크고, 강요되는 사상의 깊이나 폭이 크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이 사회에서 캣맘, 채식주의자 (그리고 약간의 페미니스트 적 색깔도 있음) 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울분과 분노, 좌절을 토해냅니다.
특히 그런 사상적인 색이 완연한 단어 (관련 사상적 무장을 거리낌 없이 내보이려는 목적 사용하는 단어) 의 사용이 꽤 있습니다. 또한, 그런 와중 자연스럽게 이분법적으로 사상적 울타리의 안과 밖의 경계를 긋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토해낸 울분과 분노 좌절은 단순히 현재 자신의 바운더리의 결벽을 극대화 하는 장치에 불과해 집니다.
3. 인정
어떤 사상이나 소속감, 아이덴티티를 갖게 되고 거기에 확신이 더해지게 되면서 (혹은 반대의 순서도 가능) 자연스럽게 시야가 좁아지는 경우는 종교적, 정치적, 사회 관계 적으로 수없이 보아왔고, 저 역시 경험해본 적 있습니다.
그 바운더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아무리 젠틀하고 나이스한 안타까움으로 포장한다 해도, 실상은 미개하고 깨어있지 못한 타자로서 개도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위선적인 경우가 허다하죠.
이 책에서 그런 뉘앙스가 종종 감지되어 읽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런 사상적 집단은 때로는 내부의 정당성을 강화하며 자신만의 존재 방식을 지켜간다는 점을 감안하고.. 어쨋든 이 세상에 일부 순기능을 수행하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에 (특히 이 작가 동물권 활동만 놓고 보면) 이것을 읽어 내는 것 또한 제가 이 다양한 사회에서 서로를 인정하는 행위라고 생각을 해서 완독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서로 다름에 쉽게 배척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지그시 지켜보고 소통해보며 틀림이 아니라 다름일 뿐이고 결국 서로가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 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 모두가 연대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근데 쓰고 보니까, 작가가 약자 코스프레인척 본인 깨시민 인증이라며 비판했으면서, 결국 그걸 끝까지 참고 읽어준 내가 잘난 놈이다 라고 끝나버렸네요.;;)